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작가 조영남] ‘고스톱’ 통해 세상 모순 인지하게끔 하는 게 내 작품 역할
[인터뷰-작가 조영남] ‘고스톱’ 통해 세상 모순 인지하게끔 하는 게 내 작품 역할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정리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04.0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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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전 ‘다정다감’, 4.4~4.21 장은선갤러리

“앞날 얘기하는 건 부질없어, 오로지 현재를 즐겨”
‘다정다감’展, 한국전통 담은 오브제적 회화 만날 수 있어

해진 바지 밑단부터 군데군데 묻어있는 물감을 따라 시선이 올라간다. 멋스러운 청 남방과 그의 거실 창밖으로 훤히 보이는 영동대교 아래 새파란 한강 물결이 조화롭다.

“노트북 자판 뚜들기고 있는 저 자세를 봐봐. 남자가 저런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옹졸해 보이고… 흉해, 너무 흉해”

하염없는 강물을 바라보던 기자의 감상을 깨는 유쾌한 목소리가 들린다. ‘트렌디’한 예술인임에도 불구하고 왜 SNS는 하지 않냐하는 기자의 질문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온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늘 웃음을 이끌어 내며, 때론 당혹스러움까지 안겨주는 조영남 작가. 그를 지난달 28일, 청담동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어디로 흘러가는가>, Acrylic  on canvas, 100x82cm

 

‘새로운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이끌어낸 서양화가’란 평을 받는 세련된 작가임과 동시에 혹은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은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혀 트렌디 하지 않은’ 아저씨일수도 있는 그가 이달 4일부터 21일까지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장은선 갤러리에서 초대전 ‘多精多感다정다감’을 가진다. 1973년을 시작으로 해 서른여섯 번째 초대 개인전이다.  

40년 가까이 화가로서 우리문화의 감동을 전하기도, 때로는 유머러스함을 담은 회화를 선보여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서정적 추상표현을 통해 입체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꺼내 보인다. 다양한 재료들과 한국의 전통적 이미지들은 마치 어릴 적 듣던 동화와도 같은 순수하면서도 우화적인 색조로 다가온다.

-아니, 그럼 컴퓨터조차도 안한다는 말씀이세요?
“본질적으로 기계란 걸 싫어해. 뭐, 기계에 알레르기가 있다고나 할까… 제일 거슬리는 건 현관문 들어올 때 번호 누르고 들어와야 하는 거. 그냥 기계랑은 좀 떨어져 살고 싶단 말이지”

◆‘다정다감’, 인간애 담은 따뜻한 전시

-이번 전시 주제가 ‘다정다감’이죠?
“장은선 갤러리의 장은선 대표가 뽑아준 제목이에요. 다 같이 다정다감하게 살면 좋은 거 아니겠어? (이에 장은선 대표가 말을 덧붙였다. “제가 선생님 책을 읽어보면서 느낀 것이 선생님께선 사람에 대한 따뜻한 정을 지니고 계시다란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제목을 떠올리게 된 거고요”)

-화투 48패 중 특히 5광을 주 소재로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예전엔 왕들, 높은 사람들 그리곤 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런 게 존재하지 않잖아. 모든 인간들은 상징적으로 ‘5광’, ‘8광’에 대한 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시점에 난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고… 이것 역시 역사적인 거 아니겠어? 내 그림들에 역사적인 그림이라고 제목을 달아야한다니까. 그렇게 사람들 사고를 확대시킬 수 있고, 그 장치로 화투를 이용하는 거예요. 사람들도 내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화투를 그렸다고 보기보단 내가 많은 궁리를 했겠구나, 내 그림이 살아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 근데 실은 말이지, 난 화투도 전혀 할 줄 모르고 바둑도 둘 줄 몰라. 다만 화투랑 바둑이 멋있게 보여. 그래서 작품 소재로 택한 것도 있어요”

◆내 작품은 모순 흔적 따라가는 것

-사람들이 8광에 대한 꿈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작품들을 보면 유독 ‘8광’을 중심에 세우거나 앞세운 작품이 많기도 해요.
“응, 사람들의 ‘8광’에 대한 꿈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또 조형적으로는 대표성 있게 보이기도 하고… 우연이지만 1에서 10사이에 위치한 8이란 숫자는 참 적절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피라미드 꼭대기에 모셔놓은 주인공 같은 거지. 미학적으로도 심플하면서도 시원하게 보여서 난 좋습디다”

▲조영남 선생의 거실 한편에는 작품들이 세워져 있다. 전면에 보이는 작품은 <가족여행>

-작품에 담고자 하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으신지?
“모순의 흔적을 따라가는 게 바로 내 그림이야. 음악으로도 할 순 있겠지만 그림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거든요. 세상에는 모순이 많은데, 지금 내가 하는 교육은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아. 모든 그림에는 아이러니가 있기 마련인데, 예를 들어, 화투가 꽃보다 아름답진 않잖아? 하지만 난 사람들에게 화투가 더 근사한 것이라며 모순을 떠는 거지. 모순을 인지하게끔 하는 게 내 그림이 하는 역할이야”

◆나에게 가족이란 ‘이루지 못할 희망’

 

-‘가족여행’과 같이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보이는데, 선생님께 가족이란 어떤 건가요?
“의미 없어.(웃음) 의미가 있었다면 내가 가족을 두 번이나 해체시켰겠나? 난 가족을 놓친 사람이에요. 버렸다고 표현해도 되고… 가족을 움켜쥐고 있다가 놓쳐버린 나는 아마 가족에 미련이 있나봐. 가족은 나에게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거요. 그래서 난 작품을 통해 가족여행을 가고, 가족크루즈 모습을 그리죠. 예술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랄까”

