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눈부신 소리를!
어둠 속에 눈부신 소리를!
  • 양문석 기자
  • 승인 2009.06.01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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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멘스와 함꼐 '청각장애인들 소리 찾아주기'에 팔 걷어부쳐

인터뷰/ (사)소리나눔 상임이사 유경훈


햇살 머금은 바람이 유난했던 18일 오후, (사)소리나눔의 유경훈 상임이사와 최귀옥 사무국장이 본지를 방문했다. 행복과 보람으로 가득한 첫인상은 흡사 천사의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전도하는 소리전도사. 2시간을 넘긴 장시간의 인터뷰 내내 온화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준 유경훈 상임이사와 시종일관 웃음 띤 얼굴로 맑은 에너지 보따리를 풀어놓은 최귀옥 사무국장으로부터 우리시대의 기부문화와 청각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펼쳐본다.

◆ 좋은 일을 많이하시는걸로 알고 있다. 캠페인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는 3년 전쯤 거슬러 올라간다. (사)소리나눔은 (주)아름다운에프엔(Beautiful Financial Network)이란 회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기부문화는 몇몇 대기업만이 형식적으로 하는 ‘저급한’ 수준이었다.

▲ 유경훈 상임이사
그나마 일회성에 그치기 일쑤였기에 민간재단 가운데 가장 큰 ‘아름다운재단’ 조차 재원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회사업을 하는데 있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른 차원의 기부문화에 대한 정착 필요성을 느꼈고, 해외 선진국의 기부문화에 대해 시선을 돌리게 됐다. 이 당시 눈에 띠었던 것이 바로 외국의 기부보험 시스템이었다.

개인이 일정 금액의 보험을 가입하면, 사망 후 보험금이 기부재단으로 입금되는 기부시스템이다. 적은 보험료로 큰 기부를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신개념 기부문화인 기부보험의 명칭을 ‘아름다운 보험’이라하여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했다.

현재 기부보험은 대학 등에서 활용하고 있는 걸로 안다. 아름다운보험이 기부보험의 원조격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 장애인 중에 청각장애인에게 관심을 맞춘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초기엔 사실 자폐아 지원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이화여대 특수교육팀과 협력하여, 자폐아가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컴퓨터로 언어치료 프로그램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자폐아를 위한 캠페인 명칭이 ‘아름다운소리캠페인’이었다. 캠페인 명칭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힘모아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보자는 의미였다. 자폐학교에 지원을 중점적으로 하던 어느날 명일동 한국구화학교에 150여명의 장애인을 도울 일이 생겼다. 마침 구화학교엔 자폐아와 농아들이 함께 다니고 있었다. 특히 농아의 비율이 높았다.

교장선생님의 “사람은 소릴 들어야 말을 할 수 있으며, 귀가 열려야 언어치료도 가능하다”란 말에 청각장애 개선의 절실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이후 다른 장애 보다 청각장애인의 어려움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청각장애인에 대해 지원을 하게 됐다.

▲ 최귀옥 사무국장

사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제도가 존재한다하더라도 절차가 너무 복잡해 이용하기 힘든 경우가 있을 정도다.

또한 청각장애인 스스로가 이런 제도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으로 (사)소리나눔은 물론 많은 단체와 개인이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야한다.

많은 땀을 흘린 끝에 (사)소리나눔을 결성했다. 지난해 10월15일 설립허가를 받았고,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여 왔다.

◆ 청각장애인은 많은 어려움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사)소리나눔에서 구체적으로 돕고 있는 방법은?

다음의 조건을 충족하면 자치단체의 복지예산 및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료보호기금을 통해 지원 받을 수 있다. 먼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자로서 청각장애등록이 되어 있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 5년마다 34만원을 지급 받는다.

둘째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상태에서 청각장애인등록이 되어 있고,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인 경우, 5년마다 27만2천원을 지원 받을 수 있다. 실제 자격이 됨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못받고 있는 청각장애인도 많다. 또한 지원금 수준이 턱없이 낮아 고가의 디지털 보청기를 구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동안 국내 여러 보청기 회사에 이런 고충을 호소하고, 지원을 제안했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보청기 회사에 거액의 기부금 부담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연간 1만명에게 보청기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가졌으나, 현실적으로 높은 장벽에 부딪혔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에는 보청기를 자체 생산하는 기업이 없다. 또한 식약청 등 연관 기관의 까다로운 수입절차 등으로 인해 완제품을 수입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전부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부분 귓속형 보청기 산업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기존의 귓속형 보청기는 디지털 보청기에 비해 청각장애인에게 기능면에서 아주 큰 도움을 주진 못한다. 따라서 보청기 기능에 대한 신뢰가 약해 청각장애인 스스로 보청기 착용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에 세계시장점유율 1위 회사인 독일의 지멘스사와 인연을 맺게 된다. 처음 보청기 보급운동 제안을 받게 된 지멘스 측은 흔쾌히 허락했다. 지멘스사는 대당 160만원이나 하는 디지털 보청기를 34만원(정부지원금)에 공급했다.

