[미술칼럼] 박정수의 뒷방 이야기 - 2012년은 제발 따뜻했으면...
[미술칼럼] 박정수의 뒷방 이야기 - 2012년은 제발 따뜻했으면...
  • 박정수 미술평론가
  • 승인 2011.12.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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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 해야 하나 호칭도 혼란스럽다. 잘 죽었다 해야 하나 아니면 사망소식에 조의를 표해야하나 그것도 헛갈린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명예롭거나 그냥 죽거나 둘중 하나다. 우리나라 경제의 산증인이었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별세했다. 미술계에도 많은 이들이 세상을 등졌다.

2011년 벽두에는 우리나라 미술을 세계에 알리던 독립큐레이터 이원일 독립큐레이터가 별세했고, 5월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상설화랑에서 전시를 가졌던 김종하 화백이, 6월에는 화랑계의 산증인이었던 선화랑 김창실 대표가 12월에는 별세했다. 여타 다른 사건들도 많았다. 특히,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가 리움미술관 홍라희 관장에게 50억을 달라는 소송도 있었다. 우리네 살림살이와 너무 큰 격차가 난다. 2011년의 사건 속에서도 전혀 아무런 변화 없이 힘겹게 작품 활동하면서 경제와는 무관한 루저 예술인들은 여전히 배고픈 한해였다.
 
2005년에 이런 죽음도 있었다. 미술계에서 촉망받던 구본주라는 조각가가 2003년 교통사고가 났다. 유족은 가해자가 가입해 있던 삼성화재와 소송 끝에 예술 경력 5∼9년, 정년 65세, 피해자 과실 25% 기준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랬더니 삼성화재는 예술경력 불인정, 정년 60세, 피해자 과실 70%를 주장하며 항소를 제기한 일이 있다. 세상이 어느 때인데 60살이 정년이고 예술가를 인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2011년 1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 故최고은씨의 마지막 남긴 쪽지다. ‘격정의 소나타’라는 단편영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의 나이 32세이다. 세상이 어느 시절인데 굶주림을 그냥 두는가. 최소한 배고픔에 시달리는 예술가는 없었으면 좋겠다. 

2009년 한국고용정보원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예술인이 약18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중 월평균수입 백만 원 이하가 62.8%나 된다고 한다. 소위 잘나가는 예술인 몇몇이 대다수 액수를 점하고 있다. 창작하는 예술인들은 고용보험도 산재보험도 안 된다. 나라에서는 대학을 평가하면서 4대보험 받는 이들만 취업이라 평가했단다. 말이 많아지니 건강보험데이터나 사업자등록증으로 확대한단다. 화가더러 사업자를 내란다. 그런 평가 기준 수정하는 것보다 제발 2012년에는 배고파서 자살하는 이 없었으면 좋겠고, 과로로 쓰러지거나 공연하다 다쳤을 때 산재보험이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님 시장님의 사모님과 친구들에 의해 문화예술의 미래가 변경되고 수정된다. 어느새 서울에는 디자인이라는 말이 슬며시 사라지고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재벌 회장님 사모님의 미술관이나 의원님 사모님의 화랑에는 사람이 넘치고 미술품 거래가 활발하다. 2012년에는 힘 있는 사람과 줄 닿은 이들보다 국가 기관에 기대어 사는 이들보다 전업예술가들이 더 폼 나면 좋겠다. 칼보다 강하다는 펜은 돈보다는 약해진지 오래다.

춤추다가 다리에 금 가거나, 밤새 원고 쓰다 코피 쏟거나, 돌조각 하다 손가락을 다치거나, 노래 부르다 성대이상이 오거나, 도자기 가마 불 때다가 화상을 입거나, 그림 그리다가 눈이 침침하거나 했을 때 위안이 되는 일들이 발생하길 기대해 본다.

그런 세상이 올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