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홍보, 덜미 잡힌 조선호텔
‘최초’ 홍보, 덜미 잡힌 조선호텔
  • 서울문화투데이 특별취재팀
  • 승인 2012.04.1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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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홍보 위해 역사왜곡, 본지 지적으로 '최초'호텔에서 '현존하는 최고'호텔로 수정

해명과 사과 함께 백과사전 수록 내용 수정도  시급

웨스틴 조선호텔(대표 송영목, 이하 조선호텔)이 ‘최초의 호텔’이 말썽이다. 국내 최초 서양식 호텔이 인천 ‘대불호텔’(1888) 임에도 조선호텔 측은 굴하지 않고 지난 1월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하고 ‘호텔개관 100주년 시계탑 제막식’도 가지는 등 최초에 집작해 왔다.

조선호텔은 그동안 호텔 홈페이지 CEO인사말 첫 줄에 자신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이라고 왜곡된 주장을 해 왔다. 이 달 초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의 지적 이틀 후 ‘현존하는... 최고의 호텔’로 ‘최초’에서 ‘최고’로 문구를 수정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 지난 3일 본지가 조선호텔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조선호텔 소개-CEO소개' 캡쳐화면이다. 먼저 맨 위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이자 최고 호텔"로 소개됐고, 그 밑은 다음 날 "우리나라 최고의 호텔"로 수정된 모습이다.

국내 최초 호텔은 지난 1889년(고종 26) 인천 항만에 건립된 대불호텔이다.(출처,두산백과) 지금은 문화재청에 의해 발굴ㆍ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다음이 서울 정동에 위치한 ‘손탁 호텔’(1902, 현재 이화여고100주년 기념관 자리)이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호텔이다.

대불호텔 이후에 호텔(hotel)이라는 이름을 내건 서양식 숙박시설이 마침내 본격적으로 서울의 거리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00년 무렵의 일이다. ‘서울호텔(Seoul Hotel, 삐이노호텔, 1897년 4월 개업)’, 정동 경운궁 대안문(大安門, 덕수궁 대한문) 앞의 ‘프렌치호텔’과 ‘임페리얼호텔’, 그리고 성문 밖 서대문정거장 부근의 '스테이션호텔'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이 가운데 프렌치호텔은 궁궐 바로 앞에 있다 하여 ‘팔레호텔(Hotel du Palais)’이라고도 하였다.(이순우 저, ‘손탁호텔’ 중에서 발췌)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보여지 듯 조선호텔은 이들 호텔보다도 훨씬 뒤에 지어졌다. 이런데도 최초라는 말을 쉽게 쓸 수 있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지금이라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게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동안 조선호텔이 주장해 온 역사왜곡은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아래는 조선호텔이 그동안 곳곳에 왜곡 시켜온 자사 역사다.

◆조선호텔 때문에 역사책을 다시 써야만 할까?

▲한반도 최초의 호텔은 지난 1888년 인천에서 개관된 대불호텔(사진 왼쪽)이다. 그 다음이 서울 정동 이화여고100주년 기념관 자리에 위치했던 손탁호텔(Sontag Hotel)이다. 이 둘은 일제강점기와 '산업화'아래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올해 1월21일 수정된 글로벌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수록된 ‘조선호텔’의 역사는 “조선총독부철도의 부속기관으로, 조선 국왕이 제례를 행하던 원구단의 일부를 헐고, 1914년 10월 10일에 한반도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조센호테루’( 朝鮮ホテル)를 개업했다”라고 나와 있다. 올해부터 확실하게(?) 역사왜곡을 시작한 것이다.

조선호텔의 역사왜곡의 문제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홈페이지 내용만 수정 했을 뿐 자신들이 왜곡한 홍보 내용은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는 2014년 10월 10일은 조선호텔이 개관한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이 때문에 지난 1월 12일 조선호텔 측은 ‘D-1000’ 카운트다운 시계탑 제막식‘을 갖고 각계 다양한 인사들과 함께 시계탑 제막과 함께 다음과 같은 홍보물을 배포했다. 홍보물에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조선호텔 100주년이 뫼비우스의 띠를 디자인 한 시계탑을 세워 조선호텔의 시간은 100년을 넘어 영원히 나아간다”라고 소개됐다.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이에 앞서 2006년에도 교묘한 역사비틀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온라인 포털 Daum '오픈지식'에는 조선호텔에 대해 ‘서울의 중심부인 소공동에 설립된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라는 내용으로 최초이긴 하나 시비가 일면 소공동에 위치한 최초의 호텔이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조금 주의 깊게 읽어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두산백과에서 제공하는 네이버백과사전의 일부에도 ‘1914년 조선철도국에 의해 설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호텔로서...’ 교묘하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호텔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수록된 내용은 모두 조선호텔 측에서 제공한 자료에 기반한 것이다.

