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채원 이인성기념사업회장] 이인성100주년 기념展, "작가가 남긴 흔적 끝까지 보여줄 것"
[인터뷰 - 이채원 이인성기념사업회장] 이인성100주년 기념展, "작가가 남긴 흔적 끝까지 보여줄 것"
  • 이은영 편집국장 / 정리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05.1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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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특별전, 5.26~8.26 국립현대덕수궁미술관

◆ 역사 뒤안길로 잊혀진 천재화가 아소(我笑) 이인성 화백
◆ 관람객은 오로지 작품과만 대면해야… 평론 영향 받아선 안 돼

“국적, 성별, 나이를 떠나 작품 자체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아버지 작품을 많이 본 관람객부터 아버지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람객까지 모두들 마음껏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가을어느날>

이인성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특별전이 이달 26일부터 8월 26일까지 국립현대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다. 

이인성 화백은 1929년 17세의 나이로 일제강점기의 가장 권위 있는 전람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속 6회에 이르는 입선과 특선을 거듭,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했다. 또한 1937년 서양화부에 추천작가로 선정, 38세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당대 제일가는 화가였다.

평론가 이경성은 이인성의 작품 특징에 대해 “한국적 풍토미가 깃드는 형태감과 색감 그리고 주제적인 고유성이 드러난다”며, “풍토적인 형태감은 한국의 독특한 체위와 표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이인성 화백의 탄생 100주년(1912-1950) 기념 전시로, 새로운 사료 발굴을 통해 이인성이란 인물과 작품세계를 재해석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인성 화백의 장남인 이채원 이인성기념사업회장
사료 수집에 앞장서며, 이번 전시의 성사를 위해 힘쓴 사람이 있다. 이채원 이인성기념사업회 회장. 그는 이인성 화백의 장남으로, 1950년 11월, 비운의 사고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인성 화백의 공적과 작품을 기리고, 그의 예술 재조명을 통해 한국근대미술을 재해석하며 한국 회화계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1995년 이인성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이인성기념사업회는 미술 작품 및 자료 수집·연구·전시 및 보존하고 이를 국제간 미술교류를 통해 한국회화의 세계화를 추진해왔다. 1998년 이인성 화백의 자료와 사진이 담긴 CD를 제작해 전국 도서관 등에 배포한 결과 1999년 호암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할 수 있었고, 2000년 대구광역시는 ‘이인성미술상’을 제정했다. 또한 2003년 문화부 선정 ‘문화인물’로 지정돼 그해 대구 두류공원에 동상이 설립됐다. 지난 3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도 전작 도록 제작, 해외전시 기획, 장학회 운영, 이인성로 지정 등을 위해 계속 힘쓸 것이다.

-올해 이인성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가 5월 덕수궁에서 열립니다. 이번 전시 의의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우리 미술의 대중화 및 세계화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뜻하는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K-Pop이 세계적으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듯 우리 미술이 더 뻗어나가기 위해선 우선 우리 작품을 제대로 보여줘야 해요. 이번 전시는 우리 미술세계가 재평가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껏 말과 글로만 전해진 아버지의 예술세계를 작품으로 선보이는 전시에요. 작품 외에 유품 및 자료들도 함께 전시합니다”

-전시 준비 중에 작품 소장자들과의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아버지 작품은 소장자를 잘 만났다는 평을 받아오곤 했어요. 대부분의 작품이 소장자 한분께 가 있어서 지금까지 작품이 흩어지지 않고 잘 보존돼 왔거든요. 다만, 소장자들께서 작품 수복에 있어서 조금 더 적극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작품 안에 먼지가 들어가거나, 굳어서 떨어지고 망가진 걸 알았을 때에는 작품이 더 손상되기 전에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소장자의 도리이자 직분이 아닐까요”

국내에서는 삼성문화재단에서 전문적으로 수복하는 팀을 구성해 1999년 이인성 작품을 수복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유럽의 수복기술을 받아들여 요즘은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돼 수복할 수 있는 곳이 늘어나 작품 파손을 즉시 처리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인성 탄생100주년 기념전 홍보대사 배우 안성기 씨(중앙), 박래경 이인성 탄생100주년 기념전 준비위원장(좌), 이채원 회장

-안성기 씨가 홍보대사를 맡으셨습니다. 어떤 인연이나 계기가 있으십니까?
“안성기 씨는 제 오랜 친구입니다. 초년시절부터 저와 함께 그림을 그려왔고요. 지금도 집에서 틈틈이 작품 작업을 하고 있더군요. 더욱이 부인도 조각가고 아들도 화가이죠. 이번 전시에 안성기 씨가 홍보대사로 선뜻 나서줬습니다”

