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연극배우 박정자] “관객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
[인터뷰-연극배우 박정자] “관객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
  • 이은영 편집국장 / 정리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05.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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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展, 31일까지 대학로 갤러리 정미소

50년 연극인생, 노력과 채찍질이 이끌었다
‘예술인복지법’, 구체화돼 자리 잡아야…

     '서랍이 많은 배우' 박정자. 한 평론가는 그를 이렇게 표현한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필요 이상의 서랍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감정이 늘 넘치는 배우.

     박정자의 연극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사진의 방 - 박정자展’이 이달 31일까지 아트 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연극의 길 위에 바르고 촘촘하게 새겨진 한 배우의 발자취를 증명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갤러리에서 열리는 낭독공연이란 새로운 기획 또한 포함돼 있다.

     1962년 ‘페드라’를 시작으로, 대표작 ‘피의결혼’, ‘백양섬의 욕망’, ‘굿나잇 마더’, ‘대머리 여가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신의 아그네스’, ‘11월의 왈츠’,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에쿠우스’, ‘19 그리고 80’ 등을 포함해 지금까지 140여 편의 연극에 출연, 고압적이고 강렬한 무대를 선보여 왔다. 그는 연극을 시작한 이래로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그 초인적인 열정과 헌신을 뿜어오며 올해로 연극인생 50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지만, 자신은 그저 한 연극배우일 뿐이라며 그는 “전 거룩한 예술가가 아니에요. 관객들과 어울리는 게 제 역할이고, 우선순위는 항상 관객이죠. 관객이 없다면 전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똑같은 작품을 올려도 그날그날을 첫 무대로 생각하며 오른다. 똑같은 반복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배우 박정자와 나눈 일문일답.

-연극인생 50주년을 맞은 감회가 어떠신지요.
“특별할 감회랄 건 없고… 그저 제가 사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죠. 지금껏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서 많인 경험해봤던 것들입니다. 왠지 모를 뻐근함 같은 것 말예요. 또 왁자지껄한 분위기… 이러한 것들은 항상 내 삶에 있었죠. 이번 공연도 한바탕 굿판을 벌인다는 마음으로 준비했고, 또 그렇게 치러내고 있습니다”

-박정자展’은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인사동 ‘아트링크 갤러리’에서 첫 막을 열었던 것으로, 이번에는 ‘갤러리 정미소’에서 열립니다. 갤러리에서의 전시와 공연을 함께 하는 게 참 인상적입니다.
“실은 예전부터 해오고 싶었던 거예요. 이렇게 갤러리에서 전시와 공연을 함께 하는 것… 애초에 전시를 완성시키는 건 공연입니다. 배우가 사진만 내걸고 늘어놓는 건 의미가 없거든요. 사람들은 갤러리에서 이런 게 가능하다는 것에 놀라더군요. 사고가 너무 경직돼 있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사람들은 제 기획능력이 너무 뛰어난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냥 제가 배우생활을 하며 가졌던 생각들과 노하우일 뿐인 걸요. 아트링크도 제게 갤러리를 선물해준 거예요. 20일 마음껏 대관료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쓰라고… 보통 갤러리에선 상상할 수 없는 공연과 함께 하는 전시를 제가 선보인 이후, 여기저기서 초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전 그냥 전시만 하는 게 아니라 낭독공연도 꼭 함께 진행하려고 합니다”

-분위기 있는 목소리로도 유명하세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에 이렇게 무게감이 있었답니다.(웃음) 목소리는 내가 연극배우로서 갖고 있는 큰 무기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연극을 볼 때 우선 배우의 목소리부터 듣습니다. 배우의 목소리는 상당히 중요해요. 관객을 매료시키지 못 하는 목소리는 연기까지도 신뢰가 안 가게 되더군요. 꾀꼬리 같이 예쁜 목소리는 사실 좋아하질 않아요. 왠지… 거북해요.(웃음) 너무 예쁜 목소리는 금방 질린다고 생각해요. 개성 있는 목소리가 더 좋죠. 외적인 아름다움은 변하기 마련인데, 배역에 따라, 의상이나 메이크업에 따라서 말예요.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변하지 않고 무엇으로도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얼굴은 잊어버려도 목소리는 쉽사리 잊을 수 없어요. 멀리서 들어도 빠른 인지가 가능하죠. 참 신기하지 않나요?”

-연극 ‘19 그리고 80’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초연 당시 작품을 직접 발굴하기도 하셨는데요.
“제가 80살이 될 때까지 공연하겠다고 공언한 작품입니다. 제 스스로 ‘박정자의 아름다운 프로젝트’라고 명명했죠. 제가 직접 이 작품을 꺼내들어 프로듀서로서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19세부터 80세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에요. 모드는 제 롤-모델이에요. 하지만 작품을 하며 모드를 따라가려해도 쉽지 않더군요. 세상에 모드처럼 사는 사람이 넘쳐났으면 좋겠어요”