조선호텔의 역사왜곡은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모 대학생들의 학교제출용 리포트에 조선호텔이 홍보용으로 썼던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호텔 측의 왜곡된 역사홍보가 학생들에게 사실로 전파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중구 소공동 87-1번지에 자리한 조선호텔은 현재 신세계그룹의 계열사로 과거 고종 황제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제례를 지냈던 ‘원구단’(圓丘壇) 터에 세워졌다. 지난 1910년 한일합방 뒤 일제가 자국 귀빈을 접대하고자 1912년 원구단 황궁우를 제외한 모든 건축물을 철거하고, 1914년 ‘철도호텔’로 건립ㆍ개관했다.

▲ 왼쪽 사진은 지난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가 즉위식을 마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원구단이다. 바로 옆은 1914년 일본총독부가 원구단을 허물고 세운 철도호텔의 모습이다. 이 건물이 오늘날 조선호텔의 원 모습이다.

◆조선호텔 개관 100주년.. 문화재 복원은 언제쯤 이뤄질까?

황평우 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은 “조선호텔은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황제로서 ‘제천의례’를 지냈던 곳으로 문화재복원이 시급한 곳”이라고 조선호텔 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들었다.

일례로 지난 2007년 8월 황 소장은 신응수 대목장, 송인호 교수(서울시립대)와 함께 서울 수유리 그린파크 호텔 정문으로 사용되던 ‘원구단 정문’을 현장 확인한 바 있다. 당시 확인된 사실을 토대로 비판기사가 나오고 ‘원구단 정문’은 문화재청에 의해 현재 ‘원구단 터’인 조선호텔로 이전됐다.

이듬 해 2월, 황 소장은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조선호텔 귀퉁이에 남은 ‘원구단 황궁우’ 등 일부 유적을 보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환구단 터는 호텔로 되었지만 황궁우는 현재 사적 제157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민족의 자존심이자 민족의 상징인 환구단의 황궁우는 접객업소인 조선호텔의 정원 조경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개탄한 것이다.

조선호텔과 관련해 다른 의견도 들어보자. 문화유산국민신탁 강임산 사무국장은 “현재 조선호텔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호텔이라는 건 부인못할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비록 대불호텔과 손탁호텔이 조선호텔보다 먼저 지어졌지만 남아있는 호텔중 최초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아울러 강 사무국장은 “기존 문화재 복원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미 민간인으로 넘어간 호텔과 건축물을 회수하려면 막대한 예산과 설득이 필요하다”면서 “조선호텔도 한국 현대사에서 일익을 차지한 만큼 철거보다 역사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는 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우리나라 근대호텔의 역사와 에피소드 등을 담은 책 ‘손탁호텔’을 펴낸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은 “최초의 호텔은 대불호텔이고 조선호텔 이전에 여러 호텔들이 생겨났었다”고 설명하고 “그 호텔 건물들이 다 없어졌기 때문에 조선호텔이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호텔이라고 했다면 그 부분은 맞지만, 최초의 호텔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밝혔다.

한 호텔업계 전문가는 조선호텔이 이같이 무리하게 ‘최초’마케팅을 벌인 배경에 대해 “같은 급인 롯데나 신라호텔 등에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어 이에 상응할 만한 ‘꺼리’가 역사마케팅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 위 사진은 황구우라는 원구단에 유일하게 남은 건축물이다. 대한제국 건국 당시 고종황제가 제례를 지내던 환구단(원구단)은 현재 황구우라는 원형형태의 한옥건축물만 남아있다. 대신 조선호텔이 일본총독부에 의해 철도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914년 건립됐다.

따라서 조선호텔은 하루빨리 역사왜곡에 대한 명백한 해명과 사과를 하고 포털에 올라와 있는 왜곡된 내용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곳곳에 자신들이 뿌린 왜곡된 자료와 홍보물들에 대한 수정작업도 시급하다. 이미 뿌려진 홍보물 또한 가능하다면 수거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자신들이 행한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 일일 것이다. 조선호텔은 자신들도 인정한 역사왜곡을 홈페이지 수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편 조선호텔은 본지가 지적한 내용이 이미 올 2월 몇 몇 언론들의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2개월 가까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무시로 일관해 왔었다. 그러다 이 달 초 본지가 이에 대해 지적을 하자 호텔관계자는 “아직도 검토중이다”며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연락주겠다”고 한 후 연락이 없었다. 이틀 후 본지의 재차 확인 전화에 별다른 해명없이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라”는 짤막한 답변만 전했다.

이후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최초의 호텔’에서,‘현존하는 최고의 호텔’로 문구가 수정돼 있었다. 이는 위에 언급한 두 개의 호텔은 건물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현존하는 최고의 호텔’이라는 말은 맞다. 단 최고(最高)가 아닌 최고(最古)라는 의미일 경우다.

서울문화투데이 특별취재팀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