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영전에서 오열한 여인은 누구?
김근태 영전에서 오열한 여인은 누구?
  • 엄다빈 인턴기자
  • 승인 2012.01.0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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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과 장미희 교수, 10년간 교우

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서울대병원 빈소에 추모객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지난 31일, 배우 장미희 교수가 조문을 와 애절하게 흐느껴 울어 주변을 숙연케 했다.

한때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던 여배우인 장 교수는 왜 이렇게 고인의 타계에 오열하는 걸까.

2001년 발간된 고인의 에세이집 '희망은 힘이 세다'에는 1993년 첫 만남 이후 오랫동안 고인을 지켜보아왔던 장미희 교수의 글 한편이 실려 있다.

아래는 고인과 장 교수의 오랜 교우와 고인의 고결한 품격이 담겨 있는 장미희의 '여기 사람이 있다'의 전문이다.

■ 여기 사람이 있다

김근태라는 인물에게는 사람의 냄새가 짙게 배 있다. 수많은 고절과 커다란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티가 없다.

상처와 아픔을 안으로 삭이고, 또 천진한 웃음으로 그것을 밖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가 존경스럽다. 영화 ‘와호장룡’의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명제는 한갓 언설이 아니라 그를 통해 사실이 된다.

나는 김근태 최고위원을 1993년에 처음 만났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나는 이장호 감독과 동행을 해서 갔었고, 현 임동원 통일부 장관도 왔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편안하게 여러 문제들을 이야기할 시회가 있었는데, 그는 참 솔직했다. ‘정직하다’는 것이 내가 그에게 마음속으로 준 첫 번째 평가다.

그리고 행사 마지막 날 술자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플로어에서 춤을 출 수 있는 곳이었다. 다들 자연스럽게 춤을 거들고 있었는데, 그도 누군가에게 이끌려서 풀로어에 나왔다.

대단히 못 추는 춤이었는데, 그래도 참 매력적이었다. 주저하는 듯하면서도 스스럼없이 사람들의 동작을 조금씩 따라 하는데 그게 불편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에 대한 두 번째 생각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 하는 것이었다.

그 후 김근태 의원은 재야 활동을 지속하다가, 정치인이 되었다. 그렇게 10년을 보았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체득하고, 그러나 또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에게 붙일 수 있는 세 번째 생각은 ‘한결같은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매번 만날 때마다 새로운 주제와 생각으로 나를 놀라게 하지만, 그의 속내는 항상 같아 보인다.

장맛이 우러나오는 그를 만나는 것은 제법 행복한 일이다.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고, 그가 우리 안의 ‘희망’이라 말할 수 있어 또한 즐겁다.

가을날 우리 하늘을 보고 김용택 시인이 “…우리 조국 하늘만큼 어름다운 하늘 / 어디 있으면 / 손들고 한번 나와 보라고 / 큰소리로 외치라.”고 했다던가. 덩달아 나도 외치고 싶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