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다비드 예가네] “한국의 ‘기’(氣)를 느껴요”
[인터뷰-다비드 예가네] “한국의 ‘기’(氣)를 느껴요”
  • 서문원 기자
  • 승인 2012.05.1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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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일본 오가던 프랑스인 정치연구소장, 한국에서 화가로 데뷔

프랑스인 다비드 예가네 (David Yeghaneh)씨는 한 때 일본과 프랑스를 오가며 정치연구소 소장, 학술지 편집인 자격으로 양국의 정치ㆍ경제 네트워크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일본 정치학으로 파리 2 대학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일본에서 국제정치학 석사과정 수료했다. 다비드씨는 ‘일본 전문가’다. 그런 연유로 양국정치네트워크를 해왔지만 하는 업무가 너무 바빠, 일상이 일밖에 없던 나날들이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안 다비드씨는 이웃나라 한국은 단 한 차례도 온 적이 없단다. 그랬던 그가 한국인 부인과 4년 전 한국을 방문했고, 당시 상황들을 잊지못해 이듬 해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본인도 알 수 없는 경험을 했단다. 지난 3월과 기자와 우연찮게 만난 이후 4월 두 번 째 만났을 때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다비드씨는 “지난 2008년 처음 한국에 온 뒤 느낀 경험이 다시 나를 한국으로 불렀다"면서 “예전부터 살았던 고향처럼, 혹은 어머니 뱃속처럼 다른 기운을 느끼게 됐다”고 술회했다. 그 때부터 자신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화가로 살고자 한국에 집을 마련하고 살게 됐다고 설명했다.

마치 티벳의 살아있는 부처로 일컫어지는 달라이 라마 그리고 그의 스승 링 린포체를 다룬 영화 ‘쿤둔’(Kundun, 1997)처럼 ‘전생에 한국에서 살았다’고 생각하는 프랑스인 다비드 예가네씨가 다시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와 한국과의 인연이 어디부터 시작됐는지 궁금했다.

다비드 예가네, 그가 어떻게 한국의 기를 느끼고, 왜 한국에 정착하고 화가로 사는지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지난 달 종로 인사동 커피숍에서 만난 다비드 예가네씨. 한국의 생동적인 모습에 반해 화가로 변신하고 정착했단다.

-어떠한 이유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나요?

예전에 얘기했지만 화가가 되려고 결심한 적은 없습니다. 한국에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추상화를 그리게 된 이유는 사물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기를 느끼고 여기에 정착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느낌인지요?

유럽 사람들은 대부분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그런 바탕으로 대화를 합니다. 연인, 부모 자식, 선생과 제자, 상사와 부하,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관계가 그렇습니다.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도 피부색만 다를 뿐, 유럽과 큰 차이가 없어요. 서구화가 오랫동안 진행된 경우죠. 그런데 한국은 4년전 방문한 첫 날부터 느낌이 다르더군요.

마치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 혹은 어머니 뱃속에 있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겁니다.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비드씨가 바로 앞에 있는 나무를 가리킨다) 저 나무는 유럽에서도 흔한 참나무입니다. 수종은 다를 수도 있지만 유럽 어디건 보면 아무 느낌도 없어요. 하지만 여기와서 보니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더군요. 당시는 한국과 다른 나라사이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다를거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나중에 제 와이프에게 물어보니 혹 '기'(氣)라고 하네요. 바꿔말해 생동감(Movement)이 아닐런지요?

-지난 달 인사화랑미술제에 전시된 다비드씨의 작품을 보면 주로 추상화를 그리시더군요?

▲ 프랑스화가 다비드 예가네 작품, '타이 댄서'
추상화라고 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어요. 보는 시각의 차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전(한국 정착 전)까지 저는 텍스트를 생각하고 대화를 했어요. 그림이 아닌거죠. 그러다 보니 상호연관성을 포함한 논리로 '좋다' '싫다'등 나름 이유들을 표현했었죠. 비지니스를 할 때는 유용하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추상화를 그리게 된 연유는 막상 한국에 오니, 굳이 말하고 쓸 필요가 없어졌어요.

