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예술가 심철종, ‘내 머릿속의 루시퍼’
행위예술가 심철종, ‘내 머릿속의 루시퍼’
  • 서문원 기자
  • 승인 2012.05.01 11: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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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서 사라진 ‘새벽의 빛’, 광화문 한복판에서 부활하다

지난 2006년 3월 31일자 사회면 기사들을 보면 ‘심철종’이라는 행위예술가에 관한 기사들이 나와 있다. 당시 그는 세종로 사거리 한복판 자신이 타고 다니던 차량에 ‘국민여러분 힘내세요’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반라에 붉은악마 복장으로 기습 퍼포먼스를 벌인 바 있다. 사진 속 심철종은 누가 봐도 열정적이다. 아니 고대 로마신화에 나오는 ‘횃불을 든 존재’(혹은 새벽의 빛)라는 뜻으로 알려진 ‘루시퍼’같다.

그랬던 심철종씨가 지난 1998년부터 서울 마포 홍대입구 극장 ‘씨어터제로’를 운영해오다 경영난으로 지난 해 11월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오는 20일 ‘한 평 극장’을 만들고 ‘배우100인의독백-모노스토리 시즌1’을 개관 작품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표현한 1인극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제)라는 제목으로 차기작을 준비 중에 있다.  

4일 본지는 행위예술가 심철종(53)을 만나봤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알려진 행위예술가,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씨어터 제로’를 운영했던 극장 대표, 그 뒤 간경화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소박한 꿈을 들어봤다. 

나는 행위예술가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광화문 시대’ 오피스텔 4층. 인터뷰 당일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아주는 행위예술가 심철종(53)씨는 15평 남짓한 ‘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한 평 극장’의 텅(?) 빈 무대와 객석을 소개했다.

작지요? 여기서 저희 극장 첫 작품이 펼쳐질 겁니다. (주방을 가리키며) 여기가 무대고, 관객은 바닥에 앉아서 보게 할 예정입니다. 한 20명 정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특히 관객들은 관람 중 무선헤드폰으로 청취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무대장식은 빔 프로젝트를 사용할 계획이구요. 푸른색 조명이 사람들을 차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더군요.  이런 장치외에는 더는 갖다 놓을게 없어요. 

   
▲ 행위예술가 심철종씨가 좋아하는 색깔은 블루란다. 푸른색 조명은 사람들을 차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단다.
공연장을 둘러보니 장식 하나 없이 명상요가용 매트들이 창가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기자가 극장 전체가 왜 이렇게 텅텅 비었는지 질문하자 심철종씨는 답은 않고 연신 웃으며 정력(?)에 좋은 거’라며 흑초를 기자에게 줬다. 

-작은 무대에 장식이 하나도 없다니 흥미롭네요.

없어서 작게 혹은 조그맣게 산다고 말을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저는 작은 미학을 추구해왔어요 일본 문부성에서 6개월 연수프로그램을 지원받아 현지에서 활동할 때 보니 일본은 갤러리와 극장이 소규모 더군요.

어느날 일본에서 공연을 하는데 극장 지붕이 얼마나 낮은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손을 올리면 닿았어요. 우리도 소극장이 있지만 일본처럼 개성 강하고 다양한 극장들이 별로 없잖아요?

일본에서 5평도 안되는 작고 소박한 소극장도 봤어요. 그곳은 발코니를 무대로 사용하기도 했었죠. 물론 저도 홍대 앞에서 ‘씨어터 극장’을 경영했던 사람입니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광화문으로 왔어요. ‘장인의 정신’을 갖고 이 공간에서 죽을 때 까지 일을 해보고 싶어요. 이곳은 스탭이 기획만 있고 나머지는 제가 합니다.

-개관작품으로 공연될 배우100인의독백-모노스토리 시즌1’은 어떤 내용인가요? 

배우 100분이 이전 작품에서 했던 독백 대사와 자신만의 라이프스토리를 펼쳐 보일 예정입니다. 출연하는 각각의 배우들이 10분씩 릴레이로 공연할 계획입니다. 먼저 시즌1은 50분이 참가합니다.

