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오르간에 우리 악기의 소리를 싣는 그날까지
파이프오르간에 우리 악기의 소리를 싣는 그날까지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5.15 09:3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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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악기’ 만드는 국내 유일의 파이프오르간 제작자, 홍성훈 씨


홍성훈 씨(49세)는 국내 유일무이한 파이프오르간 제작자다. 국내의 파이프오르간 제작 환경은 몹시 척박하다. 지금은 상황이 좀 나아졌지만, 그동안은 수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지금껏 10개의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해냈다. 1대를 제작하는 데 보통 1년 전후의 기간이 필요한 만큼 10여 년을 종사해온 셈이다.

경기도 양평군 국수역 근처의 작업실은 빨갛다 못해 불타는 철쭉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겉으로는 일반 공장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고풍스러운 맛이 묻어나는 작업실. 참나무로 만들어진 문 때문일까, 아니면 클래식이 잔잔하게 바깥까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는 작업을 할 때면 내내 클래식이 작업실 안을 흘러다니도록 한다. 반백의 더벅머리와 그의 분위기를 보고는 클래식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파이프오르간의 주재료는 참나무입니다. 부재료로는 자작나무를 한 판, 한 판 계속 붙여서 만든 핀란드산 합판을 쓰구요.”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앞장을 서면서 설명한다.

“일반 합판은 사용할래야 할 수가 없죠. 말랐을 때 단단하고 틀어지지도 않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엄청 비쌉니다.”

참나무와 단풍나무 목재들이 가지런히 다듬어져 뽀오얀 속살을 드러낸 채 작업실 곳곳에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이 나무에 독일에서 가져온 천연도료를 칠합니다. 그러면 아주 우아한 색깔이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나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니 나무 수명이 길게 되지요.”

길이도 일정치 않은 나무조각들이 한쪽에 쌓여 있는 걸 보고 무슨 용도냐고 물었다.

“바비큐용입니다. 하하하!”

사용하고 남은 것들인데, 비싸기도 하고 좋은 나무들이라 아까워서 쌓아두었는데 너무 많아져 결국 바비큐 그릴에 들어가는 땔감용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마당에는 유럽에서 보았음 직한 그림 같은 그릴이 놓여 있었다. 그것마저 파이프오르간의 이미지를 닮아 있었다.

◆ 강렬함과 화려함이 버무려진 악기, 파이프오르간

파이프오르간이 다 만들어지면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테스트가 끝나면 수정 작업을 거친 다음, 곧바로 해체된 후 설치 장소로 옮겨져 다시 조립, 완성된다.

그러니 테스트 순간을 목격하는 건 대단한 행운이라고 했다. 게다가 오르간의 내부까지 구경하는 행운도 가졌다.

“와아!”

건물 삼사 층 되는 규모도 엄청났지만 한국 미닫이문의 전통 문양을 응용한 내부 구조물이며, 나무와 나무를 딱 들어맞게 아귀를 맞춘 이음매의 수려한 디자인과 매끈한 솜씨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파이프오르간에는 길이 10m에 이르는 것부터 5cm에 이르는 파이프가 몇천 개 들어가 소리를 낸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파이프오르간은 8098개의 파이프로 이루어져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파이프들은 몇 개씩 무리를 이루어 저마다 다른 악기의 음색을 뿜어낸다. 많은 경우 파이프오르간 한 대에 1000개 정도 악기의 소리가 난다.

그래서 듣고 있으면 관악기가 몇천 개 모인 듯한 파워를 느끼기도 하고, 아찔할 만큼 웅장하고도 묘한 소리의 진동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강렬함과 화려함이 버무려진 악기인 것이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남들 웃기는 것을 즐겨했어요. 산업공학과를 다녔는데, 코미디언도 되고 싶었고 서울시립가무단(*지금의 서울시예술단)의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했었어요.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무대에 올라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만 하면 완전 딴사람이 되었죠.”

파이프오르간 제작자와 코미디언? 뮤지컬 배우? 전혀 연결이 안 된다. 그런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국무용 이수자도 되었었구요, 대금 전수자도 했었지요. 요트 선수도 했었구요, 아줌마들 사교댄스 강사도 했었지요. 관광나이트 클럽 드나들면서.”

현란했던 이력에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회사원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근무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던 그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1986년 독일 유학의 길에 오른다. 원래는 기타를 전공하고 싶었단다. 그랬는데 어느 날 파이프오르간 마이스터를 만나게 된다.

“그 동네에 그 선생님이 계셨고, 어느 날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들었는데 이건, 가슴이 먹먹해지는 거예요. 감동을 먹은 건지, 충격을 받은 건지… 그날 영혼의 떨림으로 파이프오르간을 만난 거예요. 그랬으면 연주자가 되는 게 일반일 텐데 만드는 사람이 된 거 보면 운명이죠, 운명.”

그날로 간청하여 120년 장인 가문의 요하네스 클라이스라는 마이스터의 도제가 되었다. 그리고 11년간의 수업을 거쳐 도제로서 인정을 받았다. 홍 씨는 자신이 단순한 성격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또 독일 사회는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한마디로 ‘베짱이’였던 저를 하나님이 독일로 부르셔서 11년을 거기서 푹 잠잠하게 지내게 하신 거죠. 지금도 유학 간 것을 엄청 감사하게 생각해요.

