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여행칼럼] 힐링의 땅 나가노(長野)에서 한국의 흔적을 만나다 (1)
[이수경의 여행칼럼] 힐링의 땅 나가노(長野)에서 한국의 흔적을 만나다 (1)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승인 2012.05.2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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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원시림과 유황냄새, 온천수 분출하는 협곡사이로 흐르는 눈 녹은 에메랄드빛 아즈사강과 신비의 호수, 백제 불교의 명사찰 젠코지(善光寺), 그리고 마츠시로(松代)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한국의 근현대사전문가인 친구가 10년 만에 도쿄를 방문했기에 그녀에게 좀 더 색다른 일본을 안내하려고 하네다공항에서 약300킬로 정도 떨어진 나가노현(長野縣)의 가미코치(上高地)와 나가노시(長野市)를 다녀왔다.

4월의 신학기 스타트 후, 정신없이 수업과 학교업무에 쫓기던 터라 친구와 더불어 필자도 망중한의 여유도 찾을 겸 고속을 달렸다.

나가노시라면 한국에는 등산이나 스키를 즐기는 사람, 혹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3000미터를 넘는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서 일본에서는 [북알프스]지역이라 불리는 중부산악국립공원 지역이 있고, 일본최초의 [특별명승, 특별천연기념물]이란 이름으로 지정된 천혜의 명승지인 가미코치가 있다. 널리 알려진 후지산이  3776미터지만 필자가 소개하는 가미코치는 3000미터 전후의 높고 멋있는 설산 아래로 눈 녹은 아즈사강물과 신비스런 풍경의 호수, 계곡마다 뿜어나는 유황냄새와 분출하는 온천수의 연기, 깊은 숲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야생 원숭이들 등이 큰 가마솥 같은 형태로 어우러져 4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으로 대자연의 절경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곳이다.

▲3190미터의 호타카봉우리

 

▲가미코치에 사는 야생 원숭이들

마츠모토(松本)시에서 험준한 산속으로 이어지는 몇 개의 터널과 댐을 거쳐서 깊은 협곡을 따라가면 新가마(釜)터널이 마지막 관문처럼 버티고 있다. 그곳을 벗어나면 마치 별세계에 온 듯한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신록의 계절이나 불타는 단풍의 계절엔 더더욱 아름답고 겨울엔 눈이 많이 오는 탓에 4월말부터 10월까지만 입산 해제가 된다. 그 시기에 방문하는 사람만 연간 200만 명을넘는 곳이고, 요즘은 해외에서도 산과 자연을 즐기려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가미코치 다이쇼이케

필자는 싱그러운 대자연의 숲과 아름다운 풍경, 맑은 공기, 아즈사강물이 흐르는 가미코치를 매우 좋아한다. 한 여름엔 40도를 오가는 도쿄의 더위에 지쳐서 다섯 시간정도를 달리면10~20도의 쿨한 가미코치가 복잡한 머리를 식혀준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학생들을 데리고 가미코치의 묘 진이케(明神池)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최근엔 대학원생들이 세미나 여행차 가자고 졸라댈 정도이다. 그런 가미코치에 우리조상의 흔적이 깃들여져 있기에 더더욱 애착이 가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가미코치 다이쇼이케

가미코치는 근대까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었으나 1915년 6월에 입구의 야케타게산이 분화를 일으키며 분출한 흙덩어리가 아즈사가와를 막자 강물이용을 위해 공사담당의 [아즈사가와梓川전력](이후, 모든 공사는 도쿄 전력이 인수)이 건설 공사용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갱구를 파기 시작했고, 그 분화로 생겨난 다이쇼이케(大正池)호수의 수력활용을 위한 계곡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가미코치가 바깥세계와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마을과 산을 잇는 자재운반의 터널은 댐 공사의 본격화로 규모가 필요했고, 몇 번의 개수공사를 거치며 1927년경에 가마(釜) 터널이 만들어지는데, 당시 댐 공사는 물론 계곡의 터널공사는 위험성이 높았기에 식민지 한국인 노동자를 모집하여 값 싼인력으로 공사를 했다고 한다.

물론 점차 일본의 개발 붐과 전쟁 분위기가 농후해지면서 나가노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의 수많은 댐, 터널, 탄광, 특공대 기지 등 각종 공사에는 발파 및 굴착기술이 뛰어났던 한국인기술자 및 노동자(초기엔 모집), 전시에는 엄청난 징용 노동자들이 동원을 당한다.

▲가미코치 가마터널 앞에서

우익보수파로 알려진 이시하라 도쿄도지사의 동생인 고이시하라유지로가 주인공으로 유명한 영화 [구로베의 태양](1968년 개봉)의 배경인 구로베(黑部) 댐은 당시 아시아 최대의 방수량을 자랑하는 일본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그 댐 공사현장에는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원되었고, 발파공사 등으로 중상 및 사망자가 생기면 댐 밑으로 던져지는 참혹한 일들도 다반사로 이뤄졌기에 죽은 조선인들은 무덤도 없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강제연행노동자 및 한일근대사연구자인 고 박경식 씨 연구논문 참조).

▲신 가마터널

필자가 인터뷰를 했던 가미코치터널 공사관계자 S씨(80세)는 터널을 팔 때 혹독한 노동으로 쓰러져 죽은 사람은 그냥 터널에 묻었다고 했다. 그 뒤 구체적인 필자의 연구의도를 설명한 장문의 편지와 반신용 봉투 등을 넣어서 보내었으나 아직까지도 답은 없다.

나가노 현청에서 가미코치 지역 관리 담당 차 나와 있던 관리 공무원과 만났을 때 필자가 이런저런 걸 묻자 [말씀하시듯이 가미코치에 조선인 노동자가 동원된 것을 명확히 밝힌 사람은 아직 없네요]라고 속내를 이야기해줬다.

가미코치에 들어가기 위해선 환경규제가 엄한 탓에 사완도(澤도)라는 곳에서 입산허가를 받은 저공해친환경버스나 허가받은 택시로 갈아타야만 하는데, 택시운전기사들 이야기로는 지금도 작은 갱구 쪽에서나 공포의 터널로 유명한 구 가마터널(일방통행으로 좁고 길며 어두컴컴했던 가마터널 바로 옆에 새로운 가마터널이 2005년 7월에 개통) 안에서는 밤이 되면 [어이, 어~이]하며 사람을 부르는 조선인 목소리가 들리거나 사람그림자가 보인다는 얘기를 한다.

물론 그곳은 밤에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곳이 못된다.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 없는 유골을 모아서 70년대에 근처의 사찰승려가 한국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필자가 2006년도 [월간조선] 1월호에 발표한 적이 있으나, 아쉽게도 그때까지 가미코치에 대한 한국인 노동자와의 언급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신 가마터널
그런 내용들을 공유하면서 친구와 함께 사완도까지 가서 택시를 갈아타고 가미코치로 들어갔다. 계곡에는 얼마 전의 지진 등으로 산사태가 난 곳이 눈에 띄었다. 유황냄새 퍼지는 계곡 길로 들어서길래 운전기사에게 가미코치 온 이야기를 했더니 친절하게도 우리 취지를 이해하고 구 터널 옆의 공사 중인 갱구 근처로 안내해주며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우리는 그곳에 내려서 현장답사를 한 뒤, 아침에 내리던 비가 가미코치에서는 눈이었다기에 5월의 눈 내린 가마터널 주변을 거닐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