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전영근 화백] 예술에 완성 없어, 끊임없이 도전하는 예술인 되고파
[인터뷰-전영근 화백] 예술에 완성 없어, 끊임없이 도전하는 예술인 되고파
  • 인터뷰-이은영 발행인/정리-윤다함 기자
  • 승인 2012.01.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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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부터 2월 7일까지 백송화랑에서 개인전 가져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국내 작가가 있다. 2008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 부설 Perspective 갤러리 초대 개인전에서 화가이자 미술 평론가인 폴 라이언은 그의 작품에 대해 “회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평면성을 탈피해, 과감한 역동성이 느껴진다”고 극찬했으며, 이렇듯 독창적 예술세계를 정립해 해외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은 작가는 이를 애틀랜타 포럼 갤러리 초대 개인전, 뉴욕 코리아 아트쇼 초대전 등의 결과물로 답했다. 서구의 현대적 감각과 한국, 특히 통영이라는 지역의 전통문화를 자연스레 어우른 작품세계를 펼쳐오고 있는 그는 바로 전영근 화백이다.

▲전영근作 <바다>, 2011, 73x47cm, 캔바스·오일칼

전 화백은 故 전혁림 화백의 아들로서 유년시절과 청년기를 선친의 수많은 작품들에 둘러싸여 보냈다. 그런 그가 ‘가업’을 이어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아마도 부정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었을까. 그는 좀 더 깊은 수학을 위해 1992년 프랑스로 떠나 그랑드 소미에르 아카데미에서 유학하며 재능을 갈고 닦아 1992년과 1993년, 2년 연속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상하게 된다. 이후 꾸준히 국내외에서 수많은 개인전을 가지며 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그려오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2차원의 평면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그래픽을 연상케 하며, 마치 움직이는 것 같은 시각효과를 주는 옵티컬적 작품이 주를 이룬다. 그의 예술세계는 우리 시장보다는 세계시장에서 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주로 미국에서 여러 전시회를 갖고 소장자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아니라 현재도 연이어 전시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 새로운 요소 접목한 작품 선보여

▲전영근作 <구성>, 2012, 163x145cm, 오일칼라

그런 그가 오는 1월 25일부터 2월 7일까지 종로 관훈동에 위치한 백송화랑에서 열여섯 번째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 작품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되 새로운 요소들이 접목됐다고 한다.
“2010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후 일 년 반 정도를 힘들어 했어요. 당시의 종잡을 수 없는 마음과 정신적인 방황 때문인지 작품 색채에 변화가 왔습니다. 색채가 비교적 단순해지고 이미지 자체도 명료해지고… 제 심경의 복잡함이 작품 안에서라도 단순해지길 바라는 제 마음이 전달된 것 같습니다”

전 화백은 자신의 기억 속 통영, 소년 시절 순수성을 바탕으로 일관된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그의 작품에 대해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이미지의 잔흔들은 단순화의 진행 속에 어느덧 파묻히고 보다 명쾌한 색면의 구성으로 진행된다”며 “어떤 자연적 이미지도 유추할 수 없는 순수한 면적 구성, 평면에의 의지가 강화되고 있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그에게 가장 뜻 깊은 전시는 故 전혁림 화백의 작고 한 달 전인 2010년 4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의 주최·주관으로 열린 ‘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이라고 한다. “그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전시를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건 평생 제 마음의 부족함으로 남았을 겁니다.  아버지 보내드린 후 자식으로서의 허전함이 그때 전시덕분에 반이나마 채워지는 듯해요. <서울문화투데이>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는 아버지께서 인사동 나들이에 소년처럼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잔상으로 남는다고 했다. ‘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은 국내화단 최초로 부자가 함께 한 전시로, ‘역사적 순간’이라 표현되며 당시 화제가 됐었다.