만약 그때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제가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끔찍하네요. 돌아와서 고생도 많이 했고, 그것 때문에 파이프오르간을 바라보며 눈물 흘린 적도 많았지만, 저에게 주어진 숙명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이프오르간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생소한 악기가 아닌가? 특히 경제적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최근 수요가 부쩍 늘었습니다. 가벼운 예배를 지양하고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거든요.

사실 너무 급하게 디지털 시대로 가다보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쇼 같은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배에는 경건함이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파이프오르간 제작이 유럽에서는 하향 산업이 된 지 제법 되었는데, 오히려 아시아에서는 부흥하고 있단다.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가 발원지로서 유럽에서 전성기를 누리다, 지금은 그 기운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고 한국도 그렇다는 것.

“파이프오르간은 외국 악기지만 이 문화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상 우리가 우리 고유의 악기라고 믿고 있는 국악기들도 순수한 우리 악기가 아니에요.

아쟁, 나각, 꽹과리, 생황 같은 것들이 원래 서양 악기인데 한국화된 겁니다. 우리나라 전통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우리에게 들어온 타 문화를 우리 문화로 만드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그의 말에 선후배들이 “파이프오르간을 ‘오리지널’로 놔둬야지 무슨 소리냐” 하고 걱정들을 많이 한다고 했다.

“하지만 파이프오르간의 음악이 살아 있고 움직이는 생명체인 만큼 현존하는 문화를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고 사람들에게 익숙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겠지요.

파이프오르간이 몇 사람만이 향유하는 사장된 악기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문화에 정착되어서 또 다른 우리의 문화로 형성돼야 합니다.”

파이프오르간 문화 쪽으로 화제가 옮겨가자 순식간에 점잖은 클래식을 내던지고 열정에 휩싸인 문화 투사의 모습을 보인다. 잠시 열을 식히기 위해 가장 감동적인 순간에 대해 물었다.

“만들 때마다 감동이지요. 워낙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가 많아요. 건축가하고는 달라서, 설계에서부터 완공까지 모두 제작자의 손을 일일이 거치게 됩니다.

독일에서는 내가 맡은 임무만 하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정말 소위 말하는 ‘맨땅의 헤딩’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 해도 정말 기적입니다. 그렇기에 오르간이 완성돼 소리가 울려퍼질 때 그 희열이 엄청나지요.”

갑자기 파이프오르간 연주자 쪽으로 생각이 미쳐 ‘국내 연주자 중 기량이 가장 탁월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제가 대답하면 큰일납니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연주자는 어떤 특정인이 아니라 좋은 신앙적 바탕이 있는 연주자란다.

“파이프오르간은 겸손의 악기입니다. 누가 치든지 같은 바람의 양으로 소리가 나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악기지요. 어떤 특정 연주자라기보다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주하는 사람이 좋은 연주자이겠지요.”

◆ 한국에서 파이프오르간 르네상스 꽃 피우겠다

앞으로 그는 휼륭한 도제를 얻어 교육하고 싶은 것, 역으로 유럽처럼 한국에 파이프오르간 르네상스 시대를 일으키는 것이 희망이라고 했다.

“그동안 파이프오르간 제작에 관심이 있어서 배우러 온 사람들이 종종 있었지요. 그런데 모두 6개월을 못 넘겼어요. 고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설계부터 완성까지 혼자 아우르고 세상에 있는 모든 재료를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거든요.

그 많은 시간을 감내하고 비전을 꾸준히 이어가려는 젊은이들이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분명히 올 사람이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 생긴 것처럼요. 조금씩 시도를 해보다가 서로 느낌이 통하면 함께 갈 수 있겠지요.”

그는 자신을 이을 후계자는 정말 행운아라고 말한다. 그동안 고생해서 이룬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받을 수 있을 테니 도제는 10분의 1, 아니 그 반도 안 되는 고생만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 파이프오르간 르네상스를 꽃피울 생각입니다. 가벼움보다 장중함을 추구하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으니 말예요. 그렇게만 되면 파이프오르간 제작이 오히려 쇠퇴해져가는 독일에서 저희를 부를 수도 있지요. 기고만장한 독일에 가서 우리 실력을 뽐내는 거죠.”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교회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고, 다른 교회와 차별화하려는 교회도 늘어나고 있다. 그에 비해 독일이나 유럽에서는 웬만한 교회에서는 파이프오르간을 다 설치해서 더 이상 수요가 없으니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한국이 사람을 경건하고 침착하게 해주는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한국에는 재료도 다 있고 인재도 많습니다.”

그가 여섯 번째 파이프오르간을 광주에 세웠는데, 이탈리아의 교황청에서 온 빠롯띠 교수가 봉헌연주회를 가진 뒤 이렇게 말했다.

“파이프오르간은 다른 악기와 달라서 그 나라의 민족이 만들어야만 하는 악기입니다.”

그 말이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소리는 그 나라의 언어와 직결되기 때문에 언어에 맞는 형태로 소리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파이프오르간은 피리의 군락인데 한국의 문화도 피리의 문화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창조할 때입니다. 파이프오르간 속에 피리도 싣고 편경, 편종도 실을 수 있다면 너무 멋있을 것 같지 않아요?”

서울문화투데이 인터뷰 이은영 국장 young@sctoday.co.kr  정리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