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오페라 '연서'>대사 공들인 흔적 역력하나,여전히 스토리구조 미흡
<창작오페라 '연서'>대사 공들인 흔적 역력하나,여전히 스토리구조 미흡
  • 이지연 기자
  • 승인 2012.03.13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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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하나 완성도 비해 상대적으로 개연성 부족, 반면 음악 돋보여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제작된 창작 오페라 '연서'의 프레스콜이 13일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 한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단은 아륵의 손에서 나온다. 그의 마음에는 오로지, 사랑하는 도실의 마음에 드는 비단을 만들겠다는 일념 뿐이다.

이번 공연은 극단 '여행자' 대표이자, 그동안 연극ㆍ무용ㆍ오페라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위트 넘치고 생동감있는 무대'를 선보였던 양정웅 씨가 연출을 맡고, 지난해 '주인이 오셨다'로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희곡상을 수상한 고연옥씨가 각색에 참여해 많은 기대를 모았다.

오페라 '연서'는 조선시대를 주된 배경으로, 이뤄질 수 없는 청춘남녀의 러브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서로를 깊이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모진 운명 탓에 쉽게 마주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사랑은 최우정 작곡가의 애달프고도, 격정적인 선율의 음악으로 인해 한층 더 비극성을 띠었다.

'연서'에는 각기 제 안에 품은 '사랑' 때문에 고초를 겪고, 가슴앓이를 하는 네 명의 청춘남녀가 등장한다.

권세있는 사대부가의 규수였으나, 기탁의 모함으로 하루아침에 기생으로 전락한 도실. 이런 도실을 향해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다 바치는 지고지순한 사내 아륵. 오페라 제목인 '연서'는 한양에서 제일가는 비단장인인 아륵이 자신의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며 도실에게 바친 '비단치마 연서'였다.

▲ 기탁은 음모를 꾸며, 도실의 집안뿐만 아니라 도실의 인생까지도 망쳐 버린다.

그러나 아륵과 아주 대조적인 사랑을 하는 남자도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기탁이다. 그는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욕망의 화신'이다. 일찍이 도실을 사모해, 도실의 부친에게 혼인을 부탁했지만 그에게 되돌아온 것은 "꺼져라 종놈아"라는 모멸섞인 대답이었다. 이에 그는 도실의 부친을 역적으로 모함해 도실을 비천한 신분에 이르게 한 후, 그녀를 얻고자 한다. 이밖에도 아륵의 작업장에서 아륵을 도우며, 그에 대한 연정을 묵묵히 키워가는 '연아'라는 인물도 등장한다.

앞에서 언급한 네 명의 등장인물은 각기 나름의 강한 개성으로, '잔혹한 운명이 갈라놓은 사랑'이라는 주제로 자칫 지나치게 상투적으로 흐를 위험이 컸던 작품에 묘한 설득력과 힘을 불어 넣었다. 또한 자신이 어떤 '인간형'인지, 깊이있게 통찰하는 대사들도 작품의 몰입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을 꼽자면, 장면 하나하나의 완성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이야기의 개연성이다. 급작스러운 장면 전환이나, 같은 장면의 지나친 반복이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을 방해했다. '연서'는 2010년 초연 당시에도 관객들로부터 “전반적인 이야기가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새 제작진 아래서 대대적으로 내용을 수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스토리 미흡'이라는 문제가 풀리지 못했다.

▲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미흡'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서울대학교 작곡과 교수이자, 'TIMF 앙상블'의 대표인 최우정 작곡가,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시합창단이 함께 만드는, '연서'의 음악은 관객에게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작곡가 최우정 씨는 "등장인물의 감정과 대사까지 음악적 흐름에 녹여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노력을 반영하듯 대사없이 음악만으로도 인물들의 감정상태를 유추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인물의 정교한 심리 하나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음악으로 승화돼 있었다.

또한 주연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도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복잡다단한 심경의 변화를 표현해야 하는 도실역을 맡은 소프라노 강혜정씨의 풍부한 감정연기와 아리아는 유난히 돋보였다.

오페라 '연서'는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평일에는 오후 7시 30분에, 토요일에는 오후 3시와 7시 30분에 걸쳐 두 번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