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지금은 절대로 없는 종이 아르바이트?
[박정수의 뒷방이야기]지금은 절대로 없는 종이 아르바이트?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대표)
  • 승인 2012.06.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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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액수가 마련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활발한 곳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각 지자체의 문화재단이 있다. 많은 문화예술관련 단체와 개인은 한 푼의 지원금이라도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정작 예술 활동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은 지원금이 있는지 지원을 받으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할 줄 모르는 것을 기본으로 모른다기 보다는 관심이 없다. 해봐야 안 될 것이고, 그럴 바에는 그 시간에 예술 활동하기 바쁘다.

예술 활동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은 기획서 한 장 꾸밀 줄 모른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억에 달하는 지원 기금은 기획서 잘 쓰는 이들에게, 파워포인트 잘 만드는 이들의 손에 가장 가깝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원비를 ‘상업’에 써서는 안되는 암묵적 규정이 있다. 상업적이지 않아야함을 원칙으로 한다. 상업적이라는 말은 상품을 사고파는 행위를 통하여 이익을 말한다. 여기서 이익이란 말이 아주 애매하다.

몇 해 전, 20대 초반의 학생이 문화예술기금을 받았다며 전시장 대관을 문의해 온 적 있다.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작품 활동은 꾸준히 해왔다고 했다. 아직 배우는 학생이기에 대관료 할인과 편의 제공을 부탁해 온다. 전시는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고, 진흥기금에 대한 결과보고까지 무사히 마쳤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전시기획서의 작품제작용 페널이 공사장에 쓰이는 합판으로 바뀌고, 인쇄비는 초과 보고하고, 전시기간 내 전시장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림도 전시디스플레이 하면서 그렸다). 거기다가 전시 종료 후 자신의 작품이 그려진 합판을 버려달란다. 500만원 지원금 받아 100만원 대관료, 20만원 인쇄비, 제작비 등 기타 100만원이면 종이 아르바이트로서는 아주 훌륭하다. 지금은 이러한 일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절대로...

문화예술 지원기금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지원기금은 자체가 상업행위라 볼 수 있다. 예술가는 기획서를 팔고 정부기관에서는 이를 매입한다. 예술가는 판매한 기획서를 바탕으로 전시나 기타 예술 활동을 통해 이익금을 남긴다.

이러면서 상업이 아니란다. 현재와 같은 불합리성이 형성되는 것은 기획서로 공연하고 기획서로 전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종이 기획서로 정부기금을 수령한다. 이걸로 끝이다. 전시에 사용된 비용은 누구도 확인하지 않는 세금계산서 뿐이다.

그러면서 무조건 쓰기만 하여야 한다. 벌면 안 된다. 이와 같은 지원 기금의 불합리성에 대해 선결해야 할 부분은 사용된 실재 비용의 일부를 예술활동 결과에 따라 보전(補塡)해 주는 방식이 채택되어 봄직도 하다.
선지원 확정이 아니라 후보자를 선정한 후, 공연(전시) 결과에 따른 차등 지원됨을 말한다. 기획서와 같은 내용의 공연(전시)이 이루어 졌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예술활동 자체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결과심의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어떤 화가가 전시를 창작지원금을 수령한다는 것은 전시를 통해 작품을 매매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미래형 마케팅이다. 예술 활동 지원이라고 하는 것 또한 예술가 가 자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일이다.

여기에 덧붙여 아트페어와 같은 치열한 상업공간에 정부기금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또한 모색되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누군가의 상업활동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보일지는 모르지만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작품 거래를 통한 생존이 기본이다. 국가에서 예술가의 생존을 책임질 수 없는 이상 자본주의의 상거래를 용인하여줌이 마땅하다. 예술가에게 현금이 가지 않는 이상 종이아르바이트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