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수첩 속의 추억의 전시]이은주 큐레이터 토크- 4 이원호 개인전
[큐레이터수첩 속의 추억의 전시]이은주 큐레이터 토크- 4 이원호 개인전
  • 이은주 큐레이터(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 승인 2012.04.1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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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날 미술작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의 수 많은 미술관과 전시장에서 이뤄지는 전시들을 물리적으로 다 감상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기획 연재를 통해 전시회의 최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큐레이터들의 전시기획 의도와 작가 및 작품에 대한추천글을 '큐레이터 수첩속에 기록돼 있는 추억의 전시' 코너를 운영하고자 합니다. 코너는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들이 자신들이 앞으로 기획할 전시나 또는 지나간 전시라도 작품성이 높은 작품들을 다시 한 번 리뷰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그 첫번째로 대안 전시 공간인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의 이은주 큐레이터가 맡아서 연재할 계획입니다. 큐레이터님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독자 여러분의 깊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번에 소개할 전시는 2011년 11월 10일부터 12월 18일까지 <The White Field>라는 주제로 열렸던 이원호의 전시이다.

▲The white field I, 테니스장의 석회가루 라인(사진,비디오, 설치), 2011

이원호는 무엇보다 이원호의 <The White Field>라는 작업이 완성시키기 위해 그가 주로 찾는 곳은 테니스, 축구장 등의 스포츠 경기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는 이 작업시리즈를 통해 기존에 규칙화, 정형화 되어 있는 법률, 규율들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적 요소를 낯설게 보게 하는 역할을 제시한다. 이와 더불어 그의 또 다른 작 <Time exposure>을 통해 과거의 시간의 흔적을 현재 공간에 드러냄으로 과거의 기억과 역사의 흔적을 현재의 공간에서 역 추적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럼 좀 더 작업에 집중하여 그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지점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사람들은 스포츠에서 경기를 할 때 이를 위해 특정 규칙을 만들어 낸다. 텅 빈 공간에 하얀 색 선을 그음으로써 그 선을 통해 공공적으로 합의된 영역을 설정한다. 이때 경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이 영역의 경계 밖으로 벗어나 사고할 수 없으며, 그 틀 안에서 서로간의 약속들을 채우고 만들어나간다. 작업의 출발선상에 서 있는 이러한 경기 규칙은 넓은 의미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규정짓고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사회적 법률들을 만들어가는 삶의 측면을 드러낸다.

▲The white field Process

 

하지만 이원호가 궁극적으로 <The White Field>에서 흰색 라인을 순차적으로 제거해 가면서 드러내고 싶은 지점은 규정되어 있는 상황들을 덮고 지워냄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과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테니스 코트의 화이트 필드 경계에서 채취한 가루로 테니스 코트의 면적 비율과 동일한 형태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기존에 특정 목적과 기능을 수행했던 흰색 라인의 역할은 사라지고 그것을 구성하는 상황자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때 관객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정 규율이 사라졌음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특정 경계가 사라졌기에 느낄 수 있는 불편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유발시키는 예술적 정황 속에서 유희적 체험을 경험한다.

▲The white field Process

기존의 <The White field>시리즈는 테니스장, 축구장, 농구장 등의 하얀색 선을 통해 생성된 규칙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 게임의 규칙을 지워내는 행위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는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비판도 아니고, 또한 기본적인 규칙을 뒤엎는 행위도 아니다. 그가 경기장 바닥에 있는 하얀색의 선을 지워내고, 그 가루들을 모아 내어 새로운 화이트 필드를 생산해 내는데, 여기에는 기존에 거대한 규칙과 규율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상황이 내재되어있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소한 사물 하나라도 낯설게 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예술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내가는 그의 작업방식, 즉 하나의 사물을 낯설게 보게 하는 그의 작업의 테제가 화이트 필드에서도 더욱 구체적으로 실행되어 왔다. 

▲.이원호 개인전 전시정경_갤러리 정미소 2011년 11월

이렇듯 이원호는 회화의 형식 그 자체가 주는 기술적 테크닉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이 사물을 바라보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 내는가에 대한 방법적인 고민의 흔적들로 화면과 공간을 채운다. 이 때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 공간과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 그 시작을 알린다. 회화를 전공한 그는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회화의 양식 즉, 캔버스 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방법과 결별하고 캔버스 밖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세상의 사고와 유희가 집중한다. 이는 독일 유학시절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캔버스 밖에서 드러나는 ‘나와 사물과의 관계’, ‘사물과 그 사물이 놓여있는 공간에서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갤러리 정미소에서는 이러한 자신의 기본테제가 되는 본 작업 외의 새로운 작업도 선보였다. 공간적 개념의 규칙과 규율을 지워내고 새롭게 생성한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이 <The White Field> 시리즈라면 <Time exposure>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그 만의 색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축척과 흐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벽 작업의 디테일

기존에 정미소 벽을 떼어 내기 시작했다. 이때 정미소의 벽으로 설치되어 있던 석고 보드가 전시가 이루어졌던 벽과 분리되면서,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흔적과 기능, 목적을 비롯해 다양한 공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기능적 해석들을 모두 제거되기 시작했다. 이때 기존의 벽을 이루고 있는 화이트보드가 떼어지면서 그의 개념이 차츰 구체적으로 수행되기 시작했다. 나무와 석고보드로 구성된 정미소의 기존의 벽을 다 제거함으로 정미소의 과거의 기능적 담론과 시간의 충첩성과 과거의 흔적을 테니스장에서의 하얀색 선을 채취하듯이 제거해 나갔다.

기존의 벽이 다 제거되고 난 후, 정미소의 벽의 속 구조가 들여다보이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그는 새로운 구조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는 새로운 벽을 세우기 위해 나무와 석고보드라는 재료를 구하게 되면서 그는 그만의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준비단계를 거친다. 이러한 준비단계 이후, 새로운 벽을 구축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기존 정미소의 벽을 이루고 있던 똑같은 재료와 소재로 시작된다. 이를 통해 정미소 전시장벽은 새롭게 꾸며지고 이와 더불어 새롭게 구축된 이 벽은 정미소 전시장의 새로운 의미를 구축하기 위한 장치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정미소 전시 Process
▲이원호 개인전 전시정경_갤러리 정미소 2011년 11월

이렇게 새롭게 구축된 벽은 작품을 걸기 위한 전시장의 최적화된 상황이 연출되고, 이러한 과정이 이후 이원호는 정미소 기존의 벽에서 채취한 나무 석고 보드 벽을 자르고 갈아서 설치한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의 흔적이 새로운 벽에 설치됨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부딪히고, 이때 그 공간은 과거의 시간과 흔적 그리고 그 공간의 모든 기억들이 중첩, 상충, 매개되어 드러난다.

이렇게 탄생된 새로운 벽을 맞이하는 이 공산은 시간의 기억과 공간적 의미를 다시금 되살린다. 이와 같이 이원호의 작업은 우리의 주변에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상황들을 최대한 낯설게 만들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에서 제기되는 상황들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큐레이터 이은주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를 졸업했으며 판화와 사진 전문 아트페어인아트에디션 팀장을 역임했다. 현실과 환타지의 경계시리즈(2008), 다양한 매체 속에서 탄생된 예술작품의 시나리오(2008), 비주얼인터섹션-네덜란드사진전(2009), Remediation in Digital Image展(2010), 미디어극장전-Welcome to media space(2011), 사건의 재구성전(2011), 기억의방_추억의 군 사진전(2011) 외 다수의 기획전 및 개인전을 기획했다. 전시와 출판 관련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아트스페이스 갤러리정미소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