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발레교육이 필요하다
창의적인 발레교육이 필요하다
  • 김순정 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 발레안무가
  • 승인 2009.05.2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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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한국 전통춤의 거장 한성준 탄생 135주년 기념 모임에 다녀왔다.

 급제춤(장원급제를 축하하는 춤)을 추는 한성준 옹의 오래된 사진을 보고, 묘하게도 그의 모습이 몸의 비례와 균형이 잘 잡히고 훈련으로 다져진 발레무용수를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한성준에 대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간무형문화재 고 한영숙 여사의 조부이자 산발적으로 행해지던 우리의 춤들을 집대성하고 레파토리화한 뛰어난 예술가였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전통춤의 계승자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한성준에게 춤을 배워 신무용이란 조류를 탄생케한 조택원과 최승희를 생각해보면 전통 무용이나 발레를 포함한 모든 후대 무용인들은 그에게 빚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성준의 교육자로서의 면모 또한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용인대 이병옥교수의 발제에 의하면 한성준은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북의 고수인 동시에 피리 명인으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그가 춤으로만 전념한 시기는 57세부터 돌아가시기 전인 69세의 12년간이었다.

 그는 재인 광대였다. 6세 때부터 줄을 타고 온갖 악기를 다루며 춤을 춘, 말 그대로 다재다능한 천재예술가였다. 요즘 시대로 바꾼다면, 예술의 통합교육을 받은 영재라고나 할까. 모임에 참석한 원로국악인 지순자여사의 증언도 놀라웠다.

 당시 예술인 중 음악과 춤 둘 다 능한 이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만 잘하는 이들을 살려주기 위해 나머지 하나는 스스로 포기하고 대중 앞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나에게 한국무용을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장구가락과 구음 역시 대단했다. 일례로 지금은 돌아가신 최현선생님의 장구반주를 떠올리면, 지금도 흥과 신명이 온 몸을 채우는 것만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내외 발레의 유명교사들 역시 음악에 정통했다는 사실도 놀라운 것은 아니다. 나의 스승이신 고 임성남 선생님도 피아노 전공을 하다 발레로 바꾼 분이셨다. 오페라의 여러 대목을 가사를 바꿔 불러가며 늘 수업을 유쾌하고 즐겁게 이끌었고, 음악과 춤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정확한 시범과 함께 보여주시곤 했다.

 문헌에 따르면 프랑스나 러시아 황실의 무용교사들은 직접 바이얼린을 연주하면서 수업을 했다고 전한다. 발레작품 <신데렐라>에서도 무용을 가르치는 가정교사가 바이얼린을 든 채 신데렐라의 두 언니를 가르치는 대목이 나온다. 빈사의 백조를 춤춘 안나 파블로바를 가르쳤던 러시아의 레가트라는 교사는 피아노 반주를 직접하며 발레를 가르쳤다. 즉흥연주실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한 번도 같은 음악을 연주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그림에도 재능이 뛰어났었다. 예술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 좋은 교사에게 배우는 것은, 발레의 우수성과도 직결된다.

 뛰어난 기량의 무용가들도 필요하지만 국내발레의 전반적인 수준이 더욱 올라가려면 좋은 교사 양성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발레교육자는 단순히 기교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알아야 하고, 자세와 동작의 미학적인 완성을 위해서는 미술과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야하며, 나아가서는 극장예술을 성립하게 하는 인문학적 통찰력도 요구된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간교육이므로 인성과 윤리의식 또한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의 예술교육이 각각의 장르로 전문화, 세분화되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의 예술교육은 반드시 통합적으로 가르쳐야할 필요가 있다. 지금 창의력향상교육으로 이미 선회하고 있는 선진 외국의 예술교육프로그램들을 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때이다.

김순정 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 발레안무가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