지멘스사는 금액뿐 아니라 지원 수량 역시 당장 필요한 양 전부를 약속했다. 물론 국민건강보험가입자인 청각장애인은 정부지원금 27만2천원과의 차액인 6만8천원을 개인부담하긴 해야하지만, 원가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수준이다. 이 차액 지원 또한 향후 소리나눔의 기금이 조성 되는대로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작년엔 북한의 청각장애인 50명을 지원하는 등, 향후 대한민국국적이 없는 외국인 및 제3국도 지원 대상으로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북한 지원시, 평양의대와 협력하여 인원당 36만원, 총1400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디지털 보청기를 지원했다.

하지만 단지, 돈이나 기기 지원에 그친것이 아니었다는 점에 더욱 큰 보람을 얻었다. 봉사요원뿐만 아니라 세계적 기술을 소유한 지멘스사의 기술진이 청각장애인 한사람 한사람에게 세심한 손길을 내미는 열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비록 3박4일의 개인체류비가 250만원 정도 소요된다는게 부담되긴 하지만, 이는 좋은 후원 기업 발굴 등을 통해 향후 개선 가능하다고 본다. 

지멘스와 인연을 맺기 전과 후, 많은 차이가 생겼다. 이전엔 1000여명이었던 보급 대상인원이, 지멘스 참여이후 340명이나 단기간 급격히 증가할 수 있었다.

제품 역시 우수한 제품으로 대체됐다. 또한 이전엔 중간에 제품 품절이나 가격인상 등 지원사의 재정상황에 따라 여러 애로사항이 존재했으나, 지멘스의 탄탄한 재정능력으로 인해 보다 안정적으로 보청기 보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최근 유로화의 급등으로 지멘스사의 경우 지원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현재 보청기사업 자체에선 적자다. 하지만 다른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디지털 보청기 보급 사업은 계속할 것이다.

앞으로도 디지털 보청기의 안정적인 공급을 통한 변함없는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도 이런 사회봉사정신을 본 받아 많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온정의 손길이 뻗히길 바란다.

(사)소리나눔에서 훌륭한 캠페인을 많이 개최해 왔다. 도움 주려하는데 어떤 걸림돌이 있나?

상황이 어려운 분들일수록 정보의 부재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잘 알것이다. 청각장애인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청각장애인에 대한 봉사가 순수함을 잃을 경우, 청각장애인이 상술의 희생물이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건 역시 청각장애인 및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 아닌가 한다. 대다수 청각장애인들이 보청기 착용으로 인한 콤플렉스 때문에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한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안경 쓰는 것도 콤플렉스였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편화되지 않았는가. 보청기 착용에 대한 인식도 하루빨리 일상 속에 녹아들 수 있게 해야한다.

사실 청각장애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장애라고 말하기 어렵다. 락벤드, 타악기 연주자, 심지어 지하철 소음 등 많은 시간 소음에 노출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귀 대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봐도 되는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더라도 보청기착용의 보편화를 위해 기능성 보청기 개발이 당면 과제라고 생각한다.

공연장에서 청중소리와 연주소리를 구별케 하는 보청기가 있다면 대부분의 청중들은 이런 보청기 착용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청각장애인 체험 등을 통해 그들을 어려움을 이해하려하는 인식의 확장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중 연예인이 보청기를 착용하는 등 홍보가 활성화 된다면 보청기 착용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쉽지 않겠는가. 이런 노력들을 통해서 청각장애인과 일반인들과의 거리를 좁히는게 관건이 아닌가한다.

(사)소리나눔의 첫째 목표는 청각장애인에게 잃어버린 소릴 찾아주는 것이다. 그다음 목표가 바로 사회에 소극적인 대다수 청각장애인들을 언어치료를 통해 가능한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 젊은층에도 난청 등 귀에 대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유는 무    엇이라고 생각하나?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우리 일상은 많은 소음으로 얼룩지기 마련이다. 지하철 등 소음 공간에서 음악 듣는 습관, 시력검사는 중요시 여기는 부모에 비해 청력검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부모는 과연 몇이나 되는가?

학습장애뿐만 아니라 사회장애가 되는 청력장애의 위험을 알아야한다. 대인관계에 대한 회피증이 심각한 청력장애는 본인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키는 경향이 많다. 또한 한번 손상된 귀는 회복 불가하다. 귀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아야한다. 

인터뷰 내내 열정과 에너지 넘침으로 청각장애인의 현실과 사회인식을 대변했던 두 전도사는 앞으로도 이런 뜻이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기를 기원했다.

(사)소리나눔의 유경훈 상임이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사회에 건전한 기부금 문화가 정착되어야만 청각장애인뿐 아니라 수많은 소외계층에 온정의 손길이 뻗힐 것이라고 했다. 향후 (사)소리나눔은 많은 기부금 후원 기업 발굴과 캠페인의 활성화를 통해 이를 실천할 계획이다. 

인터뷰 이은영 국장 young@sctoday.co.kr / 정리 양문석 기자 msy@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