전 화백은 ‘효자 화가’로서 故 전혁림 화백의 생전에 분신과도 같은 존재로 주변인들의 감탄과 감명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자신 역시 넘치는 재능으로 주체할 수 없는 예술지향이 들끓었음에도 선친 옆에서 묵묵히 행해온 헌신은 그저 효도라는 한 단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故전혁림 화백과는 다른 독창적 작품세계 드러나

그는 故 전혁림 화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들이자 제자, 후배로서 선친의 곁을 지켜왔다. 그는 알게 모르게 선친으로부터 작품세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현대작가가 피카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듯이 저 역시 아버지로부터 작품세계에 영향을 안 받을 순 없었죠. 하지만 오롯이 ‘저만의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오래전부터 계속해 왔어요. 오십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작품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저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야 그것이 드러난 거죠.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는 건 제 오랜 과제였거든요”

▲전영근作 <이야기>, 2011, 162x97cm, 캔바스·오일칼라

그의 작품은 평면적이고 구성적이라는 점에서 선친의 그것과 비슷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故 전혁림 화백은 ‘오방색’을 이용한 원색의 강렬함을 생명으로 하고 있었다면 전영근 화백은 분할과 구성에 역점을 두며 강렬한 원색보다는 절제된 톤의 조절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전 화백은 주로 해외를 겨냥해 작업을 해왔다. 작품성보다도 인맥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선 힘들었다는 것이 전 화백의 속마음. ‘거장의 아들’이란 주변의 시선 때문에 한국 미술계에 자리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더욱 더 해외시장 진출에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전 화백은 그간의 활동으로 미국에서 작품과 함께 다양한 문화상품을 선보이는 것과 동시에 예술과 비즈니스를 동시에 개척하고 있어 이미 미국 현지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확보했다.

“세계시장을 겨냥해 활동했다고 해서 세계의 흐름에 맞춰야한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제가 기본적으로 가진 예술요소를 모두 펼쳐놓고 해외시장이 그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 보는 겁니다” 오로지 자신의 삶의 체험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끌어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지역 작가’ 활동 여건 마련돼야

해외에서 수차례 가진 전시들이 그가 ‘통영의 화가’라는 사실을 바꾸진 않았다. 그는 통영 출신으로 지금까지도 통영에 거주하며 통영에서 영감을 얻는다. 대체로 자전적인 그의 작품들은 그의 생활 체험과 한국의 민간 습속에 근거한 심상을 담고 있다. 곡예단, 악사들, 어린 시절 유랑 서커스에서 본 동물들, 시장 바닥에서 느껴지는 역동성, 광활한 바다의 반짝임 그리고 한국의 반짇고리에 쓰이는 소박한 도구들과 장식적인 문양들 모두 통영으로부터 얻은 것들이다. 그는 통영에 작업실을 두고 작품에 열중하고 있다. 근간에는 중앙으로 나오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故 전혁림 화백이 그러했듯이 고집스럽게 통영에 머물고 있다.
“이것만큼은 아버지의 후광입니다. 아버지란 분이 계셨기에 중앙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을 해도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죠. 꼭 중앙에서 활동을 해야만 한다는 고정적 시각을,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저 또한 하나하나 뚫고 뛰어 넘고 싶습니다. 좋은 예술이라면 어느 곳에서 하든지 사람들은 알아주고 봐준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방은 전시공간이 중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전 화백은 되짚는다. 전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효과적 공간들, 매체들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볼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전 화백 역시 지방이 좀 더 나은 환경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상품 통한 모범 운영하는 ‘전혁림미술관’

그는 2003년 ‘전혁림미술관’을 설립·개관해 관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전혁림미술관’은 故 전혁림 화백의 생전에 부친께 헌정한 미술관으로서 지역주민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뿐 아니라 통영의 아름다운 자연 관광지와 함께 꼭 찾아야 할 지역명소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에 예술문화를 환원한다는 뜻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으며, 예술작품을 다양한 상품에 접목시킨 문화상품을 개발해 자생력을 높이는 등 사설박물관 운영부분에 있어 모범사례라는 평을 받고 있다.
“예술과 접목해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할 수 있는 게 바로 도자기더라고요. 도자기에 작품을 입힌 것을 많이들 좋아해주세요. 또 넥타이와 스카프에도 작품을 입혀 판매 중이에요. 작정하고 사업했으면  돈 꽤나 벌었을 텐데.(웃음) 이런 게 바로 보이지 않는 문화운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는 또 다른 아이템들을 개발 중에 있습니다”

