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3부 안 내주면 출판사에 불낼 거예요. ㅠㅠ
[기획]“3부 안 내주면 출판사에 불낼 거예요. ㅠㅠ
  • 유시연(일간문예뉴스 ‘문학in’ 기획편집총주간)
  • 승인 2012.03.1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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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압박하는 마니아 팬이 출판사 살렸다... 한때 수지 안 맞아 ‘갈팡질팡’

▲필자 유시연
“3부 안 내주면 출판사에 불낼 거예요. ㅠㅠ”, “판타지 속편을 내라”, “판타지 용어에 익숙지 않다”... 출판사를 압박하고 항의하는 독자들이 있어 한 출판사가 한때 갈팡질팡했었다. 책을 3~4부 내면 출판사로서는 수지는커녕 잔일만 많아지는 데다 잘 팔리지도 않는 책 속편을 내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은행나무 출판사가 미국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은행나무) 시리즈를 처음 펴낼 때에는 애물단지였다. 2000년 1부를 4권, 2001년 2부를 4권 냈지만 8권 합쳐 3000부밖에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권당 1200쪽이나 되는 두꺼운 분량이어서 번역비와 제작비를 따지면 책을 낼수록 손해만 입는 셈이었다.

은행나무는 “3부 출간을 포기하려 했지만 몇몇 마니아 팬들이 책을 내달라며 간청 겸 협박을 해왔다”며 “하는 수 없이 2005년 3부 2권, 2008년 4부 2권을 냈는데 4부가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팬들이 ‘번역자가 (각기 다른 용도의 칼을 뜻하는) sword와 knife를 혼용하는 등 판타지 용어에 익숙지 않다’고 항의했다”고 되짚었다.

4부를 새로 번역했고 3월 다시 펴낼 예정인 은행나무는 한동안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크게 웃고 있다. 이 소설이 미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지난해 우리나라서도 방영되면서 지난 한 해에만 7만 부 이상 팔리며 ‘효자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진희 은행나무 편집주간은 “낼 때마다 고민했고 항상 부담스러웠으며 그만큼 미운 정도 쌓였던 작품이다. 이젠 마니아 팬들이 고맙다”며 활짝 웃었다.

출판계에서 장르 소설 마니아 팬은 악명이 높다. 팬 층은 추리와 스릴러가 가장 대중적이고 그 다음이 중세를 배경으로 기사와 용 마법사가 나오는 판타지, 마지막으로 미래 이야기를 다룬 SF 순이다. 하지만 극성스럽기는 SF 팬들이 으뜸이고, 그 다음이 판타지, 추리 스릴러 순이다.

장르 소설 전문 출판사 황금가지 김준혁 부장은 “SF나 판타지 소설의 마니아 팬은 편집자가 잡아내지 못한 실수까지 날카롭게 집어내며 고치라고 압박한다”며 “책에 사소한 오류라도 있으면 항의하는 팬들 때문에 출판사 전화는 먹통, 홈페이지는 다운된다”고 밝혔다.

마니아 팬들은 작가 전집을 모으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한 작가가 쓴 작품이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판형과 디자인이 뒤죽박죽이면 컬렉션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 역사비평사와 함께 일본 추리 소설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 시리즈를 펴낸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컬렉션이 됐을 때 전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많이 고민했다”고 귀띔했다.

마니아 팬들은 여성보다 남성이 많고 연령대는 30~40대가 많다. 김준혁 부장은 “1990년대 PC통신을 통해 장르 소설을 접했던 10, 20대 젊은이들이 20년째 그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니아 팬들 가운데 스스로 장르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다.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작가도 미국 장르 소설 거장 스티븐 킹을 좋아하는 열성 팬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스티븐 킹 모임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니아 팬들은 출판사보다 먼저 원서를 읽고 출판을 제안하기도 한다. 황금가지는 마니아 팬들이 출간 제안 및 기획, 투고 등을 하는 인터넷 공간을 만들어 다음 달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