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진화, 왈츠와닥터만커피박물관에서 보다
박물관의 진화, 왈츠와닥터만커피박물관에서 보다
  • 김종규(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 승인 2012.01.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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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커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애호하는 중요한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숭늉대신 커피를 찾고 길거리에는 세련되고 화려한 커피 집 간판이 즐비한 시대가 되었다. 왈츠와닥터만커피박물관은 지구인의 대표 기호식품인 커피를 테마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의 설립자인 박종만 관장은 박물관이 위치한 북한강만큼이나 유연한 사고와 폭넓은 감수성의 소유자다. 격조 있게 난 구레나룻은 커피 향만큼 구수하지만 그의 눈빛은 커피의 고향 아랍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강렬하다. 이성과 감성을 겸비한 강한 인상이다.

그의 커피박물관은 작지만 복합문화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그것은 3가지 기호품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에스프레소와 같이 응축된 향과 깊이를 지닌 박물관이 있어서 그렇고 두 번째는 손에 잡을 듯 북한강 줄기를 끼고 있는 품격 있는 레스토랑이 있어서 그렇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잘 어울리는 음악회 등 문화행사가 그것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3가지 기호품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한 가지 취사선택하여 즐기기도 한다. 작지만 소담스러운 공간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지난 12월 커피박물관이 자랑하는 금요음악회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스산한 겨울 맛본 스테이크와 와인은 그 뒤에 나온 커피와 어울려 세모로 치닫는 계절의 낭만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와인이 한껏 볼을 타고 붉게 젖어들 무렵 시작된 음악회는 클래식의 선율과 함께 추억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해 주었다. 이런 음악회가 금년 4월로 300회를 맞이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출연진의 면면을 보면, 테너 박인수 서울대 교수, 역시 테너인 엄정행 경희대 교수는 물론 러시아 피아니스트 올렉 코쉘레프(Oleg Koshelev) 등 저명한 음악가에서 신예까지 국내외 음악가들을 총 망라할 정도로 화려했다. 특히, 감명을 받았던 것은 박관장이 신예음악가 몇 명을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박물관이 과거의 문화유산을 계승·발전하는 기관이라면 박 관장은 이것과 함께 미래의 문화를 양성하여 전승할 수 있는 숭고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음악회에서의 그의 모습은 검정 턱시도에 흰 셔츠, 나비넥타이를 한 마음 넉넉한 신사로 변신해 브라보를 연신 외쳐대곤 한다.

그날 밤 필자는 왈츠와닥터만커피박물관에서 박물관의 진화를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오늘날 박물관은 진화하고 있으며, 또 진화되어야 한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또는 교육의 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박물관은 여기저기서 눈에 띤다.

토탈미술관의 고급 교양강좌인 미술관아카데미가 그렇고 아프리카박물관의 아프리카원주민 공연역시 같은 눈높이에서 볼 수 있다. 커피박물관과 북한강을 마주하고 있는 가일미술관 역시 정기음악회가 유명하며, 참소리축음기박물관의 클래식 감상프로그램도 박물관의 정체성에 어울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런치프로그램, 해금강테마박물관의 찾아가는 박물관차량운행,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짚풀생활사박물관의 짚풀전통체험, 조선민화박물관의 민화축제 또 필자가 관장으로 있는 삼성출판박물관의 인문학강좌인 삼성뮤지엄아카데미(SMA) 등도 바로 이런 활동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박물관·미술관은 많다.

주지하다시피 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콘텐츠하나하나가 역사와 문화를 응축하고 있는 보물이며 이 긴 겨울밤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옛 이야기의 발원지이다. 박물관의 힘과 저력을 새삼 느끼게하는 대목이다.

왈츠와닥터만커피박물관은 그다지 규모가 크지도 또 사람들의 접근이 쉬운 도회지에 위치하고 있지도 않은 곳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문화를 발산하는 거인이 있으며 그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거대함을 갖고 있어 우리를 매료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