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찍어드리겠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드리겠습니다.”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6.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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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찍는 외톨이, 머머머 씨

“사진 한 장 찍어드리겠습니다.” “왜요?”

한결같은 반문이다. 사진을 찍어준다는데 그것도 무료로 찍어준다는데 사람들은 믿지 않는 표정이다. 그렇지만 마지못해 포즈를 취하고 인화기를 통해 나온 사진을 보고는 이내 얼굴이 밝아진다.

“우와~ 사진 정말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의아해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도 너도나도 사진 찍기를 청한다.

대한통운에 기술직으로 재직 중인 ‘외톨이’ 씨(스스로 이름을 그렇게 밝혔다.46)는 오늘도 누구를 찍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다. 어느 날 저녁 잠자리에 누워서 세상은 나를 위해 이렇듯 많은 것을 해주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를 고민하던 중 ‘사진을 찍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내 숙명인 것 같다’ 라는 생각으로 귀결됐고 그렇게 사진기를 메고 거리를 나선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그는 처음에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즉석사진을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그러나 폴라로이드 사진의 인화지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을 둘째치고서라고 사진이 잘 변하는 점까지 있어 탐탁치 않았었는데 어느 날 휴대할 수 있는 인화기를 발견하고는 이 기계는 나를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렇게 캐논 50D카메라와 인화기, 인화지는 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이 되었다.

그는 일 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그렇게 사진을 찍어 사람들에게 선물해왔다. 지난 겨울 서울 광장에 상설 스케이트장이 운영될 당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영하 13도가 되는 날씨에도 계속 사진을 찍었다.

결국 스케이트장을 페장 하는 날 그의 이러한 노력을 운영 팀에서 치하해 표창까지 받았다. 회사에서 가깝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덕수궁과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그의 ‘포토 스팟’이 되는 만큼 관광 온 외국인들에게 사진을 찍어 주는 것은 기본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옷 한 벌 구두 한 켤레 사는 것에도 인색한 외톨이 씨는 월급의 전액을 그렇게 쓰고 있다.

 사진을 선물 할 때도 그냥 덜렁 사진만 주지 않는다. 고이 간직하라고 투명한 비닐 봉투에 얌전히 담아주는가 하면, 커플들을 위해서는 포토펜까지 빌려주며 ‘앞으로 열심히 사랑하자’와 같은 문구를 서로 적어 주라고 어드바이스 까지 해준다.     

그는 ‘사진 찍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차이를 이해하는 점을 오히려 배운다고 했다.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는데 끝까지 믿지 않고 제가 사진을 내밀 때 결국은 돈을 받을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너무 고마워서 자신의 마음들을 표현하는 사람들 덕분에 힘을 얻습니다. 바라는 것은 없지만서도요. 가령 가지고 나온 뻥튀기나 과일 같은 간식을 주는 사람들도 있고요. 저는 그렇게 받은 뻥 튀기를 지나가는 꼬마가 먹고 싶어 하면 함께 나누기도 합니다.

그는 사진을 통해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인연을 만난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나 사진을 선물해준 소녀를 통해 그 가족들을 알게 됐고 소녀가 자라 지금 고3이 되기까지 가족처럼 챙기면서 왕래하고 있다.

“제 명함에도 그런 문구를 써 놓았지만요. 누군가의 가슴속에 작은 기쁨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제가 세상에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가 기댈 곳이 되고 저도 그들을 통해 지탱 받고 살아가는 거지요.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그날까지 ‘내일은 또 누굴 찍을까’ 라는 생각은 계속 될 겁니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