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쌍둥이 형제 길, ‘세검정로’와 ‘평창 문화로’
[데스크칼럼] 쌍둥이 형제 길, ‘세검정로’와 ‘평창 문화로’
  • 권대섭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2.05.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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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섭 객원 논설위원
서울 종로구 신영동 168번지 홍제천 냇가에 있는 세검정(洗劍亭) 정자는 조선조 광해 임금을 몰아낸 인조반정(仁祖反正)과 관련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광해군 15년(1623) 이귀, 김류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논의한 뒤 반정의 성공과 평화를 다짐하며, 이곳 홍제천 물에 칼을 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자에 세검정이란 현판이 언제 붙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정자 자체는 인조반정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조사된다. 연산군 시절 왕의 유흥을 위해 세웠다는 설이 그것이다.

연산군은 북한산과 이 일대의 경치가 너무 좋은 점에 취해 기생들과 함께 북한산 탕춘대에 이르기까지 놀러 다니길 좋아했다. 지금이야 도로를 낸다, 개발한다, 주택을 짓는다 하며 이곳 홍제천의 운치가 너무나 망가졌지만 옛 그림이나 문헌에 묘사된 홍제천 일대 세검정자 일원의 경치는 선경 지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정자 쪽에서 북악산 계곡 쪽을 바라보면 너럭바위들이 냇가 바닥을 이루며 아름다운 풍광의 흔적을 말해준다. 문치국가였던 조선의 옛 사람들은 역대 왕들의 실록이 완성될 때마다 이곳 반반한 바위에 치일을 치고 맑은 개울물에 글을 씻어내는 세초(洗草 : 종이가 귀하던 시절 종이위의 붓글씨를 씻어내고 다시 활용하기 위한 작업)를 했다. 지금도 가보면 바위 군데 군데 차일을 치기 위해 구멍을 뚫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세초를 이곳에서 했던 것은 인근 신영동 삼거리 쪽에 조지서(造紙署 : 종이 만드는 관청)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바위와 정자와 폭포가 어우러진 이 일대엔 봄 가을로 도성 안 사람들이 찾아와 꽃구경 단풍구경으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한편 조지서 터 위쪽 지금의 세검정 초등학교 자리는 장의사(莊義寺)라는 아주 큰 절이 있던 곳이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한강유역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던 과정에 백제와의 황산벌 전투에서 전사한 신라의 두 화랑 장춘랑(長春浪)과 파랑(波浪)이 태종 무열왕의 꿈에 나타나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며 다짐하자, 왕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절이다.

이래저래 세검정 일대는 이야기 거리도 많고 유서도 깊은 명승지역이다. 그래서 서울 세검정 하면 나라 안에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니 부암동과 평창동 홍은동 홍지동 신영동 등을 아우르는 이 일대 주요도로 이름은 자연스레 ‘세검정로’가 됐을 것이다. 1984년부터 홍은동 사거리에서 신영동 평창동을 지나 북악터널 입구까지 이르는 약 5.2킬로미터 구간을 세검정로라 한 것이 그것이다. 바로 이 구간의 가장 아름다운 홍제천 냇가에 너럭바위를 타고 외로운 듯 서있는 정자가 세검정이다.

물론 지금의 세검정자는 겸재 정선 선생이 부채위에 그려 놓았던 그림을 바탕으로 최근 복원된 것이다. 당연히 도시화되기 전 파괴되지 않은 선경지경위에 규모 있게 서 있던 그 정자는 아니다. 운치 또한 예전의 그것엔 턱도 없다. 오히려 바로 옆으로 지나다니는 차량들 때문에 시끄러울 뿐이다. 어쨌든 이 정자와 인조반정의 역사성으로 이 일대는 동네이름보다 세검정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했다. 길 이름도 세검정로 였다. 그런데 최근 종로구가 평창동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세검정로 구간의 반을 잘라 신영동 삼거리에서 북악터널 입구까지 온전히 평창동에 해당되는 거리를 ‘평창 문화로’로 바꾸어 고지했다는 소식이다.

평창동 또한 옛 군량미를 저장하던 곡식창고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으로 유서깊은 곳이다. 최근엔 화랑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첨단 문화트랜드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의 최상류층이 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당연히 주민들의 자부심과 지식 ? 교양 수준이 높은 곳이다. 세검정로를 분절해 나머지 구간을 ‘평창 문화로’로 한 것은 세검정로라는 지명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평창동 문화브랜드를 발달시키겠다는 주민들과 자치단체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역발전에 대한 의지인 셈이다. ‘세검정로’에서 느끼는 역사문화적 브랜드위에 ‘평창 문화로’라는 새로운 브랜드 하나가 더 창출된 것이니 그 의욕을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자기 지역의 지명유래에서 전해오는 전설이나 유물·유적 하나에도 관심과 애착을 가지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 계승해 나가는 것은 미래의 세계 시민사회에서 문화국가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다져야 될 자질이다. 이런 의미에서 평창 문화로의 탄생을 축하한다. 더불어 세검정의 명승유적과 스토리들도 더더욱 주민들과 함께 오래도록 보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