나이 50을 넘기면서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앞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제목으로 1인극을 하신다고 하셨죠? 대표님 라이프 스토리도 포함됐나요?

제가 3년 전에 6개월 시한부 간경화를 진단 받았어요. 복수도 차고, ‘너. 곧 죽는다’라는 말을 들을 때였어요. 그때부터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 병세가 호전되면서 살아나면 죽음과 관련된 연극을 만들어보자.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를 연극으로 구성해보자’ 라고 생각하고 써봤어요.

하지만 당시는 악재의 연속이었죠. 제가 간경화로 시한부 통보를 받고 제 어머니도 치매에 걸리셨어요. 앉아서 계속했던 말씀 또 하고 지나간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씀하시고. 그랬어요. “아 늙어간다는 것은 기억의 상실이구나”라고 되뇌이면서 1인극을 구상하기 시작했죠. 차기작으로 구상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1부는 ‘기억을 찾아서’로, 2부는 사랑, 성, 그리고 나의 삶, 3부는 ‘죽음 그 이후’라는 스토리로 내놓을 예정입니다. 물론 음료도 마련하고, 간단한 음식도 드릴 겁니다. 편안하게 관람하도록 할 겁니다.

- 찾아오는 관객은 편안하게 해주면서 무대에 올려 질 작품은 심각한 면이 있네요?

차기작은 코미디 요소도 들어가 있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하면 문제가 있으니까. 근본적으로 보면 인생의 진정성, 삶의 진실함, 내가 왜 이렇게 울부짖고 있는가? 라는 주제로 사람들이 누구나 하는 고민을 같이 고민해보자는 의도로 극을 꾸밀 예정입니다. 

▲ 기자가 확인한 행위예술인 심철종의 '한평극장'은 결코 작지 않다. 큰 규모의 극장장을 했던 그가 광화문 오피스텔을 소극장으로 장식 하나 없이 꾸미고 무선 헤트폰으로 관객들에게 소리를 전달하고 빔프로젝트로 무대장치를 마련할 무렵. 이 공간은 단지 협소한 무대가 아니라, 문화적 상상력을 발휘할수있는 큰 공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대에서 극장을 경영하셨을 때는 어땠나요?

극장을 시작한 시기는 1996년도였어요. 외형적인 화려함과 큰 규모의 무대를 선호했어요. 하지만 계속 하다보니 예술의 본질은 사라지고 흑자만을 쫓아 경영하다 보니 문제가 많았죠. 그에 반해 여기 ‘한평 극장’부터는  진정성 있고, 솔직해진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여러 분들이 참여하지만 다음 작품은 선생님의 삶, 과거. 현재. 미래를 구성하셨는데요. 과거를 표현했었을 때 일본에 계셨다고 하는데요. 일본 외에 다른 나라에서 공연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가끔 유럽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몰도바에서 공연했는데요. 경제력은 우리보다 못하지만 뭔가 풍성해보였어요. 즉 문화가 풍성한 거죠. 소극장이라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찾아와 저 같은 외국인의 공연을 보고 감동하고 그랬었죠.

동유럽 사람들이 가진 문화에 대한 애착은 한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습니다. 반대로 서울 대학로를 가보면 규모 면에서 얼마나 큰지 모르지만 배우가 되고픈 청년들이 티켓판매 때문에 밖에서 헤매는 그런 구조입니다. 과연 이런 환경이 쓸모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야말로 일상이 바삐 돌아가다 보니 정작 찾았어야할 각각의 진정성을 쉽게 간과한 겁니다.

예전에 프랑스 르몽드지에서 우리나라를 평가하기를 ‘한국은 경제선진국은 됐지만 결과적으로 일만 하다 죽어가는 삶들이 너무 많다’라고 했더군요. 잘 보면 유럽은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가고 다채로운 문화 활동을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돈 버는 것 말고 취미도 없잖습니까?

인식의 문제라는 거죠. 선진국의 힘이라는 게 규모는 작지만 구두방을 대를 이어 운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 유럽 혹은 가까운 일본도 소상인 중심이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다양성을 버리고 대기업중심사회로 만들어놨어요.

