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여행] 세종대왕에서 세종대왕으로 끝나는 작은 여행
[골목길 여행] 세종대왕에서 세종대왕으로 끝나는 작은 여행
  • 김희연 기자
  • 승인 2012.02.28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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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 종로의 골목길

도시의 매력은 번화한 도로가 아닌 골목길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15년 전 독일의 한 신문은 서울을 다룬 특집기사를 통해 "골동품의 거리인 인사동골목길은 차량통행이 금지되는 일요일이면 점쟁이, 서예가, 초상화가가 거리에 나와 활동하는 생명력 넘치는 거리"가 된다고 적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행객에게 가장 많이 소개되고 있는 골목길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돈도 시간도 없고 심지어는 혼자일지라도 언제든 가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골목길. 특히 본지는 수많은 골목길 중에서도 문화와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길에 주목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히 접근할 수 있고 서울의 정수가 녹아있는 골목길은 의외로 많다. 먼저 문화와 정치의 1번지로 불리는 종로의 골목길부터 돌아보자.

이번에 돌아볼 길은 명실공히 종로의 1번지인 광화문 광장부터 시작한다. 광화문 광장은 광화문역 9번 출구에서 바로 연결돼 있다. 세종대왕의 위풍당당한 동상을 바라보고 걷다가 경복궁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동의파출소가 보이는데, 여기까지 오면 바로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통의동 백송 터다.

통의동 백송은 한때 우리나라 백송 중에서 가장 큰 나무였으나 1990년 7월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했다. 지금은 고사된 백송 밑동을 둘러싸고 후손 4그루가 자라고 있다. 흥미롭게도 4그루에는 각기 주인이 있는데 종로구청, 서울시, 문화재청, 그리고 나무사랑으로 유명한 홍기옥 할머니다. 참고로 옛날 이 일대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백송 터를 끼고 오른쪽으로 걸으면 통의동 한옥마을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옛날에는 경복궁의 서쪽 지역을 통틀어 서촌이라고 불렀다. 서촌은 지금의 통의동, 체부동, 창성동 등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를 가리키는데, 조선시대 이곳은 고관대작이 살았던 북촌과 달리 중인과 일반 서민의 터전이었다. 현재 서촌에는 한옥 600여동 이상이 남아 있다. 통의동 뒷골목은 그중 보존이 잘 돼 있어 종로 600년 세월이 진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동네다.

통의동 한옥마을을 지나다보면 보안여관이라는 예스러운 간판이 보인다. 80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켜온 보안여관은 광복 이후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시인과 작가, 예술인들이 자리를 잡기 전 장기투숙하는 공간이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청와대 직원들이 주고객이었고 경호원 가족의 면회 장소로 사용돼 지금도 보안여관을 ‘청와대 기숙사’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여관은 경영난으로 2006년 결국 문을 닫았다. 지금은 건물 외벽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이 돼 있다.

보안여관을 지나 창성동 한옥마을, 쌍홍문 터를 거쳐 발길을 머물 곳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던 선희궁이다. 처음에는 의열묘라 불렀으나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대우를 높여서 선희궁이라 이름을 고쳤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엄숙한 인상을 풍기고 있고 많이 훼손된 상태다. 그러나 사도세자와 정조, 영조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걸으면서 역사의 정취를 느껴보자.

바로 그 근처에는 서울농학교와 맹학교 담장 200m에 벽화가 조성돼 있다. 양각 점자벽화와 소망을 담아 학생들이 만든 그림 타일이 붙여져 있다. 각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수화’와 ‘만지는 글, 아름다운 기억 점자’라는 테마를 붙여 전시해, 이곳 학생들의 꿈과 마음을 단편적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벽화를 따라 굽이굽이 돌다보면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의 박노수 가옥(朴魯壽 家屋)을 볼 수 있다. 이 집은 1938년에 건립한 이층집으로, 집터 뒤에는 '송석원'이라는 추사 김정희가 쓴 암각글씨가 있었던 유서 깊은 장소다. 집은 당시 중국 기술자들이 참여해 한옥과 중국, 그리고 양옥의 수법들이 섞인 절충식으로 지어졌다. 현 소유자인 박노수 씨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낸 동양화가로, 이 가옥에 1972년부터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함부로 들어가지 말자.

박노수 가옥을 지나 왼쪽으로 걷다 보면 동양화가 청전 이상범(1897~1972)이 살았던 집과 작품 활동을 하던 화실이 나온다. 전통 산수화의 맥을 이으면서도 한국의 산천을 독자적인 화풍으로 그려내 향토색 짙은 작품을 선보인 이상범 화백. 그는 이곳 화실 청전화숙(靑田畵塾)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34년간 작품활동을 했다. 이상범 가옥 및 화실은 등록문화재 제171호로 지정돼 있다.

시작과 끝은 같다는 말이 있다. 세종대왕 동상을 바라보며 출발했던 처음을 기억한다면 마지막 장소가 더욱 뜻 깊게 느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볼 곳이 바로 세종대왕이 태어난 장소기 때문이다. 현재 생가 터는 없고 길가에 ‘세종대왕 나신 곳’을 알리는 표지석만 남아 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존경받는 이유는 태어난 곳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언어 한글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문화에 언어라는 날개를 달아 준 세종대왕을 기리면서 골목길 여행을 마무리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