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그들은 날마다 숭례문을 태우고 있다.
[Culture Column]그들은 날마다 숭례문을 태우고 있다.
  • 황 평 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승인 2012.02.1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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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 생에서 2008년 2월 10일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속의 풍경” 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차기정권의 신자유주의독재와 수구독재에 대한 지루한 싸움에로의 “안개속의 전망”과 평소 큰 어른으로 따르고 싶었던 일제 때 노동운동가이며 항일 운동가이고 “안개속의 자유당” 시절에 미국과 이승만에 반대하고, 대중문화운동에

▲필자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헌신하셨던 조문기 선생의 영결식이 바로 내일이었다. 필자는 장례일정에 모두 참여하기로 하고 준비를 하기로 했다.

어둠이 한 참 익어가는 장례식장 앞으로 설 연휴를 이겨내고 내일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퍼부어져야 하는 자들의 고통스러운 자동차행렬을 바라보다 잠시 실내에 들어와 뉴스를 보니 숭례문에 연기가 모락모락 한다. 순간 필자는 전기 누전이나 무분별한 보여주기씩 야간고열조명으로 인한 가열상태에서 발화가 된 것으로 착각했다.

이윽고 언론사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숭례문의 연기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인데 내가 안보고 어찌 아는가? 바로 집으로 가서 카메라를 들고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하도 답답해서 문화재청 담당과장에게 전화했더니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한 그는 말로는 “자기가 죽일 놈 이란다” -그러나 숭례문 화재와 관련된 대다수 공무원은 아직도 철밥통을 차고 있다.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은 처음에는 느긋하다가 불이 꺼지지 않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언론사 기자들이 소방관보다 더 많이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현장은 아수라장이고 불은 확대되어갔다. 하는 수 없이 “문화재전문위원이다. 내 판단으론 지붕을 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붕을 깨고 소방호스를 넣자.” 라고 했지만 묵묵부답. 곧 문화재청 과장이 도착해서 필자는 “지붕을 깨자.” 라고 제안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타 부처와 유기적인 협조가 되던가? 더구나 훈련도 아닌 실제상황에서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의 협력은 불가능했고 “안개속의 숭례문 일대”는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는 비극의 현장으로 내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상징, 국보중의 국보 등 온갖 미사여구에 이용되어 왔던 숭례문은 우리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이후 대법원은 숭례문에 불을 질러 전소시킨 방화범에게 징역 10년을 확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사회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른 만큼 책임이 더욱 무겁다.” 라고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문인 “책임” 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 이 있다.

숭례문 화재와 관련해서 문화재관리의 최고 책임자는 중구청장, 서울시장, 문화재청장에게 있다. 하지만 중구청의 말단관리자가 벌금형을 받은 것 외에는 그 어떤 책임을 지는 고위 공직자가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이나 도덕적, 윤리적인 책임을 지는 고위공직자도 없다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 고위 공직자의 윤리라니 씁쓸하고 한심한 생각이외는 없다.

숭례문이 사라진지 4년이 흘렀다. 지난 4년간 반성다운 반성, 대책다운 대책은 없고, 형식적인 매뉴얼과 도식적인 방재훈련, 복구하는데 필요한 돈타령만이 즐비하고 냄비처럼 달구어지며 한 풀이를 하던 사람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언론들도 진정성이 없는 형식적인 특집 프로그램만 만들고 있다.

중요한 것은 화재 순간부터 수습 및 복구 과정을 문화적인 소양이 토대가 되어 냉정하게 진행했어야했다. 화재당시의 진중하지 못한 방식, 책임지는 공직자의 모습, 수습과정의 잔해처리방식에서의 과학적인 역사성 부여, 문화재를 복구함에 있어 철학적이고 인문학인 고민이 없음에 진중한 반성과 대안이 있어야한다.

시민과 소통 없는 복구, 밀실에서 그들만의 복구 안을 놓고 무조건 따르라고 하고, 금지되어있는 하청에 재하청, 국보 1호에 단청은 처음해보는 실습, 임금도 제대로 안주는 전통기법, 손 쉬운 일은 전통기법으로 하고 무겁고 어려운 일은 현대식 기계로 하는 것이 전통인 복구인가?

요즈음 권력을 손에 넣은 자 들의 횡포가 너무나 심하게 다가온다. 그들은 숭례문을 잃고도 무엇을 더 잃어 가는지 얼마나 더 잃어 가는지 조차도 모른다.

2012년 오늘! 한국의 짙은 안개주의보가 언제 걷어질지......


*필자 프로필
종로역사문화박물관(육의전) 관장 (2012년 5월 개관 예정)
문화연대 외규장각 약탈문화재환수 특별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