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타임머신 타고 2천년 역사 훑는 시간여행
‘나주’ 타임머신 타고 2천년 역사 훑는 시간여행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2.01.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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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성훈 나주시장, “한반도 남녘 2천 년 역사 한눈에 담아내는 역사관광 나주 만들겠다”

◆‘주몽’ 영상테마파크세트장에 유스호스텔 지어 남해안 문화관광벨트로

“나주를 여행하는 것은 한반도 남녘이 숨기고 있는 2천 년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담아갈 수 있는, 그야말로 2천 년을 훑는 시간여행이 될 것입니다"

기자를 만나자마자 나주가 지닌 독특한 역사를 죽 풀어놓으며 나주문화를 꼼꼼하게 설명하는 임성훈 나주시장. 임 시장은 역사적 고증을 중심으로 스스로 몇 년 동안 고향 나주를 새로운 시각으로 되돌아보았다. 그는 2천 년이나 이어진 나주의 역사적 상황에 맞춰 나주가 지닌 역사의 알고리즘(연결성)을 찾아낸다. 임시장은 “막연하게 역사를 꿰맞출 수는 없다.”라며 매년 학술대회를 열어 이론적 토대를 갖추는 노력에도 매우 적극적이다.임 시장은 삼한시대와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잇는 역사적 자산과 최근 새롭게 정비를 끝낸 영산강을 중심으로 역사문화관광 나주를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임 시장은 나주가 지닌 2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녀온 역사와 문화에, 나주의 풍부한 농수산 자원까지 더해 명실상부한 문화관광도시 나주를 알리기 위해 통합적인 마케팅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는 지난 1월 4일 전라남도 나주에서 임성훈 나주시장을 만나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여러 가지 계획을 하나하나 들으며, 나주에 대해 너무나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씩 얼굴이 붉어졌다.(다음은 임성훈 시장과 일문일답)

 

▲임성훈 나주시장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출신 정치인은 거의 보기 드문데 시장님의 프로필을 보니 특이하게 이공계를 나왔다  이과 출신으로 나주에 대한 비젼을 어떻게 세워가는지 궁금하다.
“나는 나주에서 중고를 나왔고 부모님이 계신 탓에 1년에 몇 번 씩 내려왔다. 하지만 그동안 고향 나주를 잘 몰랐다. 2007년 나주에 내려오니까 그동안 너무 변화가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방향에 대한 캐치도 없었다. 까닭에 고향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 또한 나주가 지닌 문화나 관광, 농업에 대해 잘 몰랐다. 몇 년 사이 관심을 갖고 나주를 자세히 살펴보니까 방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관광의 경우를 보자. 나도 관광객 입장이 되어봤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이 도시가 매력을 느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나주 사람들이 나주가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어찌 보면 패배주의에 좀 빠져있는 것 같았다. 없으면 있는 것을 엮어 얘기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또 농업부분은 ‘정부의 잘못으로 안 돼’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스스로 할 일을 찾아보고 어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이유를 찾으면 된다.
한 예를들어 나주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 나주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가 가까이 있어 다들 광주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교육문제였다. 그래서 첫 번 째 교육인프라를 구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두 번째 나주가 가진 강점은 좋은 환경이다. 요사이 다들 환경을 중요시해서 시골생활을 동경하지 않나. 먹고 살 것이 풍족하다면 굳이 대도시인 광주에 가서 왜 사나? 생활비 싸고 집값 싼 나주에 사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겠나. ”
역발상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다.
나는 말하자면 내 생각이 없다. 상황따라 좋은 쪽이라면 어떻게 더 좋게 할 것인가. 나쁘면 처방을 내려 장단기 적으로 그 부분을 해결해 나가면 된다. 원인 따라 처방을 생각해내고.부족한 것과 넘치는 것을 조절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이공계 공부한 것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답을 도출해 내는 쪽으로) 어떻게 보면 유용하게 잘 써먹는다. 이쪽을 아는 분들이 별로 없으니까.(웃음)

