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만 명 서명운동에 앞장섰던 이진자, 이경호, 강윤모 씨
[인터뷰] 1만 명 서명운동에 앞장섰던 이진자, 이경호, 강윤모 씨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정리 이지연 기자
  • 승인 2012.02.2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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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국내 1호 민간인 주도 문화예술운동’의 발원지

     지방 소도시에서 한 예술가의 미술관 건립을 위해 1만여 명의 성인이 자발적으로 서명에 참여했다. 첨예하게 얽힌 이해관계에서 시작된 운동이 아니었다. 우리 화단의 거목이자 학계에서도 명망이 높은 분께서 살아있을 때 고향에 모시고 싶다는 지역주민들의 공동의 염원에서 비롯된 운동이었다.    

 <서울문화투데이>는 일랑 이종상 화백의 기념관 및 생가복원사업과 관련해 10년 전에 있었던 서명운동의 불씨를 지피는데 앞장섰던  이진자 예총 예산지회장(전 군의원)과 이경호 전 예총 예산지회장(예산고 교사) 강윤모 원장(예산 모아치과)을 만나 당시의 정황을 들었다.

     이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충남 예산에 벌어졌던 민간인 주도의 순수문화 운동을 조명하고 이같은 자발적인 문화운동이 각 지역으로 확산돼 지역문화 발전의 부훙을 이끌 수 있는 방안과 비전을 모색하고자 예산의 숨은 문화 운동가들을 만나 집중 취재했다.

 

 

▲이진자 한국예총예산지회장
◆이진자 한국예총 예산지회장

 

추사 김정희 선생 맥을 잇는 이종상 화백

 “총 인구가 8만9000여 명 남짓한 곳에서 1만여 명이 서명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열화와 같은 성원인 동시에 한국예술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일이다”
이진자 한국예총 예산지회장(54)은 일랑 기념관이 들어서는 것에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동안 일랑 이종상 화백의 기념관을 유치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술가는 사후에 비로소 진정한 인정을 받는다.’라는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뭘 굳이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생존해 있을 때, 모셔야 그분의 뜻과 의지가 반영된 제대로 된 기념관을 건립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돌아가시고 나면 유족들 간의 입장 차이나, 저작권 문제 등 여러모로 문제가 복잡해져 건립이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있지요.”

-예산지역 다른 예술분야 종사자들의 반발은 없었는지요?
“‘왜 하필 화가여야 하느냐? 우리 지역 출신의 저명한 문학가나 음악가도 많다.’ 이런 반발은 일부에서 솔직히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일랑 선생님께서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세계가 인정하는 일랑 선생님의 작품세계, 고구려 불화연구 및 독도운동과 같은 그 분이 추진하시는 일들의 가치 등을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추사 선생 뒤를 잇는 분이 일랑 선생님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응노 선생님도 그 중간에 계시기도 하시지만요. 일랑 선생님을 시작으로 다른 분야의 한 분, 한 분도 순차적으로 모시자고 설득했습니다.”

-생가 및 기념관 건립에 따른 기대효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태백산맥 문학관이 있는 전남 벌교는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고 있습니다. 예산은 벌교에 비해 훨씬 발달된 도시기 때문에 그 효과가 2배, 3배 그 이상이 될 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한 경제적인 창출효과 외에도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한 효과가 기대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화폐속의 영정그림을 그린 분이 우리 고장에서 태어났다는 자긍심을 우리 아이들에게, 후세에게 계속 전달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한동안 지속되면 지역 전반의 문화수준이 크게 올라갑니다.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지요. 이렇듯 앞서 언급한 모든 효과를 우리 지역 사회가 거둬들이기 위해, 문화예술분야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최승우 군수님 임기 내에 일랑 선생님 기념관이 꼭 건립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랑 선생 기념관을 추진하는데 있어, 자칫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을까 하는 점도 우려됩니다.
“기념관 사업이 절대로 정치적으로 이용돼선 안 됩니다. 문화예술관련 사업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생명력이 짧아져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에 민간차원의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예전에 국회위원에 출마하는 분들 사이에서 일랑 선생님의 기념관 사업을 정치공략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일랑 선생님께서 듣고는 얼마나 당황스러워 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께서는 기념관 건립 문제가 결코 정치성을 띠어선 안 된다며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저 역시도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경호 전 예총예산지회장
◆이경호 전 예총 예산지회장

 

‘일랑기념관'건립, 예산이 서해안 문화관광 중심 도시로 도약할 것’

