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수첩 속의 추억의 전시/큐레이터 토크 7]2008서울국제판화아트페어 특별전
큐레이터수첩 속의 추억의 전시/큐레이터 토크 7]2008서울국제판화아트페어 특별전
  • 이은주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큐레이터
  • 승인 2012.05.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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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전시는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 2008의 특별전으로 기획되었던 <다양한 매체에서 탄생된 예술작품의 시나리오>로 판화, 사진, 영상, 설치작업에 이르기까지 장르적 구분과는 무관하게 오늘날 대두되고 있는 매체적인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기획된 전시였다.

따라서 본 전시를 통해 예술의 영역에서도 돌연적으로 기술 언어와 프로그램이 중요하게 개입되고 있는 사실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에 따라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은 어떠한 작업을 하고 현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되었다.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달로 인해 초기에 군사의 전유물로 쓰였던 컴퓨터가 60년대 말에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이러한 컴퓨터의 대중화는 사이버문화시대를 초래했고 특히, 예술영역에서 컴퓨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예술개념이 등장하였다. 컴퓨터가 생산해 내는 디지털 이미지는 기존의 아날로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형식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오늘날의 디지털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미적 기준은 과거의 전통적인 예술작품의 미적 평가와는 다르다.

▲Baroque Library, 50cm diameter, photography coated with plastic, 2006.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의 성격은 텍스트, 그래픽, 사운드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매체간의 구별을 사라지게 한다. 이로써 디지털 이미지는 잡종성을 드러내게 되었고, 매체들 간의 상호작용성은 일반적인 경향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디지털의 경향을 단지 시대적 하나의 흐름과 현상으로 조명하거나, 이를 단지 새롭게 대두되는 흥미로운 예술현상으로 목격할 수 있는 시대적 분위기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하기 위함이다. 디지털 이미지가 현대 시각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은 단연 실제로 디지털과 최첨단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미디어아트 영역에서만 적용되는 문제일 뿐 아니라, 기존의 전통적인 작품창작의 기법과 개념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디지털 이전에도 수많은 기술(Technology)과 기법(Technics)들이 예술가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한 점의 예술을 탄생시키기 위한 중요한 도구로 작용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디어아트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기술은 자신의 예술작품의 개념을 수월하게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보조적인 수단으로써의 기능으로 작용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작가들의 경우는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자체가 예술작품을 생산해 내는 개념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위와 같은 두 가지 상반된 논리를 단지 시대와 문화를 포섭하는 디지털의 경향이 아닌 다양한 작가들이 현 시대의 매체예술에 대한 고민을 작품을 통해 어떻게 제시하고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에 관해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판화의 경우를 보면, 판화는 예술작품을 규정하기 위한 그만의 정직한 잣대가 주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석판, 동판, 에칭 등의 다양한 기법들은 그 자체가 예술작품의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주요한 매개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의미와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기법의 기술을 먼저 습득해야 한다. 이는 기술이 작품을 지배할 수 있는 맥락의 접근보다는 기술 그 자체가 작품을 완성해 내는 하나의 중요한 단서로 기술과 인간의 체연 관계들로 치환된다.

기술철학자 돈아이디(Don Ihde)는 어떠한 대상을 더 나아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수단이 되는 기계를 통하여 ‘자아-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밝힌다. 즉 “(인간-기계)->세계”라는 도식이 형성되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기계는 인간과 한 유형으로 분류되며 인간은 기계를 통해 구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기계를 통해서 자신의 경험을 확장 시킬 수 있는데, 이러한 확장된 경험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에서 부분적으로 투명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투명성’은 기계가 고도로 발달될 경우 일수록 더 증폭되고, 투명성의 경험들은 결국 자기 자신에 속해 있는 기억과 경험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많은 예술가들은 다양한 기술과 기법을 매개로 하여 예술작품을 완성하고, 그 작품을 통해 자신과 세계와 만나고 더 나아가 자신이 만났던 다양한 세계들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에서는 판화와 사진의 장르를 넘어 사진조각, 설치 영상물 등의 작업을 진행시키는 작가 9명의 결과물이 선보여진다. 따라서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을 비롯한 동시대의 문화적 코드를 포섭하는 작업 양상의 유기성에 집중되었다.