◆“광주에 왜 사나?”... 교육인프라로 ‘생활비+집값’ 싼 나주로 인구 유입

-‘나주’ 하면 ‘나주배’ 정도만 생각한다. 나주에 대해 소개 좀 해달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삼한시대 나주가 영산강을 중심으로 마한에 속한 곳이다. 마한은 신라 근초고왕 이후 끝난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6세기말까지 독자적으로 유지했다. 통일신라시대 때 장보고가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과 활발한 무역을 했다. 당시 강진의 청자라든지 나주의 비단도 그렇게 중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파한 마라난타도 영광으로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배를 타고 나주로 왔다가 육로로 영광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4~5세기 경에는 중국과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현재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산강을 중심으로 인도나 베트남까지 뻗어나간 나주만이 지닌 독자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재조명해서 널리 알리고 싶다. 이 부분은 특히 곧 개관할 국립나주박물관에 있는 다양한 유물을 통해 보게 될 것이다.
둘째는 나주가 고려 건국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고려 건국 당시 왕건의 부인이 된 장화왕후의 아버지인 나주 오씨 오달인의 도움을 받은 왕건이 10년을 머무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때 오달인 의 재력이 뒷받침되었고, 그 시기에 고려 건국의 군사력이나 기반을 쌓지 않았나 추정한다. 일방적일 수도 있지만.(웃음)
셋째는 나주를 보통 1000년 목사골이라 부른다. 나주는 983년 고려성종 2년 때 12목 중 하나로 지정되면서 나주목이 탄생한다. 그 뒤 1895년 갑오경장 이후 행정개편이 일어나기 전까지 목사골로 조선 8개목 중 하나로 거의 1000년을 목으로 유지했다.
나주의 특징은 금성관 등 조선시대 유산도 많지만 근대유물이 있다는 것이다. 나주역은 학생운동과 독립운동의 시발지가 된 곳이다. 나주는 1895년까지 호남의 중심으로 역할했고, 과거에는 제주도까지 나주목에서 관할할 정도로 호남에서 위상이 큰 지역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정비되는 영산강과 우리 농수산 자원과 엮어 나주만이 지닌 독특한 문화를 역사관광자원으로 만들려 한다.”

-백제 유적에 대한 언급이 없다
“좋은 질문이다. 사실 시장으로 취임해서 쭉 살펴보니까 나주에는 고분군이 있고, 삼한시대의 역사가 다 있는데, 유독 백제문화 부분을 제대로 찾을 수 없었다. 왜 백제가 빌까? 결론은 백제의 지배력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주가 그만큼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백제가 나주를 통치한 기간이 100년 이내이다. 백제 유적이 없는 이유는 나주는 일찍부터 영산강을 통해 국제교류를 했기 때문이다. 나주는 백제와 동맹 정도 맺었지만 직접적인 지배를 받은 곳은 아니었다.”

 

-역사적인 받침이 되는 얘긴가?
“나주에서는 해마다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좀 전에 말한 것은 학자들 대부분이 내린 결론이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고분군 중 몇 기가 일본 무덤형태다. 이는 일본하고도 밀접한 교류를 했던 것으로 뒷받침된다. 게다가 복암리 고분전시관 부지를 발굴할 때 신나라 화폐가 나왔다. 학예사 얘기에 따르면 신나라는 1세기 때 중국의 나라 이름이었다. 이렇게 살펴보면 나주는 중국과 2000년 전에 교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발굴해야 할 부분이다.
작년에 학술대회 때 숙제를 하나 던져놨다. 나주와 실크로드와의 연관성이다. 나주 나자는 비단 羅(나)자로 통일신라 이전에는 발라군이었다. 조선으로 와서도 금성 등의 지명은 다 비단과 관련돼 있다. 예로부터 비단이 발달한 나주에는 지금도 천연염색단지가 있다. 나는 나주에서 생산된 비단이 배를 타고 중국 서안으로 가서 유럽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시발점이 된 게 아닐까 유추한다.(웃음)”

◆1895년까지 호남의 중심... 제주도까지 나주목에서 관할한 큰 지역

-나주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삼현육각팀이라는 국악관현악단이 있는데
“그 부분은 조금 부정적이다. 삼현육각은 궁중 아악에 속하는데 나주가 가진 향토관광부분과 연계시킨 나주관광 진흥을 위해서는 역사성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다. 나주가 가진 역사성 속에는 들노래 풍물이라든가, 곳곳에 민간부분의 국악이 많은데 이것을 통칭해서 엮어주고 싶다. 도시민들이 나주를 찾았을 때 밑바닥에 있는 사람 속에서, 사람냄새 나는 것을 보여줬을 때 성공할 수 있다.”

