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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 ‘거침없이 얼씨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를 먹고 살게끔 해주는 분들이 바로 팬들이에요. 특히 그중에서도 어머님들의 수가 엄청나죠. 사설기관, 학원, 문화센터 등을 통해 취미로 경기민요 배우는 어머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런 분들과 좀 더 소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였죠. 바로 어머님들과 함께 공연을 하는 것이에요. 어머님들만이 갖고 있는 ‘훈훈함’이 있는데 그걸 이용해 관객들을 어루만져주고 또 재미와 감동을 드리기도 할 생각입니다. 또 깜짝 게스트도 출연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취미로 시작한 분들이세요. 이런 여섯 분의 어머님들이 모여 ‘숙 씨스터즈’가 만들어졌어요. 경기민요계의 아줌마그룹의 탄생이랄까요?(웃음) 참 재밌게도 우연의 일치로 여섯 분 모두 이름이 ‘숙’으로 끝나요. 그래서 ‘숙 씨스터즈’라고 지었답니다. 아직은 아마추어이지만 무시 못 할 실력을 지니고 계세요. 대중가요에 가까운 곡들이나 무겁지 않은 곡들을 선곡해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곡들로 무대를 구성했습니다”
-우리 소리 중에서도 유독 경기민요를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죠. 이유가 뭘까요?
“일단 소리가 굉장히 경쾌합니다. 고음에서 그런 느낌이 나오는 듯해요. 고음의 화려한 테크닉에 다들 반하곤 하시죠. 그걸 일명 ‘방울목’이라고 해요. 마치 목에서 방울 굴러가는 듯 하다해서요. 거기서 나오는 특이한 매력에 빠지는 것 같아요”
-대표로 계시는 ‘이희문컴퍼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가 하고 싶은 공연과 프로젝트를 마음껏 진행하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작년에는 경기민요소리프로젝트로 ‘나비’라는 팀의 왕성한 활동을 서포트하고 예술감독도 했어요. 올해는 ‘숙 시스터즈’가 어떻게 되냐에 따라 계획이 잡히겠지요?”(웃음)
-작년에는 특이하게 ‘황실살리기프로젝트’를 진행하셨는데, 이에 대한 말씀 부탁드려요.
“유럽이나 일본과 같이 왕실이 보존돼있는 나라들을 보면 전통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는 점점 뒷전으로 밀려가고 있는 상황이죠. 이렇게 된 이유는 왕실이 끊기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화정책 또한 너무 엎치락뒤치락하고요. 그래서 황실을 살려야한다는 생각으로 ‘황실살리기프로젝트’를 진행했었습니다”
-듣기로는 원래는 국악이 아닌 대중음악에 관심을 두셨다는데요?
“이십대 초반에는 가수가 되려고 했어요. 기획사에서 가수 데뷔준비를 하면서 이 길이 저와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죠.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제 유학생활 전공을 살려 뮤직비디오 조감독 생활을 꽤 하기도 했었죠”-아무래도 어머니 고주랑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어머니께서 소리하신지 이제 45년 됐습니다. 소리하게된 건 어머니의 영향이 크죠. 어려서 자라면서부터 본 게 다 그거니까요. 제 돌잔치 음식도 묵계월 선생님과 안비취 선생님께서 해주셨다니까요.(웃음) 돌잡이가 따로 필요가 없었던 거죠. 저희 어머니께서는 김옥심 선생님과 묵계월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제 어릴 때로 돌아가 당시 선생님들의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어린 아이일 때는 그게 그렇게 귀한건지 몰랐는데… 그래도 어머니 공연이나 방송국을 많이 따라다닌 편이죠. 어머니가 공연 전 준비하고 계실 때면 전 그 모습을 구경하며 의상부터 메이크업까지 일일이 관찰하며 간섭하곤 했어요”
-처음 소리를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처음엔 엄청 반대하셨죠. 어머니는 제가 소리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셨거든요. 어머니는 물론이거니와 어머니 주변 분들까지도 모두 반대했어요. 유학까지 다녀온 애가 무슨 소리를 하냐면서… 제 스승님인 이춘희 선생님께서 어머니를 설득하셨어요. 이 아이는 꼭 해야 한다면서요. 전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소리 못 했을 겁니다”
-비교적 늦게 시작한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이름을 알리셨어요.
“제가 소리는 늦게 시작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적부터 보고 배운 어머님과 선생님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요. 제 몸 안에는 가락이 흐르고 있고, 소리가 내재돼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거죠. 또 저는 소리뿐만 아니라 공연기획부터 연출까지 모두 다 하니 두려운 것 없이 빨리 달려왔던 것 같아요. 특히나 경기소리엔 남자소리꾼이 귀하거든요. 거기에 젊은 소리꾼은 더더욱 찾기 힘들죠. 그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합니다”
-다른 장르의 음악에는 관심이 있으신지요.
“정가에 관심이 있어서 요즘 김호성 선생님께 정가를 배우고 있답니다. 경기민요가 방방 뜨니까 그걸 좀 가라앉히고 또 소리를 쭉 펴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배우다보니 정가도 참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앞으로는 정가를 접목시킨 공연을 하고 싶기도 해요. 정악과 민속악이란 다른 것이 아니더라고요”
“이번 학기에 새로 개설된 건데, 팀을 구성해 무대를 만들어가는 수업입니다. 저도 늘 제 무대를 연출하고 만들어왔기에 제가 현장의 경험들을 학생들에게 다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 학생들에게 아티스트가 되는 길로 이끌어주고 싶어요. 아티스트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예술가’랄까요. 단순히 노래실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학생들에겐 제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의 역할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지금껏 해왔듯이 경기소리를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은 매년 고민에 빠져요. 이걸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매번 끝장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지금껏 하고 있고요. 어디 가서 경기소리 한다고 했을 때 창피하진 않아야하니까요. 제 자존심이에요. 제가 직접 선택한 거니까 끝까지 부끄럽지 않게 계속 쭉 해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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