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여행칼럼] 힐링의 땅 나가노(長野)에서 한국의 흔적을 만나다 (4)
[이수경의 여행칼럼] 힐링의 땅 나가노(長野)에서 한국의 흔적을 만나다 (4)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승인 2012.05.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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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원시림과 유황냄새, 온천수 분출하는 협곡사이로 흐르는 눈 녹은 에메랄드빛 아즈사강과 신비의 호수, 백제 불교의 명사찰 젠코지(善光寺), 그리고 마츠시로(松代)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몇 번이나 와도 가슴 아픈 곳. 그 어두컴컴한 바위산 지하호의 여기 저기서 습기찬 냄새와 물방울이 떨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2008년에 왔을 때는 안쪽 지하호로 연결되는 철창에는 평화와 한일 우호관계를 기도하는 각 학교 학생들이 만든 종이학이 벽면 가득히걸려 있었는데 이번엔 없기에 물었더니 습기가 차서 금방 썩는 터라 처리를 했다고 하였다.

조금은 마음이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면 나가노 시에서 자원한 평화가이드 도우미를 많이 배치하고 있었고, 필자가 지난 번에 왔을 때와는 현저히 다르게 지하호  안에 방문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팀들의 가이드 이야기를 들어봐도 한국인 노동자들의 아픔이나 4명의 종군 위안부의 존재 등을 전하려하였고, 당시의 초라했던 상황이 전쟁의 본질임을 다양한 형태로 설명되어지고 있었다.

이 지하호가 75% 정도가 완성 되었을 때 일본이 패전하고 공사를 중지한다. 그 뒤로 잊혀져 가다가 태평양 전쟁의 유적지로서 전쟁의 비참함을 전하고 평화 의식을 되새겨보는 현장의 하나로 보존하여 1989년부터 견학 가능케 하였다.

지금은 당시 현장의 일부 500미터를 공개하고 있고, 근처의 지하호중의 하나인 마이즈루야마(舞鶴山)는 현재 일본 기상청 정밀 지진관측실로 활용되고 있다.

마츠시로 죠잔지하호에서 가이드 가나이씨와 필자

평화 가이드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리얼하고 흥미로웠지만 확인이 필요한 에피소드이기에 언젠가 다른 기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분명한 것은 전쟁이란 극소수, 그야말로 특권 상위 0.1% 만을 위해 모든 이가 희생되는 구조라고 생각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현대전은 과거같은 인해전술이 아니라 최첨단 강력 병기의 시험장이자 전투를 명령한 자가 최전선에 앞장서서 희생이 되는 전투가 아니다. 가장 책임져야 할 사람은 가장 안전한 곳에서 명령을 하고, 그들이 만든 각종 미사여구의 슬로건과 강압적인 전쟁 몰이에 희생이 되는 것은 항상 약한 국민임을 감안한다면 이젠 좀 더 지혜롭고 강한 시민의식 구축과 연대를 통한 전쟁 분쟁 저지를 위해 노력하는 인류사를 자아내어야 할 것이다.

죠잔지하호 주차장에 꽉찬 방문객

그리고 적이 아니면 우군 밖에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사회 체제가 아니라, 세계화라고 다문화를 외칠 사회라면 이젠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의식,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뿌리를 내려야 할 것이다. 필자가 죠잔 지하호에서 가슴이 푸근했던 것은 많은 평화 가이드 도우미들이 한국 조선인 노동자들의 희생과 그들의 아픔을 그 많은 방문객들에게 세세히 설명을 하고 있었고, 산골이라 한적한 그곳의 죠잔 시립 주차장에는 단체 방문객들로 인산인해였기에 주차를 할 곳이 없어서 대절 버스가 길 주변에 기다리는 상황을 보았기 때문이다.

방문객들의 버스로 붐비는 죠잔지하호 주차장

일본에는 터무니 없는 억지로 과거 침략 전쟁을 은폐 풍화시키려는 움직임이나 과거 권력을 쥐었던 정치가들의 후손들이 정치가가 되어 과거를 미화시키려는 강경파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다이쇼 데모크라시 이후로 근대 시민 문화의식을 높여 온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 의식은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나쁜 단면은 어디까지나 일부분이다. 많은 일본인들은 소박하고 왜 평화가 필요한지 자신들이 스스로 궁리하고 싸움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고 자발적으로 노력한다. 그렇기에 우익 보수층이 그렇게 떠들고 젊은 층이 세뇌되어 말려드는 경우가 있어도 그것이 올바른 길이 아님을 주장하는 시민 네트도 강력하게 그들을 저지하는 양심적 행동을 한다. 그렇기에 1억3천만 일본에는 다양한 의식과 다문화 출신의 사람들이 존재하면서 사회가 질서있게 돌아가고, 그 많은 재일 교포들이 차별을 이겨내고 당당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정치가들이 정치를 잘못 하여도 그들은 정치가를 탓하기만 하고 절벽으로 몰아세우기보다 시민 네트로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자신들의 보호막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국가이기에 모순도 없지는 않지만 시민 양심들이 존재하는 것을 잘 알기에 일본 사회는 평화를 쉬이 깨트리는 우행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죠잔 지하호에서 만났던 많은 단체객들이 학생들의 계획된 수학여행이나 답사 여행이 아니라 대부분이 중후한 연령의 단체 여행이나 혹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나들이였고, 평화 가이드가 벽에 새겨진 대구를 설명 할 때 옆에서 열심히 보충 설명을 하는 아빠와 듣는 아이의 모습이 희망적으로 보였다.

비록 짧은 일정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지만 현장을 통해 얻은 감각은 근대사를 연구하는 우리들에게 큰 재산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