-팬 카페에 선생님을 ‘한국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이라 평 해놨던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얼마나 인물이 없었으면 나를 추천한 거야?(웃음)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해주든 나하곤 상관없어. 물론 관심도 없고. 화투 그리는 걸 르네상스라고 하니까 기절초풍할 일이지. 저런 얘기 들으면 방송 출연이고, 작품 활동이고 뭐고 다 접고 싶어져요. 그런데 이 집 유지하려면 굉장한 돈이 들어서 뭐든 해야 하니까… 그럼 이렇게 써줘요. ‘조영남은 르네상스 맨이다. 근데 가만 보아하니 힘이 없어 뵈는 게 곧 죽을 것 같다. 그러니 지금 당장 그의 그림을 사놔야 한다’ 이렇게 말야”(웃음)

그가 제일 싫어하는 건 ‘앞으로의 일’에 대해 묻는 것이다. 그건 마치 자신을 늙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단다. 그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으로서, 전혀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해 말하는 건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조영남 문화재단을 설립하자는 얘기도 들려오던데…
“어우, 끔찍한 얘기! 난 내 그림, 어디에 기증하고 그럴 생각도 없어요. 나 죽고 난 다음에 뭐 설립하고 그런 거 아주 반대야. 치사하게 나 죽은 다음에 뭐 하는 건 대체 뭐야? 살아있을 때 한다는 것도 문제야. 문화재단 설립하자는 사람들 얘기 듣고, 저 사람들을 어떻게 무찌르나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으니까”

-항간에는 ‘딴따라가 그림까지 그려서 돈 번다’는 말이 있어요.
“당연히 나와야 하는 말이죠. 내가 대중가수인데, 그림까지 그리면 전업 작가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물 흐리는 건 아닐까 생각도 많이 했지. 그런 이유로 난 단 한 번도 메이저 화랑에서 전시를 해본 적이 없어.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을 다 강구하며, 주제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다섯왕들의 가족여행  Acrylic  on canvas  103x35cm

◆대형화랑 기피는 전업 작가 생계 위협하지 않으려고…

-꼭 전업 작가만 메이저화랑에서 전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미술이 살아있어야 하기에 그에 따른 내 배려라고 할까? 아마 내가 자신이 없는 걸 수도 있고… 메이저화랑들에게 내 전시에 관해선 입도 뻥긋 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말을 꺼내면 그분들은 내 전시를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엄청 고민할거예요. 난 그런 단초를 애초에 제공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꺼내지 않은 거죠. 그런 면에선 내가 입이 굉장히 무거워. (웃음) 노래도 마찬가지야. 평생 난 PD한테 내 노래 틀어 달라, 날 MC로 써달라 말해본 적이 없어요. 내가 노래 잘하면 자기네들이 알아서 불러주겠지. ‘겸손DNA’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내 주장을 펼치지 않는 거요. 미술에서도 그래온 거야. ‘내가 잘 그리면 누군가 사주겠지’하면서 말예요. 그런데 참 이게 말이지, 내가 속으로 나 노래 잘하는 걸 알아서 이런 오만함이 생긴 거 같아. 내가 내 노래가 시원치 않다고 생각했다면 과연 그랬을까도 싶고… 내가 내 그림 자신 없었다면 이러지 못하지”

 ◆뭉크 작품철학과 내 작품철학 다를 바 없어

 

-작품 가격에 대해선 만족스러우신지?
“노.(No) 뭉크의 ‘절규’의 가격이 800억이라 하던데… 소가 오광 끌고 가는 내 그림이 물론 뭉크보단 못하지만, 철학적으로 비교해서는 뭉크에 비해 절대 뒤쳐지지 않는다고 난 생각해요. 근데 뭐, 뭉크 그림이랑 내 그림하고 차이가 만 배 차이 난다는 게 참…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난 굉장히 울분하고 분개한다고”

-작품 콜렉터는 어떤 분들인가요?
“대체로 자유사상가가 많죠. 커다란 화투 크림을 거실에 걸만큼 위험한 사람들.(웃음)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아요. 보수적인 사람들이 내 그림 살 일이 있겠어? 그렇다고 내 작품들이 다 그런 건 아니고, 보수적인 분들이 살만한 그림도 있죠. 내 콘서트에 화개장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 오페라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 등 다양한 관객들이 오듯이, 그림에서도 그런 걸 모두 아울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작품 잘 팔리는 전시도 있고, 안 팔리는 전시도 있는 것 아니겠냐며, 자신은 전혀 개의치 않고 개입하지도 않는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나 이렇게 잘 사는데, 연연할 필요 있겠어?”

-예술이란 뭐라 생각하세요?
“경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 아트일 수도 아니면 그냥 일반 물건일 수도 있지. 그건 아마 엄격히 구분되는 것이라 봐요. 뭐, 예술가들도 그 경계 때문에 다들 곤욕 치루고…”

-인생을 재밌게 산다는 건 뭘까요?
“이러쿵저러쿵 말로 할 수 있다면 그건 오히려 재미없는 거야”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따뜻한 인간애가 담긴 작품 4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조영남

△1945년 황해도 태생

△1990 Bauweres Museum 초대전 △2000 미국 San Diego 초대전 △2004 조영남 뉴욕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다 (뉴욕 한국문화원) △2009 중국 Global art tour △2011 畵手 조영남, 회화 45년 (광주시립미술관) 외 개인전 다수

△저서 '봄날은 간다',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예수의 샅바를 잡다' 외 다수

 

 

◀직접 피아노를 치며 '지금'(조영남 작곡, 방송작가 김수현 작사)을 들려주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