사진작가 베른트 할브헤어의 작업에서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변형될 수 있는 다양한 조형적 특성을 살펴 볼 수 있다. 이미 한국에서 소개된 바 있는 조각형태의 사진 설치물에서 우리는 매체를 통한 공간의 지각문제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목격할 수 있다. 우선 사진조각의 중요 모티브가 되는 소재는 모두 공간으로 작가에게 사진은 실제의 공간을 표현해 내는 것 그 이상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구 라는 형태로 구현되는 사진조각 작품에서 그 형태 자체를 통해 공간의 정밀성을 탁월하게 재구성해 냈다. 즉 재료의 측면에 대한 부각은 곧 작품의 형태와 내용이 가지고 있는 도구적인 측면이 탈색된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신체와 사물과의 접촉을 시도해 볼 수 있으며, 관객은 확정되지 않은 과정의 예술에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3차원의 공간을 담은 평면사진 단면도는 작가가 구상한 사진 조각형태로 탄생하여 3차원의 지각방식을 제시한다. 이는 자신이 경험한 시각적인 경험을 단지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조각을 통한 현상학적 공간의 경험으로 환원시킨다.

작가 윤세희는 자신이 머물렀고, 존재했던 도시경험의 과거와 현재를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통해 세밀하고 정확하게 묘사해 낸다. 윤세희의 화면 속에 등장하는 현존하는 공간과 사라진 공간은 곧 자신의 과거의 흔적이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공간의 재구성 방법은 마치 실제의 공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도시경험의 근간은 19세기의 산책자(flaneurs)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에 다양한 요소들 중 빌딩 숲 사이를 혹은 각각의 조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건물들 사이사이를 산책하듯 걸어 다녔던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현실과 또 다른 공간의 탄생을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작가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신의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동판은 현대사회의 도시 모습을 담아내기에 적당한 재료로 작용한다. 화면 전체를 구성하는 도시의 모습, 즉 다양하면서도 획일적인 모습을 ‘동판’ 이라는 차가운 매체를 이용하여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세밀한 관점으로 표현해 낸다. 동판의 이용은 차가운 것을 더욱 차갑고 딱딱한 느낌으로 연출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것이며, 이와 더불어 드라이포인트 기법은 그 차가움과 딱딱함을 더욱 집약적이며 날카롭게 표현해 내는 매체로 쓰인다.

판화를 더욱 판화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평면의 캔버스에 시각적 일루젼을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작가 함영훈은 판화의 다양한 레이어와 겹치는 효과를 회화 장르에 적용하여 판화의 매력을 기존과는 다른 방법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그의 작품의 결과물에는 목판, 석판, 실크스크린 등의 다양한 판화 기법이 사용되는데 화면의 시각적 표면은 불현듯 실제로 이 작업이 판화인지, 회화작업인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없다. 이는 수년간 판화작업을 해오면서 그 기법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조형언어를 화면에 삽입하였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조형언어는 구상과 추상과의 조화, 2차원 평면성과 시각적 환영성의 조화 그리고 화면구성의 규칙성과 불규칙성의 조화사이에서 탄생되었다.

이러한 판화에 대한 그의 독자적인 해석을 통해 생산된 최근 작업에는 오리지널한 판화의 기법을 토대로 자신의 주요 모티브로 작용하는 그루브(Groove)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그루브는 서양음악에서 부드러운 선율의 화음을 이루어 절대적미를 추구했던 행위와는 대조적인 개념으로 오히려 규칙적인 음계의 형태를 변형시키거나 음악의 근본적인 테제인 리듬성을 흥미롭게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작가 함영훈이 추구하는 구르브의 개념은 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규칙 없는 리듬감, 불균형적인 하모니를 통해 발견되는 자신의 흥미로운 지점을 관객과 여과 없이 소통하려는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곧 판화와 회화라는 장르를 넘어서 다양한 매체의 속성을 한 화면에 제시할 수 있는 새로움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함영훈과는 또 다른 예술성을 가지고 다양한 장르로 자신의 작업세계를 제시 해 온 임택의 작업에서는 동양 산수화의 개념을 더 이상 화선지나 먹이라는 재료를 매개로하여 구현해 내지 않는다. 임택의 작업에서 동양화의 산수화 개념이 고스란히 사진의 장르에 옮겨오게 된 연유는 산수화를 좀 더 현대적인 매체로 재해석하여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한 시도이다. 유람하면서 획득된 삼원법의 시각은 곧 동양 산수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작가는 이를 이용하여 산의 모양을 한 화폭에 그려 넣으려는 노력과 동시에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듯 한 느낌으로 산 속을 거닐 때의 마음을 수묵화가 아닌 설치와 사진매체로 탈바꿈 시킨다.