하물며 대기업들이 빵부터 순대, 심지어 밥장사도 하잖습니까? 자본이 모든 걸 쥐어틀고 있어요. 하지만 문화는 그렇게 가면 안되요. 풍자와 해학을 포기하면 문화가 아닌 겁니다. 한때 저도 극장을 경영했던 사람이지만 자본에 얽매인 채 좋은 작품을 외면하는 일이 빈번했어요. 옳은 방향이 아니었던 거죠. 

▲ 행위예술가 심철종, 얼마전 간경화증으로 죽을 고비까지 넘겼던 그는 지금도 완치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밝은 웃음속에서 건강함을 찾아볼수 있었다. 심철종씨는 이제 광화문으로 무대를 옮겨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예술은 조직이 필요없다?

예술은 조직을 구성해봐야 소용없어요. 저도 조직이라는 곳에 잠깐 있어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더군요. 듣자하니 독일에서는 아파트 지하 쓰레기장 옆에서 어느 노인이 평생 공연을 한다더군요. 그런 것들을 보면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사람으로 남으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유명세 혹은 권위적인 것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싶은 겁니까?

제 나이 50을 넘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열리더군요. 연기자는 디테일한 감정을 움직이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면을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내면세계를 그려보고 싶은 거죠. 한국이란 나라는 이미 서구화됐어요. 그것도 안좋은 면만 따라하고 있어요. 바로 이런 문명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서 무대위에 그려보고 싶습니다. 제 자신부터 시작해 타인의 삶을 엮어보고 싶어요.

-앞서 말씀하신 힐링(치유)이 그런 의미인가요?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마음을 비워두는 일이 먼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1989년부터 일본에서 20년,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공연을 했어요. 그곳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은 거창하거나 대단한 일들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소박한 공연장이었지만 그곳에서 사람냄새 나는 삶을 경험해 봤어요. 지금부터라도 제가 경험했던 생과 사에 관한 이야기를 무대에서 표현하고 싶습니다.

예술의 본질은 안티입니다

저란 사람은 말보다 행동이 앞섰던 삶을 살았습니다. 6~7년 전에 광화문 한복판에 차를 끌고 나와 ‘국민여러분 힘내세요’라는 슬로건으로 퍼포먼스를 벌이다 4차례나 체포된 적도 있었어요. 모일간지 사과문 광고로 게재한 적이 있어요.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성대가 아파서 수술하러 갑니다. 낫고나면 다시와서 외치겠습니다. “국민여러분 힘내세요”라구요.

-지금 말씀하신 부분은 광고가 아니라 퍼포먼스 같은데요?

저는 성격이 생각나면 바로 실천에 옮깁니다. 그 다음문제는 다음 문제인거죠. 그걸 어떻게 사전에 생각까지 하겠습니까? 저는 그런 장점이 있는 거죠. 알고 보면 예술은 국가에 지원이라는 게 없었어요. 왜? 예술은 안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술은 국가에서 지원이 일부 되다보니 예술가들이 바보가 됐어요. 왜냐하면 예술은 국가에서 봤을 때 원하는 대로 혹은 기계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제일 피곤한 인간들이거든요.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다 그렇잖아요.

이런 겉치례가 불만입니다. 뭔가 진정성 있게 움직이고 싶어요. 한번 울부짖어보자. 이런 형태인거죠. 가령 사람들이 디자인이 다양한 개성강한 차량이 나와도 결과적으로 소나타를 구매하는 경향이 있어요. 흑백논리에 사로잡힌 겁니다. 소박하고 작은 것에 대한 행복감을 느끼지 않다보니 창의력이 떨어진 겁니다. 대중문화가 자본의 논리에 좌우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 다양성과 독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우리나라처럼 축제 많은 나라가 어딨어요? 우리나라 정부처럼 디자인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난리치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디자인 서울’ 이런 거 보면 답이 안나와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을 여기 서울에 놓는다고 그게 어울리겠습니까? 모두가 인간의 인성을 디자인 하는 일에 너무 무심해왔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저는 ‘문화로 인식을 바꿔보자. 계몽이 아닌 자연스러운 연극을 꾸며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여기서부터 시작해보기로 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