작품을 소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에 문화상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심리가 구매로 이어져 미술관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전 화백은 생각한다. 이렇듯 그는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자체적으로 연구를 해 자생하고 운영할 근거를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영근作 <마술상자>, 2011, 73x60.5cm, 오일칼라

‘전혁림미술관’ 건물의 바깥 면은 그가 손수 하나하나 제작한 타일로 이뤄져 있어 빛나는 모습이 마치 보석과도 같다. “미술관이 하나의 작품이 되길 바랐습니다. 또한 매년 새롭게 보일 수 있도록 타일을 바꾸고 있어요. 그래야 관람객의 재방문률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이벤트 아닌 이벤트로 관람객의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고민하는 전 화백은 건물 전체의 타일을 바꿀 때면 일일이 그림을 입혀 1만 5천 장의 타일을 굽는다고 한다. 그의 작업실에는 도자기 가마까지 갖춰져 있어 직접 도자기와 타일을 정성스럽게 구워내는 것이다.

최근 故 전혁림 화백 추모 2주기 기념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전 화백. “올해 5월이면 2주기입니다. 그쯤해서 추모사업회를 출범시킬 생각입니다. 현재는 위원들을 선임 중에 있어요. 그리고 다음해부터는 공모전과 ‘전혁림미술상’ 등을 만들어 미술계에 의미 있는 한몫을 하고 싶습니다. 4년 뒤에는 아버지 탄생 백주기인데 그때에는 좀 더 복합적인 행사를 가질 생각이고요”

그는 앞으로도 일 년에 두 번 정도의 전시를 가지며 예술가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고 싶다고 한다. “작업하는

동안 새로운 생각이 다시 나옵니다. 예술가는 작업을 하고 결과물을 보여줘야 합니다.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작가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이죠. 예술에서 완성, 끝이란 없습니다. ‘꾸준히’만이 정답이에요”

◆작업실 개조해 ‘전영근갤러리’ 만들고파 

그가 지금까지 작업해 온 작품들은 총 700여점에 달한다. ‘전혁림미술관’은 선친 작품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버겁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 화백은 자신의 작업실을 개조해 ‘전영근갤러리’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하루에 몇 분이 오든지 상관없습니다. 작품과 부대끼고 관람객들과 소통하는 것만이 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니까요”

꿈이란 욕심이 아닌 삶 그 자체라고 말하는 전영근 화백. 그는 우리나라, 통영이라는 지역이 가진 풍부한 문화적 감수성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현대적 감각까지 담아낼 수 있는 작가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거장의 아들’이 아닌 어엿하게 홀로 서기에 성공한 작가로서의 전영근 화백을 주목할 때가 아닐까.

 전시오프닝:1월27일 오후 6시 (인사동 백송화랑:02-730-5824)

 

전영근 1957년 경남 통영 출생, 1992-1995 프랑스 그랑드 소미에르 아카데미, 현재 전혁림미술관장, 한국미술협회 회원, SAAM(Special Artist Association Membership) 경남지부장, Line and color 회원

1985 세 명의 젊은 작가전 (통영 고려갤러리)
1989 자유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1992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국립현대미술관)
1993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국립현대미술관)
1993 전영근 미술 전시회 (통영 고려갤러리, 서울 백송갤러리)
1995 모던아트 전시회 (미국 뉴저지 Koart 갤러리)
1999 전영근 초대전 (송하 갤러리)
2000 한국의 신비한 색채 전시회 (프랑스 miro museum)
2007 마산방송공사 주최 전영근 특별전
2007 미국 애틀란타 포럼갤러리 초대개인전
2008 미국 버지니아 공대 부설 Perspective 갤러리 개인전
2010 Korea Art Show 백송화랑 대표작가로 출품 (미국 뉴욕)

주요작품 소장처 경남도청, 통영시청, 창원지방법원, 창원지방검찰청, 미국 버지니아 공대 등

전혁림미술관 경남 통영시 봉평동 189-2, 055-645-7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