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모든 문제는 편견에서 시작 된다
[여행칼럼] 모든 문제는 편견에서 시작 된다
  • 정희섭 국제 글로벌문화전문가
  • 승인 2012.03.2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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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름, 늘 오고 싶어 했던 방콕에 온지 벌써 3개월째, 그토록 좋아했던 태국에 와 있건만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나였다. 꿈에 바이어 측의 매니저인 Maitri 씨가 매일 나타나 나에게 호통을 친다.

“브라이언, 도대체 당신 회사의 휴대폰은 왜 이렇게 불량률이 높은 거죠”
“당신이 이곳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총 지휘하는 매니저이니 설명을 해봐요”

난 그 날도 새벽에 잠을 깨서 이른 아침에 바이어 사무실로 출근할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다시 잠을 청해도 Maitri 씨의 사나운 표정을 생각하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식의 악몽을 꾼 것이 방콕에 도착한 첫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난 악몽의 이유도 모른 채 매일 매일 걱정과 긴장의 나날이 보내고 있었다. 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태국은 너무 좋아하는 나라라서 이번 프로젝트를 하러 오기 전에도 스무 번 이상이나 여행을 오지 않았던가. 음식도 너무 맛있었고 모든 것이 저렴해서 아무리 돈을 써도 지갑은 얇아지지 않았고 마치 중국의 황제가 된 기분이었다. 발 마사지를 매일 받아도 별로 부담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순박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았다. 그래서 거의 매년 여름휴가 때는 늘 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성수기라서 비행기 표가 없으면 웃돈을 더 주고라도 오고 싶었던 곳이 태국이었다. 난 태국 중독자였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를 맡고 나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태국을 빨리 떠나고 싶어졌다. 모든 것을 빨리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고 싶었다. 그러나 왜 그런지 깨달게 되는 데는 더 이상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여행으로 태국을 올 때는 난 항상 갑의 위치에 있었다. 내가 돈을 쓰는 입장이었고 태국이라는 나라는 을의 위치에서 나에게 여러 가지 관광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입장이었다. 난 매번 태국에 올 때마다 친절하고 순박한 태국인들의 미소와 표정에 적응된 것이었다. 물론 을의 위치에 있는 태국 사람들로부터.

그런데 이번은 어떤가. 나는 태국 바이어에게 우리 회사가 만든 휴대폰을 팔러온 것이고 동시에 한국에서 동행한 엔지니어들의 작업을 정리하고 조율하는 업무를 수행하러 온 것이었다. 즉, 나의 위치는 갑에서 을로 변한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태국의 상황을 머릿속에 자의적으로 그려 넣고 편견을 키워간 것이다. 한국인들보다 못사는 태국인들이 어떻게 잘 사는 한국 사람인 나에게 호통을 칠 수 있을까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유럽 바이어들로부터 클레임을 당하면 항상 긴장하던 나였지만, 무의식적으로 약간은 깔보았던 태국사람들이 나에게 클레임을 쳤을 경우에는 긴장보다는 맞대응을 해야 한다는 식의 편견으로 가득 찬 생각이 결국은 악몽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머릿속에 틀어박힌 생각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라고 할까. 나는 Maitri 씨의 호통을 귀중한 바이어의 클레임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괘씸하다고 여긴 것을 아닐까. 

유럽 바이어이건, 아프리카 바이어이건, 아니면 중동의 바이어이건 결국은 우리 회사에 돈을 주고 물건을 사가는 아주 존귀한 고객이었는데 난 그들을 나만의 인종적 잣대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깊이 반성했고 생각을 고쳤다. 갖고 있던 편견을 모두 날려 버리고 그날 이후 최선을 다해 Maitri 씨의 의견을 프로젝트에 반영하고 본사에 요청했다. 그랬더니 정말 이상하게도 Maitri 씨는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나머지 9개월간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귀국할 수 있었다. 나에게서 악몽이 사라지고 남은 태국 체류 기간이 다시 행복한 시간으로 바뀐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나의 위치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말도 안 되는 편견을 버린 것이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여러 가지 형태의 편견을 키우고 있다. 작은 편견이라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 없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Maitri 씨와 나는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있는 친구가 되었다. 그 때 내가 편견을 버리지 않고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조차 싫다.

정희섭 숭실대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