‘모드’는 단순한 극 중 인물이 아닌, 그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로 탄생해, 객석에게 사랑과 지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모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든 살 할머니로, 거리의 시들어가는 나무를 숲에 옮겨 심고, 동물원의 더러운 물에서 괴로워하는 바다표범을 바다에 풀어주는 모드는 언뜻 천진무구한 소녀 같기도 하다. 그는 환경 친화적인 무공해 인물 ‘모드’처럼 살고 싶다. “모드만한 사랑과 지혜, 용기가 제게 있을까요? 인생을 좀 더 살면 모드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이 작품을 80세까지 계속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멜로연기를 하신다는 게 언뜻 상상이 잘 안 가는데… 연애결혼 하셨다고 들었는데, 연애스토리 좀 말씀해주세요.
“내 친한 친구 동생이었어요. 저보다 무려 4살 연하…(웃음) 군부대 위문 공연 갔다가 처음 만났죠. 그 해 여름과 겨울에 갔었는데, 여름엔 서로 잘 몰랐고, 특별한 감정도 없었어요. 그런데 겨울 위문공연 때 정말 몹시도 추웠어요. 공연을 끝내고 군부대 버스에 오르는데, 제게 말없이 자신의 방한모를 씌워주더라고요.(웃음) 그때부터 서로 감정을 가졌었나 봐요. 3년 남짓 연애 후 결혼했고요. 주변의 반대가 있었죠. 친정어머니는 이제 인생 시작하려는 젊은 애랑 결혼하려고 하냐며 절 말리셨어요. 하지만 남녀가 만나 서로 감정을 나눌 때,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더라고요”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냐는 질문에 그는 감흥이 없다고 했다. "전 나이에 둔감해요. 오히려 나이 드는 게 좋죠. 지금껏 나이때문에 하고자 한걸 스스로 억제한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지금 이 나이가 가장 예쁠 때라고 생각해요"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으로도 활동 중이십니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딱 만 6년째입니다. 두 번 연임한 거죠. 후배들은 복지법 통과될 때까지만 하라고 했는데, 이미 통과는 됐으니까…(웃음) 지난해에서야 겨우 ‘예술인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고 험난해요. 예술인들은 마땅한 조직에 속해있지 않다보니 덩그러니 있는 풀뿌리와도 같아요… 연극인복지재단은 자료 수집과 세미나 개최를 통해 현장 조사와 연극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크진 않더라도, 시간이 걸릴지라도 자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인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4대 보험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못하죠. 우리가 어렵고 힘들게 살았을 때는 서로 노력하며 도왔는데, 지금은 나라가 부강해지고 잘 살다보니 일 안하고, 노력 안하며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에요.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운영 중이라 직원은 두 사람에, 사무실 또한 윤석화 씨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제공해준 거고. 정부기관이나 다른 부처에서 연극인들을 필요로 할 때, 우릴 통해서 문의를 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연극인들이 현장으로 나갈 수 있게끔 도와주죠”

-현재 한국 연극계가 처한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순수연극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무에 강한 민족이라 그런지 이렇게 뮤지컬에 대한 뜨거운 열광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 같아요. 다만 검증되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무대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은 한쪽에 쏠리는 경향이 있어서 뮤지컬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관객들이 늘 옳은 건 아니죠. 저도 늘 관객을 기다리고 짝사랑해왔지만 가끔은 배신당했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으니까요.(웃음) 요즘은 ‘엄마 시리즈’가 인기죠? 친정 엄마와 딸 이야기로 해서… 너무나도 뻔한 내용의 작품인데, 주로 탤런트들이 출연배우로 나오다보니 관객들은 거기에 쏠리고… 지방 같은 경우에는 그런 부분이 더욱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면서 연극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게 되고요. 요즘 뮤지컬엔 대부분 가수들이 나오더군요. 스타가수가 없으면 장사가 안 될 정도라고 하니까… 저도 저번에 어떤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관객들 대부분이 출연 여가수를 보러 온 것이었어요. 그 사이에서 앉아 있는데 참… 씁쓸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대중들이 이 가운데에서도 좋은 작품을 골라낼 거라 믿어요. 관객들은 참 현명하거든요. 연극도 좋은 작품은 관객이 먼저 알아봅니다. 연극인들도 스스로 좋은 작품을 올려야 하죠”

그는 요즘 문화란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너무 많으면 모든 게 쓰레기가 되기 마련이에요. 마구 쏟아져 나오니까 쓸 만한 것들조차도 쓰레기로 분류돼 버려질까 봐요” 물론 이것도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언젠간 걸러질 날도 오겠지만 괜히 염려되는 마음은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연극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우리나라 대학에 연극영화과가 아주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들 스타가 되기를, 무대를 그리고 브라운관을 꿈꾸고 있겠죠. 하지만 전 학생들에게 묻고 싶어요. 왜 연영과에 입학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제 젊었을 적을 보면 전 정말 못생기고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밀려있었어요. 중심에 서 있다고 50년 가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렇게 배우로서 무대에 계속 설 수 있는 건 오로지 노력만이 답이에요. 주변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까지도 흔들리지 않고 길을 향해 가야하죠. 부단히 내 자신을 채찍질해야 합니다. 그러면 힘든 게 훨씬 더 많게 되고, 외로움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저 막연히 스타를 꿈꾸고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없을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요.
“일이란 계획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죠. 제가 뭐가 필요하다면 전 맨발로도 뛸 준비가 돼 있답니다.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어요”

-배우로서 행복하다고 느끼시나요?
“그럼요! 배우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 있잖아요. 저는 가끔 생각해요, 내가 정말 사람이 아닌가 하고…(웃음) 너무나도 자유롭고 좋죠. 만약 어느 틀 속에 갇혀 살았다면 전 아마 굉장히 불행했을 거예요. 제가 이날 이때까지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건 연극을 선택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거죠. 전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까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전 연극배우로서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거든요!”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이사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
(재)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수상

2007 보관문화훈장
2001 MBC 문화방송 '명예의 전당' 헌액
1998 서울시 문화상
1991 서울 연극제 최우수 주연상
1990 백상예술대상 대상
1988 한국연극 예술상
1985 대종상 여우조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