-나주에도 드라마 ‘주몽’을 촬영했던 영상테마파크세트장이 있다. 사실 일부 지자체에 세워진 세트장이 애물단지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처음 왔을 때 애물단지가 되어 있었다. 고민이 많았다. 왜 이 세트장에 1년에 20억씩 투입해야 하는가. 더 이상 투자는 못한다고 결론내고 그 주변의 대야뜰과 연계해서 관광코스로 활용하면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겠다는 구상을 했다. 관광객 스스로 주몽이 돼서 2분짜리 영화를 찍어본다든가,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출해본다든가 등이다. 세트장에 왔다가 머무르지 않고 가면 의미가 없다. 최소한 밥을 먹고 가든 숙박을 하고 가야 하는데 가장 문제는 숙박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트장 앞에 유스호스텔을 지을 계획이다. 앞으로 세트장은 전국 네트웤을 가진 여행사에 위탁해서 남해안 문화관광벨트를 만들 것이다.”

-나주의 문화관광컨셉트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철저하게 2천년의 시간여행이라 할 수 있다. 나주에서 한반도 역사(남부지방에 한정되겠지만)를 몽땅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힘주어 잘라 말함)

-말씀을 들어보니 엄청난 인프라가 있는데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1년 반 동안 인프라 만드는 준비를 했다. 올해는 공격적인 홍보를 하려 한다. 문화관광 하나만이 아닌 농업과 엮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모든 홍보예산을 모아 각 분야별로 통합해 단계별로, 파격적으로 하겠다.”

-나주가 가진 특질이나 특성 등에 대해 첨언한다면?
“과거로 갈수록 나주의 위상은 높았다. 그 이면에는 먹고 살만 했고 아쉬울 게 별로 없었기에 독자적 자존과 긍지를 지키며 살아온 굉장히 독특한 도시다. 과거 동학난이 일어났을 때에도 동학군이 호남지역을 다 장악하는데 유일하게 나주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1896년에는 나주목(羅州牧)이 광주로 갔다. 그 이유가 을미사변 이후 단발령을 시행하려는데 유림들이 ‘신체발부수지부모인데 어찌 머리에 손을 대느냐’며 목사를 잡아 죽였다. 그 이후 후임 목사가 나주를 기피하면서 1000년 목이 광주로 옮겨간 것이다.
나주는 전형적인 야도다. 영산강이 있고 나주평야가 있어 물산이 풍부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보니 (중앙)정부가 어떻게 하든 ‘우리는 우리 길로 간다’라는 전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농업사회에서는 그것이 가능했지만 70년대 산업화로 접어들면서 농업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쳤다. 그 때문에 나주가 낙후된 지역이 되었다.
나주는 자존심과 자긍심이 강해 어떤 경우든지 주관에 의해 선택을 하는 곳이다. 1965년까지만 하더라도 나주 인구는 27만(당시 우리나라 인구 2900만)으로 전체 인구의 1%에 육박했다. 지금 인구로 치면 50만이 돼야 하는데 9만도 깨졌다. 이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서울에서 나주는  KTX를 타면 2시간 40분이면 도착한다. 임시장과 인터뷰를 계기로 돌아보고 온 이번 나주 여행에서 KTX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한  '타임머신'이었다 . 문명의 이기에 새삼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낀다. 마한에서 삼국시대 통일신라와 고려, 근대와 현재에 이르는 그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훑는 2천 여 년의 시간여행을  어느날 훌쩍 하루에라도 다녀올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시간을 온전히 복원시켜 나주를 남해안 문화관광벨트의 중심축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임성훈 시장의  끊이지 않는 아이디어와  준비성, 열정적인 추진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아울러  순박하지만 단단한 심지를 가진 사람들과  풍부한 먹을거리, 깨끗한 환경과 더불어 명실공히, 역사문화관광도시 나주로  멋지게  도약하길  기대해 본다. 

■임성훈 시장 프로필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제어계측공학 석사 /진흥고등학교 /뉴크론 대표이사/위텍인스트루먼트 대표이사/제2대 경기벤처기업협회 회장/제1대 경기벤처기업협회 회장/바텍 대표이사/현 희망제작소 CB(cummunity business)연구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