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이심전심이 통하지 않을 때
[여행칼럼] 이심전심이 통하지 않을 때
  • 정희섭 국제글로벌문화전문가
  • 승인 2012.05.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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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섭 숭실대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
전 세계를 여행하다보면 수많은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게 되고 여러 도시의 공항을 이용하게 된다. 당연히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체크인을 하고 여객기에 오르기 전, 게이트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을 때가 있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지 커플룩을 입고 있는 남녀 한 쌍의 표정에는 기대감과 행복감이 뒤엉겨 있고, 중요한 협상을 위해 출장을 떠나는 지 말끔한 정장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든 사람에게서는 비장한 표정마저 느껴진다. 긴 여행을 하고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듯 의자에 누워 자는 사람도 있고, 면세점 쇼핑에 열중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면 좌석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될 때도 있고 아니면 서로 외면한 채 줄곧 잠만 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 갈 때는 문제가 없으나 열 시간 이상이 걸리는 유럽이나 미주, 심지어 서른 시간 이상이 걸리는 남미로 갈 경우에는 옆자리 승객과 서로 외면하고 잠만 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종을 불문하고 어떤 형태로던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창가 쪽에 앉은 사람이라면 화장실에 갈 때 복도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고, 나갈 때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좌석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도 해야 한다. 복도 좌석에 앉은 승객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다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늘 신경 써야 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헤드폰에서 터져 나오는 음악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식사 중 앞좌석 등받이의 각도에도 민감해진다. 본의 아니게 옆 사람을 건드리게 되고 앞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불쾌감이나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비행기 여행이다.
이코노미석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은 좌석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쉽게 피곤하게 되고 혈액순환도 잘 되지 않아 신체의 많은 부분이 저려온다. 신경이 예민해진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작은 실수조차도 크게 보인다. 그것이 여러 인종이 같이 타고 있는 상황이라면 비행기는 인종적 고정관념을 만들어 내는 편견의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못하는 말이 ' 미안하다 ' 라고 한다. 이심전심의 문화 토대 위에 정으로 뭉쳐진 나라라서 그런지 웬만한 일에는 사과의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이기도 하다.  뒷자리에서 실수로 앞좌석을 발로 차는 경우에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간다. 팔로 옆 사람을 쳐도 그냥 이해하겠지하면서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여객기 안의 복도를 걷다가 다른 사람의 발을 밟아도 그냥 슬쩍 겸연쩍게 쳐다보고 지나간다. 모든 것이 다 괜찮다는 듯 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위험한 발상이고 국가적 이미지 실추의 일등공신이 된다. 한국인 내지는 동양인들은 ' 모두 저렇지 ' 라는 오해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상대방에게 크고 작은 불쾌감이나 피해를 주어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무표정한 상태에서 말하는 것 보다는 상황에 맞는 약간의 표정을 실어 실수로 그랬음을 알려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준 상황에서 미안함을 적절히 표현할 때 모든 오해는 신속하게 사라지게 된다. 미안함의 표시는 대화로 연결되어 좋은 친구를 만들어 줄 때도 있다. 

지구촌 여행의 에티켓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이다. 고마울 때 고마움을 표시하고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쉬워보여도 일상생활에서 생활화가 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말이 ' 미안하다 ' 이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더더욱 이심전심은 통하지 않는다. 이심전심은 확실하게 잊어야 할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