▲<해당화>

-이번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어려움이 많으셨을 걸로 생각됩니다.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세요.
“한 작가를 알기 위해선 글과 말보다 작품을 먼저 보아야 하고, 작가는 말보다 작품이 먼저이지만 지나칠 수 없는 아쉬움들이 있다는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국립’의 힘을 빌리기 위해 이번 100주년 기념전을 국립현대미술관과 손잡고 기획했습니다. ‘국립’이라 사료수집과 작품을 빌리는 데에 있어 더 적극적이고 수월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진행되진 않았어요. 이번 전시는 탄생 100주년 기념전으로 그 의의가 상당한데, ‘스케치북’, ‘화첩’ 등 중요한 작품은 정작 전혀 출품되지 않고, 심지어 디지털화해서 영상으로도 보여줄 수 없다니 저로선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는 온라인에서도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사이버미술관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다음 전시에서는 그림 그리기 체험 등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마련하고, 이인성 영상 등 여러 부대행사도 함께 할 것이라 밝혔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합,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전시장이다. “작품 하나를 보더라도 편안한 공간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전시장은 보여주기 위한 전시장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작품 감상을 위한 편안한 전시장이 돼야 해요”

▲1930년대 중반 오오야마상회 안에 있던 아틀리에에서 1934년 작품 <가을어느날>과 <뒷뜰의 일우>를 배경으로 팔레트를 들고 소파에 앉아있는 이인성 화백
-이인성 화백은 어떤 분이셨으며, 특히 조명을 받아야하는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근대 서양화 초기 시절, 우리 그림을 그린 전문 미술인으로서, 미술대회에서 수많은 화가들과 일본인들 사이에서 떳떳하게 경쟁해 우리나라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은 분이었죠. 또한 우리 근대화단의 신 미술 도입과 정착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였습니다. 초창기 근대화단에서 수채화가로서의 감각적인 기량과 기법의 숙련으로 탁월한 예술적 업적을 일궈내셨죠. 특히 능수능란한 기량으로 정물화나 풍경화도 많이 제작했지만, 인물화에서 한국적인 인물 표현을 정립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그리고 서양의 인상주의나 후기 인상주의의 화풍을 발전시켜 향토적인 서정주의의 한 전형을 이루었고, 훗날 아버지의 독보적인 화면구성, 색감 등은 박상옥, 류경채 등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는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국전(國展)의 한 지류를 형성합니다”

-이인성 화백의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생전 말씀하셨듯이 작품은 어머님의 뱃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인 아버지의 작품은 가장 한국적인 우리 그림입니다. 자신을 ‘그림 직공’이라 칭하곤 하셨는데, 그림을 천직으로 여기시고 그림에 몰두하셨어요. 그런 작품세계가 작품에 그대로 투영돼 있는 거죠”

▲<사과나무>

-이인성기념사업회는 꾸준히 사료 수집을 해왔습니다. 어느 정도 진행됐습니까?
“기념사업회를 20년 가까이 운영하며 틈틈이 수집과 정리를 계속 진행해왔습니다. 이번 전시회 중에도 많은 사료가 수집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생각보다 많은 자료를 모았거든요. 잘 진행된다면 중간 중간에 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기념사업회가 출범하고부터 계속 이인성기념회 홈페이지를 운영 중인데… 꾸준히 운영하다보니 많은 분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저에게 연락을 주시더군요. 매달 나가는 4만원 가까이 되는 홈페이지 이용료가 아깝지 않습니다”(웃음)

-이인성 화백 유작은 몇 점이며, 소장하고 계신 작품은 몇 점인지요?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사료발굴로 20점정도가 추가 발견됐으며, 특히 한국화가 많이 발굴됐습니다. 기존에는 160점정도 있었고, 이번 사료발굴을 통해 180여 점이 됐네요. 저는 20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중섭 화백이나 박수근 화백 등의 작품은 위작시비에 말리곤 합니다. 또한 거기에는 그의 유족들이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작가 자신이 가장 첫 번째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유가족이죠. 이런 일은 주변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유가족에 대한 처우가 중요합니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인격적으로 유가족의 명예를 지켜줘야 하는 거죠”

-이인성 화백의 위작도 만나본 적 있으십니까?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 작품 수집을 2월말까지 진행했었는데, 130점 정도를 모았고, 그 중 20점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위작으로 의심됐습니다. 제게 ‘위작’이란 건 없습니다. 제가 함부로 소장자의 물건에 위작이란 딱지를 붙일 순 없죠. 물론 심증이 가는 몇 작품이 있긴 합니다만 함부로 위작이란 표현을 써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위작으로 보이나 소장자가 진품이라 할 경우엔 소장만 하고 계시라고 돌려 말씀드리기도 합니다”

▲<여름실내>

그는 이제라도 비로소 이인성 화백의 진면목을 세상에 알리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이제부터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시점이 될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문화의 잔치이자 축제라는 이 회장. 이번 이인성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특별전이 우리 근대미술사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