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맞나?
의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맞나?
  • 서문원 기자
  • 승인 2012.03.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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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의릉 둘러싸고 콘크리트 병풍 더 높게 더 넓게

지난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인 ‘의릉’(사적 204호)이 재건축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한 의릉 주변은 아파트단지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차지해 마치 ‘샌드위치 속 햄’처럼 위축된 형편이다. 이런 중에 지난 해 10월 문화재청이 ‘의릉 주변 재건축’을 승인했다. 그것도 50층 161m높이의 초고층 2만 9천 평에 달하는 넓이다.

하지만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 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entre)가 ‘정릉 재건축관련 문제제기 공식 확인서’를 보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지난 해 12월 ‘정릉을 사랑하는 모임’으로부터 발송된 조선왕릉 주변 재건축 관련 동영상과 자료를 확인하고 2개월 만에 회신했다.

키쇼어 라우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 대표는 이 편지에서 지난해 12월 ‘정릉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발송된 조선왕릉 재개발 현12월29일 보낸 동영상 등의 자료를 확인하고, 한국정부에 ‘언급과 해명’(Comment and Clarification)을 공식 요청했다. 이 뿐 아니라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도 관련 자료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해 10월 12일 문화재위원회는 ‘의릉 주변 (이문3-1지구)재개발’과 관련해 제3차 합동분과위원회에서 대지면적 29,090평에 지하 6층 지상 2~45층 최고 높이 161m, 4,140세대 초대형 건축안의 현상변경을 승인했다. 참고로 의릉이 위치한 천장산 높이는 141m에 불과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센터에서 ‘조선왕릉 40기’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왕릉은 풍수지리사상을 바탕으로 조영됐다. 또한 엄격한 질서에 따라 내부 공간을 구성하면서도 아름다운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주목할 만한 신성한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아울러 봉분과 조각, 건축물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탁월한 사례로 동아시아 묘제의 중요한 발전단계를 보여준다”라고 소개됐다.

위와 관련해 ‘정릉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정사모)의 권영일 회장은 “의릉에는 두 기의 능묘가 있는데 전후로 배치돼있다. 사유를 보면 엄격한 풍수지리에 따라 지어진 것이다. 그만큼 왕궁의 지리와 능묘배치가 이뤄졌다”고 부연 설명했다.

하지만 풍수지리설을 참고로 지어진 의릉의 좌청룡에는 현재 아파트단지가, 우백호에는 한국종합예술학교가 들어서있고, 바로 2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문3-1지구에는 45층(높이 161m)의 초고층 아파트단지 건립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7일 본지와 의릉답사를 다녀온 권영일 회장(정사모)은 의릉 재건축 심사 당시 문화재위원들의 검토의견을 보여주며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비판했다.

살펴보면 “지난 2월 제 1차 합동분과 심의에서 제시한 의릉 주산인 천장산 높이(141m)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라고 밝히고 “ 이문3-1구역의 건축높이는 의릉 혼유석에서 사업대상지를 바라볼 때 보이지 않고, 주산인 천장산  높이보다 낮게 계획돼야 할 것으로 판단됨”으로 나와 있다.

▲세계문화유산 의릉을 에워싸고 진행 중인 고층 아파트 건축 예정지

권 회장은 “문화재보호법에는 문화재가 500m내외로 훼손가능성이 발생되면 문화재청이 심의하도록 되어있다”고 지적하며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까지 의릉 주변 재건축은 높이 12층으로 제한됐지만 문화유산으로 확정되자 수차례 수정을 거쳐 161m가 됐다”고 의릉주변에서 진행 중인 실태를 설명했다.

그는 아울러 “유네스코로부터 ‘원상복구’를 약속하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의릉이 지난 2년 동안 수차례 심의를 거친 뒤 기존 계획안보다 훨씬 높 넓게 재건축된다는 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권 회장은 “조선왕릉인 의릉이 지난 1962년부터 군사정권의 안기부 건물로 사용되면서 상당부분 파괴된 마당에 의릉 주변 원상복구 보다 민간 고층아파트단지를 건립해 ‘좌청룡우백호’를 대신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이와 관련해 ‘조만간 종합적인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황평우 한국전통문화유산연구소 소장은 1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조선왕릉 의릉이 있는 서울 성북구 이문동 재건축과 관련해 “지금까지 정릉과 달리 지금까지 의릉은 지역주민의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이 없었다”고 밝히고, “결정적인 문제는 정부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사용 중인 의릉 주변은 지난 1962년부터 군사독재시절 중앙정보부로 사용한 지역”이라고 밝히고, “문화부가 이를(중앙정보부) 철거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건물신축허가를 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문화부는 문화재보존에 대한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45층에 달하는 초고층 아파트단지 건립과 관련해 황 소장은 “원칙과 기준이 없다보니 인간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161m까지 올라갔다”면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평우 소장은 “과연 2012년을 사는 우리가 우리 멋대로 용적률을 다 쓸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면서 “다음 세대가 활용할 몫까지 차지한 우리는 시장만능주의에 허우적대는 등 너무 간악해졌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아울러 “이제 한국만이 아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의릉을 보존관리하기 위해 전문가 및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종합적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