“서해안 일대의 문화관광 인프라가 제대로 된 곳이 없습니다. 예산을 세워 그 중심지 역할로 만들고 싶은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럴려면 일랑 선생님이 살아있을 때 해야 합니다.” 고향이 예산이 아니라고 밝힌 이 전 회장은 “오랫동안 예산에 몸담고 살면서 고향과 다름없는 예산의 훌륭한 분을 모시는 것”에는 고향 타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기념관 건립을 위해 애를 많이 쓰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특별히 기대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예산이 전통적으로 농업이 주업인 지역인지라, 기반시설이 약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공장도 없고, 투자할 시설 자체가 너무 없습니다. 까닭에 도비나 국비에 의존을 너무 많이 하고 있어요. 예총회장하면서 문화예술분야를 발전시키려 했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제대로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 심대평 도지사 때 벽화미술관 짓자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도에서 400억 내겠으니 군에서는 부지만 마련하라고 했습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랑미술관건립’ 서명을 했었지만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제가 재작년 도시계획심의위원으로서 예산군 복합문화단지 심의 때 그 단지 내에 문화예술공간과 공연장, 도서관, 체육시설 등이 들어온다고 들었습니다. 막대한 돈을 들여 건물을 짓는데 1~2년은 잘 하겠지만 그 이후에 시설 보수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수익사업 없이 군민들 세금으로만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시설 투자를 하고 영원히 운영할 경비를 마련을 위한 수익사업을 위해 일랑 선생님을 모셔오자고 했어요. 생가 한옥 복원도 하고 화폐체험관 등도 만들면 앞으로 운영비 마련은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와 함께 일랑 선생님께서 오셔서 여러 가지 문화활동을 해주시면, 전반적인 예산의 경제상황도 좋아지리라 예상됩니다.”

-일랑 선생님의 원래 주소지와 생가터가 복원되는 주소지가 다른데 이에 대해서도 하실 말씀이 있으실 듯합니다.
“일랑 선생님의 원래 생가터는 발연리에 있는데 그곳은 현재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옹졸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땅을 사서 복원하느니 차라리 산을 하나 연결해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후손들이 오더라도 고택은 원래 쪽이 좋고 복합문화단지 쪽은 독도ㆍ고구려벽화연구실, 화폐박물관, 전시실과 작업장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기념관과 기반시설을 먼저 시작하면 고택복원 등도 연차적으로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생존작가의 기념관 건립을 두고,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을 건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살아있을 때,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살아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결국 돌아간 뒤에야 많은 돈을 들여, 효과 떨어지는 전시를 하는 우리나라 풍조가 좀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 고인이 된 후에 전시품만 덩그러니 전시하는 것보다는, ‘살아있는 예술인’ 그 자체를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생존 시에 못 모셔오면 고암 이응노 선생 짝이 날 수 있습니다. 고암미술관은 대전, 홍성, 아산 등으로 쪼개져 있습니다. 전시회 한번 하려면 미망인께서 이곳 저곳 작품 구걸(?)하러 다니며 전시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생동하는 기념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존해 계시는 예술인들을 모셔야 합니다.”

▲강윤모 예산 모아치과 원장
◆강윤모 예산 모아치과 원장

 

“일랑 선생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경험상으로 볼 때 가능하면 행정적 간섭은 배제되고 민간인들이 유치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시스템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강윤모 원장. 강 원장은 일랑 기념관 건립이 민간 중심이 돼야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10년 전 대규모 도립미술관 건립을 위해 애쓰셨는데, 소규모 기념관 건립으로 결정돼 아쉽지 않으신가요?
“처음 우리가 서명운동을 시작한 것은 우리 예산 출신인 일랑 이종상 선생님께서 국내 미술계에서 무척이나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고 시작했습니다.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초청 강연회까지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많은 계획을 구상했었습니다. 사실 지금 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은 우리가 계획했던 것들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이렇게라도 일랑 선생님을 기릴 수 있게 돼서 기쁘게 여기고 있습니다.

-혹 군수님 임기가 끝나기 전에 기념관 건립공사가 시작되지 못하면, 기념관 건립이 흐지부지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솔직히 그 부분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현재 기념관 사업을 추진하시는 분들은 기계적인 태도로 일하지 않습니다. 기념관 건립을 바랐던 예산 주민들의 오랜 염원을 이해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며 업무를 추진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안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랑 선생 기념관이 예산지역에 어떻게 ‘자리매김’ 하기를 바라시나요.
“보통 기념관이나 박물관들은 시간이 지나면 화석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 문 열었을 때만 시끌벅적하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아무도 발걸음을 주지 않는 곳이 됩니다. 건립될 기념관이 풍부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구비해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래도록 일랑 선생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 후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