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상 화백의 독도칼럼] 문화로 지켜야 할 독도
[이종상 화백의 독도칼럼] 문화로 지켜야 할 독도
  • 일랑 이 종 상(대한민국예술원 회원/화가)
  • 승인 2012.03.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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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일랑 이종상 화백
왕께서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게 된다면 온천하가 곧 화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문무대왕이신 선왕께서는 바다 속에 큰 용이 되셨고, 김유신 장군께서는 다시 천신(天神)이 되시어 이 두 성인이 마음을 합하여 이처럼 값을 따질 수 없는 커다란 보화(寶貨)를 신에게 보내시어 저를 통하여 지금이를 왕께 진상하게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왕께서 몹시 놀라 기뻐하며 바로 오색의 비단과 금옥을 용에게 답례하고, 곧 사자를 시켜 대나무를 잘라들고 그곳에서 나왔답니다. 그러자 섬과 용이 갑자기 한꺼번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왕은 귀궁하는 즉시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의 천존고(天尊庫)에 잘 간직해 두었답니다. 이 피리를 불게 되면 적병이 다 물러가고 질병이 치유(治癒)되며, 가물 때면 비가 오고, 장마때면 날이 개여 햇빛을 보게 되고, 바람이 그치며 성난 파도가 죽은 듯이 평온해진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피리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부르고 통일신라의 국보로 삼았던 것입니다. 효소왕(孝昭王) 천수 4년 693년에 부례랑(夫禮郞)이 살아 돌아왔던 기이한 일로 인하여 다시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는 이름으로 이 신비롭고 상서로운 피리를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삼국유사』권2, 「紀異」, 萬波息笛 )
이 대목을 볼 때 마다 문무대왕의 무력통일 후, 문화위민(文化慰民)의 정치적 안목과 미래를 내다보는 지정학적 비보풍수(裨補風水)에 개안되어 있음을 느끼며, 부왕에 못 미치는 신문왕의 처사에 저는 불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저 혼자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 괴이한 섬이 일본으로부터 고질병처럼 되풀이되는 식민 침략 근성을 수호해주는 독도라고 연계하여 상상하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좌청룡이 없는 우리민족은 이후 동해(東海)로부터 동해(東害)를 피할 길이 없을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죽어서도 동해를 지키고자 수장(水葬)되어 스스로 용(龍)이 되기를 원했던 신라 문무대왕의 큰 정치철학이 담긴 호국정신이 생각납니다. 통일 위업을 달성한 그가 피로 얼룩진 천하를 물리적인 동화(同化)가 아니라고 정신적인 화해(和解)로 이끌기 위하여 쇠로 만들어졌던 무기를 녹여서 호미를 만들고, 대나무로 만들었던 죽창(竹槍)대신 피리를 만들어 불게 하였던 위정자로서의 번득이는 미래지향적 지혜가 떠오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현구의 문화적 치세위민의 정치철학엿던가요.

이리하여 아들 신문왕에 이르러서는 통일국가의 힘으로서 치민(治民)을 하기보다 오히려 문화로서 위민(慰民)을 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문화통치의 철학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바로 삼국유사의 만파식적(萬波息笛)설화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물론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같은 내용이 나오지만 거기서는 이 설화가 "괴이(怪怪)하여 믿을 수 없다"고 일축하면서 합리주의적 유교사관에 의해 못처럼의 문화적 상상력을 여지없이 폄하(貶下)시켜버리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신화를 창조하지 못하는 민족은 내일의 문화가 없고 성미술(聖美術)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종교는 이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건조한 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신화나 설화는 도무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예술은 영락없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난세지교(亂世之巧))에 다름 아닌 잡기가 되고, "사람은 빵만으로도 살 수 있다"는 물질 만능의 풍조가 생각나 슬픈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화적 시각을 역사 서술의 내포(內包)로 인식하고 외연적(外延的) 애니무스(animus)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속살 같은 애니마(anima)의 상상력을 살려 독도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내는 것이야말로 독도에 문화를 심어 나라를 지키자는 참뜻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혹자들은 이런 주장을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으나 제가 독도의 만파식적(萬波息笛)에 등장하는 괴이한 섬과 독도와의 불가분성(不可分性)을 말하는 까닭이 바로 이런 꿈의 상상력을 빌려 설화의 깊은 참뜻을 찾아내 보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동해, 먼 바다에 떠있는 자라머리의 작은 섬과 거기서 자라나는 신기한 대나무가 음과 양으로, 혹은 동과 서로 서로 나뉘고 또, 어우러져 언어 이전의 소리를 창출해 내듯이 삼형제바위를 품고 있는 독도의 지형적 특성을 주목해 봐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우리는 자라머리 형상을 한 작은 섬의 정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5천원권과 5만원권 화폐 영정을 그리신  일랑 이종상 화백(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이 우리나라 최초로 독도에 입도해 독도를 그릴 당시의 소회를 ‘60인의 문화의병’ 작품집 도록에 실은 글의 일부를 발췌해 연재로 싣고 있습니다. 특히 이 글은 당시 대한민국의 한 젊은 화가에 의해 예술 창작품으로 독도가 처음 태어나던 감격스러운 입도 순간을 작가노트를 통해 발표한 것입니다.

     일랑 선생은 우리 영토를 문화로 지켜야한다는 일념으로 독도문화심기운동의 불씨를 지폈고 이후 독립기념관과 유수의 신문 등과 공동주최로 '겨레의 집'에서 ‘독도사랑,독도수호’범국민문화축제가 열리게 했습니다. 이후 독립기념관 초대로 ‘일랑 이종상, 독도사랑 30년 특별초대전’이 한 달가량이나 독도와 관련된 귀중한 자료들과 함께 전시돼 독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켰습니다.

     2012년 현재까지도 일랑 선생은 ‘문화로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독도그리기와 전시를 통해 우리 영토 독도의 중요함과 사랑을 널리 알리는데 혼신을 다해 오고 있습니다.

     서울문화투데이는 일랑 이종상 화백님의 이런 그간의 헌신을 높이 기리며 그 뜻을 함께 하기 위해 2012년 연중 캠페인으로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와 함께 ‘문화로 독도를 지키자’를 전개합니다. 아울러 앞서 밝힌 일랑 선생님의 작가노트 글을 계속해서 싣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