사람들의 언행, 움직임 등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어졌어요. 이전까지 없던 현상이죠. 그림을 통해 일상 언어를 색깔로 표현하고 싶더군요. 저 나름 ‘색상과 언어를 통한 명상’을 추구한 겁니다.

-그림속 색상으로 언어를 표현한다? (이 부분은 힌두교의 '차크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색을 표현하는데 네 개의 레벨이 있다고 가정하면, 첫 번째가 의식의 레벨일테고, 그것은 하고 싶은 말, 즉 글쓰기 같은 사적인 형태로 저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는 공간이 먼저겠죠. 두번째 레벨은 잠재의식 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인간의 꿈을 분석하면서 나타난 것들이죠. 그리고 세 번째는 '집단무의식'으로 칼 융이 분석해낸 결과물들이죠.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에서 공통적인 문화를 공유하고, 이것은 우리의 무의식의 공통 부분입니다. 인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부분인거죠. 우리 인간성 또는 본질의 장소라고 생각됩니다.

가령 하느님을 만나거나, 아름다움, 인류애, 적대감 등등 종교에서는 이곳을, 안식처 혹은 성령 등등으로 부르죠.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입니다. 샤머니즘과 불교도 이 부분을 언급해왔고 사람, 개, 꽃, 나무, 산이 똑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색을 표현한다는 건 꼭 추상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우리 몸을 통해 바라보는 시야 말고도 '내면의 눈'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것을 그려보고 싶었던거죠.
 
-프랑스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신학과 철학을 하셨더군요?

신학ㆍ철학에 관심이 많았었죠. 대학전공은 정치학입니다. 석ㆍ박사학위는 파리 제 2대학교에서 일본정치학으로 받았구요. 일본에서 국제정치학 석사과정을 수료했었죠. 그 후로 프랑스와 일본 양국간 정치, 경제, 사회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어요.

내게 영감을 준 한국은 감정과 색의 나라

-남들은 쉽게 갖기 어려운 직업인데, 왜 그만두셨나요?

▲ 다비드 예가네의 2012년 작품 '여성'

제 처와 처음 한국에 왔을때 마음이 바뀐 것 같습니다. 앞서 했던 이야기처럼 말이죠. 제 와이프도 한국인이고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 거주하면서 단 한번도 한국을 오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아? 그래요. 내가 하는 것은 일종의 시각 예술인데, 한국의 샤머니즘 컬러와 추상 표현주의가 믹스된 형태입니다. 저는 색상의 관계와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색상으로 표현하는데 관심이 있어요.

앞서 말한 네 번째 레벨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한국에서 발견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저의 영감을 찾아요.

한국은 감정과 색상의 나라이며, 저는 캔버스에 이런 감정과 색상을 옮기려고 작업을 해왔죠.

이를 위해, 나는 특히 새로운 색상을 찾고 한국의 영혼을 느끼기 위해 한국 전통 시장에 자주 갑니다. 한국은 색상이 다채롭고, 어디서나 색상을 볼 수 있어요, 여성들의 화장에서,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나무들에서, 심지어 음식에서도 말입니다.
 
인터뷰가 끝날무렵 다비드씨는 노트북을 꺼내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설명하고, "지금 살고 있는 서울도 좋고, 한국 곳곳을 여행하며 한국, 한국인의 열정과 삶을 그려보고 싶다"면서 커피 한 잔을 들었다. 가끔 문자를 보내주는 다비드씨는 부인과 함께 한국을 그리기 위해 지금도 여행중이다. 한국인 부인과 함께 다니는 모습이 이젠 편안해 보인다며 "부부와 연인이란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살아갈 때가 가장 좋은 때"라며 귀띔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