이러한 구현은 작가 자신이 등산했던 여러 산들의 모형이 그 주요 소재가 된다. 전시장에 설치되는 산들은 우드락으로 제작되는데,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가벼운 소재를 통해 어렵고 무게 있는 장르로 통용되는 산수화의 일반적인 시각을 해체시키기 위함이다.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산속의 유랑경험을 전시장에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으로써의 설치물과 이를 촬영한 임택의 사진작업은 동양화를 바라보는 현대인들에게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요즘의 산속에서는 삿갓을 쓰고 뒷짐을 지고 있는 양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기에 산수화의 정신을 유지하면서 현대문명과 그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작가의 중요한 작업테제가 될 수 있다. 이는 산수화를 통한 동양적인 정신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 그 실마리라 할 수 있다. 특히 화면 구석구석에 등장하는 다양한 현대문명의 산물, 가지각색의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작가 개인의 경험들을 통한 조합은 작품에 또 다른 흥미지점을 던져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작가 안세권은 도시화를 통해 사라져 가는 공간을 카메라의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인간이 육안으로 한 번에 인식할 수 없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낸다. 유독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어둡고 소외된 공간에 집중하는 안세권의 사진 속 풍경은 도시의 주변부에서 흔히 발견되는 재개발 지역이다. 작가의 작업에 매번 등장하는 이러한 광경에서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화면을 구성하는 패러독스적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작가는 버려진 쓰레기가 가득한 폐허의 공간을 강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재조명해 내기 때문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화려함과 선명함은 8”x10”대형카메라의 망원렌즈로 더욱 극대화 된다. 이를 통해 그가 사용하는 기술은 단지 화면 속의 대상을 확대한 스펙타클을 보여주는 것 이외의 이미 확대된 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시각을 매개화 한 것이다. 화면에 클로즈업되어 관객이 들여다 봐야하는 대상들은 단지 그것의 사물성을 넘어선다. 작가가 설정한 화려한 조명 뒤에는 폐허된 공간을 떠나는 사람들의 슬픔이나 절망만을 담아내지 않는다. 그는 재개발을 위해 그곳을 떠나는 사람들의 과정을 자신의 렌즈를 통해 또 다른 의미를 담아낸다. 비록 지금은 재개발 공간이지만, 그들은 분명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꿈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또 다른 미래를 위해 이곳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세권의 사진 속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작가 김정명은 일찍히 퍼포먼스나 실험적인 예술을 한국등단에 소개시킨 인물로 이번 전시에서는 말 풍선 시리즈를 선보인다. 시대적인 정황을 재치 있고 예리한 시각으로 풀어내는 김정명의 작업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브론즈와 종이 상자 그리고 나무와 쇠 등의 다양한 매체로 구성되는 네모난 것들은 모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컴퓨터의 모니터, TV, 카드, 신문, 잡지, 책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작가는 빈 상자 속에 작가의 임의로 삭제한 비어있는 말 풍선을 그만의 조형적 언어로 배치한다. 또한 작가는 인터넷의 도래로 이 시대에 차고 넘치는 말들과 분주한 논쟁들 사이에 원활 할 것만 같은 소통의 또 다른 언저리에 관한 문제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 말 풍선 시리즈 작업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단지 인터넷 세상을 통해 말들이 무작위하게 난무하는 것에 대한 딴지걸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작가는 독자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하여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말 풍선을 통한 “비어있음”은 또 다른 대화의 통로로 탄생된다. 즉, 이러한 비어있는 공간은 작가가 열어놓은 관객과의 소통의 장소일 수 있다. 캔버스 혹은 설치의 형태로 전시되는 작가의 말 풍선의 조형적 공간성과 위치에 따라 관객은 각자의 입장에 맞게 말들을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장르에 정신적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자신의 예술적 개념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드러내는 홍지윤의 작업세계의 시초는 바로 “지필묵”이였다. 하지만 작가는 먹으로 동양화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 이외에 동시대의 기술과 현상을 적극 활용하여 그만의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의 형태들을 구현해 낸다. 그 형태들로는 사진, 라이트박스, 영상물이며, 이러한 결과물은 작가의 유연한 사고방식을 통해서 전시형태의 작품들로 구체화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어떠한 방식으로 예술을 대하는 가에 대한 문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작가는 바로 신문, 매거진,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등의 매체로 넘쳐나는 오늘날의 시대적 환경을 단지 흘러가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특히나 동양화의 지필묵 작업에 새로운 매체를 접목하여 작업을 진행시켜 온 홍지윤에게 동양화의 특성과 영상예술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서 발생되는 차이점에 대한 발견은 자신의 예술개념을 수렴해 가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가령,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본래의 색을 보여주는 수묵의 특성은 영상예술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이라는 개념과 닮아 있는데 이것은 작업의 중요한 테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동양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군자는 그의 작업에 소재로 사용되며, 이러한 소재는 여러 채널들을 통해 그 만의 정체성들을 찾아 나간다. 즉,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기반이 되는 동양화의 사고와 소재 및 재료에 대한 사유를 현대적인 시각장치를 통해 더욱 극대화하여 드러낸다.

