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상 화백의 독도칼럼] 문화로 지켜야 할 독도
[이종상 화백의 독도칼럼] 문화로 지켜야 할 독도
  • 일랑 이 종 상(대한민국예술원 회원/화가)
  • 승인 2012.04.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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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랑 이종상 화백
◆가장 먼저 해 뜨는 땅 독도, '해돋이 문화'가 만들어져야

◆가장 먼저 해 뜨는 땅 독도, '해돋이 문화'가 만들어져야

신문왕(神文王) 당시의 해관(海官)인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는 그 작은 섬은 보는 각도에 따라 하나였다가 둘도 되고 다시 셋도 되는 천의 얼굴의 섬, 설화 속에서 주름진 자라머리로 비유되고 있는 탕건바위를 지닌 독작섬, 바로 돌섬(石島), 독도(獨島)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독도를 반평생 수없이 그려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수평선 너머로 가시거리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어로작업을 하면서 이 섬의 정체를 숙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미 우리 땅으로 인식하고 설화문화 속에 보듬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독도를 실제로 목격하고 답사해본 사람이라면 설화에 나오는 괴이한 섬의 정체와 서술적 정황이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기이함이 지금도 설화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1977년도에 새벽 물안개 속에서 처음으로 부닥친 독도의 그 모습과 설화 속의 표현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북이 등처럼 생긴 그림자가 갑자기 눈앞에 포개지면서 마치 물 위에 떠다니는 괴이한 생명체의 애무행위처럼 보여 졌던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거듭 말씀 드리거니와, 실지로 독도는 동도와 서도가 다정한 부부처럼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으면서 그 사이에 삼형제굴 바위를 자식처럼 거느리고 있는데다가 서도의 탕건바위는 마치 망보는 자라목과 같으니 멀리서 바라보면 천(千)의 얼굴을 한 거북머리 섬으로 보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섬의 특성에다가 반도 남반부에서만 자라는 대나무의 신비성으로 치환하여 신성(神性)을 부여한 설화의 구성은 고도의 정치심리학을 이용한 놀랄만한 발상이 아닐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나무를 볼 수 없었던 고구려 북방계 유민에게는 무기로도 쓰여 졌을 가능성이 높은 통일 이전의 신라 왕대나무에 깊숙이 배여 있는 전쟁의 잔상(殘像)에서 벗어나 문치(文治)로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관악기를 만들어 아름다운 소리를 창조해 내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바로 그 소재가 되는 대나무에 새로운 음악적 이미지 주입이 절실히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여기서 동해 먼 바다에 떠있는 우리의 영토 독도를 대나무와 함께 동해를 지키는 좌청룡(左靑龍)의 수호신으로 상정하고 싶은 욕구가 설화 속에 용해된 함의(含意)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저는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문무대왕의 수중릉과 사후에 용이 되어 동해를 수호하는 설화의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통일 위업을 달성한 문무대왕은 진시황제 만큼이나 호화로운 경주 한복판에 장엄한 대왕릉(大王陵)을 얼마든지 축조할 수 있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일본의 침탈 야욕을 지켜내고자 하는 일념에서 수장을 택했다는 데 깊은 의미를 부여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좌청룡을 자임(自任)한 치세의 달인이라면 아마도 설화에 등장한 독도에 대왕릉을 만들어 미구에 예견되는 왜구(倭寇)의 침략을 막아보고 싶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눈이 높은데 있는 사람은 멀리 본다"는 말처럼 천하를 통일한 높은 정치적 안목을 지닌 문무대왕의 멀리 본 눈높이의 그림을 더 늦기 전에 우리 후손이 이제라도 그려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하튼 이 설화는 신라인들이 동해를 지키려는 수호의지(守護意志)와 정치적 통일 이후의 문치철학이 낳은 문화적 요소와 괴이한 섬으로 상정(上程)된 최동단의 섬 독도와 절묘하게 만나는 창조적 애니마(anima)의 극치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독도는 그동안 문헌학적 고증과 역사, 지리에 비중을 두고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선사시대부터 한 부족의 생활영역을 구분 짓는 데는 당시 '삶의 흔적'인 문화유산의 유무가 그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독도에 관한 한 역사학자들이 정치 문화적 논리에 앞서 문헌학문적으로 영토를 지키는 데 골몰하고 있을 때, 문화 예술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뼈아프게 자문(自問)을 해보게 됩니다. 한 때, 정치관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로 독도는 '우리 땅'임을 부르짖는 노랫말에 몰신(沒身)하여 정신없이 불러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온당치 못함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우리 땅'을 '우리 땅'이라고 되뇌이기보다는 진정으로 독도가 '우리 땅'임을 믿거든 진작부터 그 곳에 '해돋이 문화'를 만들어 민족의 가슴속에 가꾸어 꽃피우게 하고 사랑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자기 혈육을 자기가 보듬고 사랑하듯, '우리 땅'독도가 거기 그렇게 우리 영토로 있어왔으니 그곳에 가는 것이고, 독도가 우리 산하이니 우리 화가들이 그리고 시인들이 예찬할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독도가 가장 먼저 해 뜨는 땅이라면 당연히 그 곳에 '해돋이 문화'가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해돋이 행사를 정동진에서 만파식적의 이적(異蹟)처럼 문무대왕의 호국영혼이 좌청룡(左靑龍)이 되어 동쪽 바다의 지킴이가 되었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독도를 지키는 것은 이제 우리 문화예술인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로 지키고 자연보호로 가꿔야 합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이 설화와 소설로, 시와 그림으로, 노래와 춤으로 우리 가슴에 아로새겨 실질적점유권(實質的占有權)을 문화로 만들어 먼 훗날 독도의 '해돋이'문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야 마땅합니다. 거듭 말씀 드리거니와 "독도를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독도가 우리를 지키고 있다"는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더 늦기 전에 돌섬에 문화의 씨를 심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