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여행] 중구 광희동, 신당동 떡볶이 골목
[골목길 여행] 중구 광희동, 신당동 떡볶이 골목
  • 조희영 기자
  • 승인 2012.02.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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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동 성곽을 따라 올망졸망 모여있는 옛 동네

지하철 청구역 1번 출구를 나와 뒤를 돌아보면 신당1동 마을마당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다. 기왓장을 얹은 돌담벽으로 입구가 둘러싸여 있고, 이 작은 마을마당 안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들이 존재한다. 소나무, 대나무 아래 위치하고 있는 철쭉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이곳에는 전국에서 최초로 금연화장실로 조성된 공중화장실이 존재한다. 화장실에 흡연경보기 및 금연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작지만 동네 주민 누구나 손쉽게 찾아와 쉬어갈 수 있는 동네 속 작은 휴식처이다.

 

 

신당1동 마을마당을 오른쪽에 두고 똑바로 언덕길을 올라가면 그리움을 유발하는 오래된 거리가 등장한다. 아직 건설·개발업자들의 손이 닿지 않은, 옛 서울의 허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이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바쁜 서울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변함없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오랜 동네길을 따라 걸어가면 빛바랜 노란 5층 건물이 등장하는데, 이 건물 5층에 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가례헌'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한 '국악 상설 공연장'이다. 입구에 작게 '민속예술관 가례헌'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건물에 발을 들이자, 제대로 층간 구분이 안 가는 계단을 올라가니 가례헌이 보인다.

 

 

가례헌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인 서도소리와 배뱅이굿 예능보유자인 이은관 선생의 제자인 박정욱 명창이 운영하는 곳이다. 서도소리는 평안도·황해도를 중심으로 민간에서 주로 불린 노래로, 얕게 탈탈거리며 떠는 소리, 큰 소리로 길게 뽑다가 갑자기 속소리로 가만히 떠는 창법 등이 특징이다.

 

 

가례헌 곳곳에는 박정욱 선생이 애정을 가지고 수집한 도자기, 장식장, 부채 등 골동품이 가득하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곳은 '낭월당'이라는 간판이 걸린 방이다. 이 곳은 '이은관 선생 박물관'이라 볼 수 있는 곳으로, 이은관 선생이 직접 쓰던 갓이나 정악대금, 레코드판, 과거 활동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곳에서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공연이 펼쳐진다. 2만원의 입장료를 내면 공연 전에 박 명창의 어머님이 준비한 정성스런 식사와 차를 마시고, 판소리부터 시작해서 민요, 기악, 퓨전기악합주에 이은관 선생의 배뱅이굿까지 다양한 국악 공연 관람이 가능하다. 공연 후엔 뒤풀이로 다같이 막걸리를 한 잔 한다. 박정욱 명창은 서울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국악 공연장이 없는 점을 아쉬워 해, 이런 장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서울형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돼, 한국의 전통문화 및 예술을 널리 알리고자 다양한 전통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가례헌을 나와 걷던 길을 따라가면 옛 모습 그대로인 수리점, 철물점, 구멍가게, 약국 등이 줄서있다. 빛바랜 간판들을 따라가다 보면 광희문 교회가 눈에 들어오는데, 교회의 맞은편에서 옛 서울성곽을 찾을 수 있다. 서울성곽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끝에는 한양의 옛 성문인 광희문이 존재한다. 광희문(光熙門)은 과거에 상여가 나가는 문이라고 해서, 주검 시(屍) 자를 써 시구문(屍驅門)이라고도 불렸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가던 길에 이 문을 통해 피신을 가고, 1907년에 일제가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면서 이에 저항한 한국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시신을 이 문 밖에 방치했다고 한다.

광희문에서 오른쪽에는 다시 언덕을 올라가며 돌아가는 동네길이 등장한다. 골목 입구에는 간판도 없는 허름한 방앗간과 과일이며 생선이며 있을 건 다 있는 수퍼가 위치한다. 길가에는 '단추구멍' '시야게'가 적힌 미싱점, 간판은 없지만 메뉴가 유리벽에 잔뜩 써있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간판도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영업 중인 식당들. 주인이 없는데도 편하게 앉아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동네사람들. 거리에는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가, 뛰어다니는 아이들보다는 바삐 움직이는 노인들이 더 많다.

 

 

동네를 빠져나와 다시 가례헌으로 와서 역으로 돌아가는 길 왼편에 신당동 '떡볶이 타운'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인다. 약 200m를 쭉 걸어가다보면 신당동 떡볶이 타운이 등장하는데, 큰 입구쪽이 아닌 작은 출구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떡볶이 타운'이라는 이름 탓에 기대치가 높았던 것에 걸맞게 정말 떡볶이 가게들만 즐비하다. 어느 곳이든 자신이 '원조'이고, 방송에서 다뤄진 적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을 들어가서 먹어도 무방할 듯 싶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광희문. 그 문 근처에서 생활 터전을 꾸리고 사는 사람들. '디자인'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져간 옛 정취 가득하던 곳들을 지켜보며 변함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청구로, 즉 광희문 가는 길은 광희문과 같은 '시대적 아픔'을 묵묵히 지켜보는 역사의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