조소를 전공한 작가 이장원은 미디어아트분야에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설치 영상작업을 선보여 왔다. 끊임없이 발전되고 있는 기술을 매개로 작업결과물을 이끌어 내는 그의 작품들 중,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것들은 모두 현재 그가 고민하고 있는 작품의 개념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의 산물들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른 새로운 매체에 대한 꾸준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의 중요 테제가 되었던 “자연”이라는 개념은 현대문명이 창출해 낸 기술결정력 시대를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도화원기(桃花原記)- 작업은 기계로 만들어낸 자연의 바람을 상징한다. 이처럼 작가는 현대문명 이전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던 자연 개념을 그대로 오늘날의 새로운 것들과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그의 최근작 썬트레이서(sunTracer)프로젝트 에서는 이러한 그의 관심이 더욱 극대화 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빛의 근원이 되는 태양의 기능은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기계형태를 통해 물리적으로 구현되지만 결국 그는 태양이라는 자연의 순환섭리를 통해 더 넓은 것들을 포섭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커다란 기계 설치물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이러한 고철 덩어리로 조합된 기계적인 움직임과 소리가 곧 예술이 된다” 작가 신은주는 키네틱 아트의 속성 중 바로 기계적인 그 자체의 움직임과 사운드가 조합된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피지컬 컴퓨팅(Physical Computing)개념이 그 기반으로 작용되고 있으며, 이는 컴퓨터에서 생산된 이미지와 영상을 스크린에 상영하는 것 보다, 컴퓨터의 기계적인 요소들을 물리적인 공간에 이끌어내는 역할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여느 조각물과 달라 보이지 않는 그의 작업에서는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는 인터렉티브가 숨겨져 있다. 관객이 조각물 내부에 위치한 마이크에 소리를 내면, 그 음정의 높낮이에 맞게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이렇듯 -Vocal Trio-는 작가가 그간 연구했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운드 조각설치물이다. 평소에 환경조각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최근작에서는 인터렉티브를 구현해 내기 위한 기술력이 동반된다. 이와 동시에 조각의 매끄러운 완성도는 기계의 원리로 작동하는 조각에서 또 다른 조형미를 찾아 볼 수 있게 한다. 작가는 오늘도 하나의 완전한 기계를 통한 또 다른 형태의 예술작품을 구현해 내기 위해 또 다른 기술을 습득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모두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작가들이다. 작품에서 살펴 본 바 있는 그들의 작업세계에서 우리는 현대적인 관점과 변화하는 시대적 양상들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의 결과물로 이끌어내는 지점을 목격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분명 많은 예술가들에게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분명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하는 다양한 장르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 할 수 있는 예술가들의 입지와 태도가 중요하게 작용될 것이다.

테크놀로지와 예술과의 만남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언급되어오던 화두였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술가들은 그러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그에 합당한 기술을 습득해야 했으며,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실질적 상황 때문에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예술가가 사용하는 기술 즉, 테크놀로지가 예술의 영역에서 자리 잡게 되었을 때 예술은 자연과학과의 기술과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 될 것이다.

이는 과학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기계적인 운동성을 이끌어 내는 감성적 부분을 어떻게 작가 각 개인의 사적 경험들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예술가가 숙련된 기계공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기술발전의 프로세스에 상응하는 자신의 예술적 개념을 잘 풀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인식에 대한 해답은 기술과 예술을 잘 통합함으로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 내는 예술가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은주(李垠周) Lee EunJoo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를 졸업했으며 판화와 사진 전문 아트페어인아트에디션 팀장을 역임했다. 현실과 환타지의 경계시리즈(2008), 다양한 매체 속에서 탄생된 예술작품의 시나리오(2008), 비주얼인터섹션-네덜란드사진전(2009), Remediation in Digital Image展(2010), 미디어극장전-Welcome to media space(2011), 사건의 재구성전(2011), 기억의방_추억의 군 사진전(2011) 외 다수의 기획전 및 개인전을 기획했다. 전시와 출판 관련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아트스페이스 갤러리정미소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