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의 문화비평]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I
[천호선의 문화비평]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I
  • (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원장
  • 승인 2012.06.1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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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과의 만남은 내가 뉴욕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문화예술 행정가의 역할에서 세계 최첨단의 전위예술을 접하고 이에 심취하게 되는 일생 최대의 전환점이 되었다.

1979년 4월 주 뉴욕문화원이 오픈되고 초대 문정관으로 근무하면서 나는 현지의 문화예술인들과 공적, 사적으로 폭넓게 사귀고 있었으나, 백남준을 만나게 된 것은 2년 반이 지나서였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개최된 <한국미술5천년전>을 비롯해서 문화원이 주관한 각종 행사에 초대장을 보내고 가끔 전화도 해보았으나 접촉이 되지 않았고, 당시 알고 지냈던 뉴욕 내 한국인 예술가들 누구도 백남준과 연결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중 1970년대 이후 세계 현대무용을 대표하고 있던 머스커닝햄무용단의 후원회장으로서 한국의 문화예술을 좋아해 문화원의 행사에 자주 참여하고 우리 부부와 자주 어울렸던 바바라 툴(Barbara Toole)여사가 백남준의 공연을 같이 가보자고 제안해 왔고, 그것이 백선생과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10월 12일 저녁 뉴욕 전위예술의 산실이었던 ‘키친 센터’에서는 창립 10주년 기념 컨서트로 백남준의 퍼포먼스 작품 <Life's Ambition Realized>을 공연하였다. 백남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무용가 데니스 고든(Denise Gordon)의 스트립댄스가 진행 되었는데, 그는 피아노를 치다 말고 갑자기 일어나 유성기를 틀더니 곧 레코드판을 꺼내 깨트려 버리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바이올린을 내려치는 공연을 선보였다.

해프닝이 끝나자 그는 “잠시후 공연 장면을 녹화한 비디오 상영이 있겠지만 일단 공연은 끝났으니 갈 사람은 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남아 있었고, 30분쯤 지나 녹화 비디오테이프가 상영되었다. 옷을 차례차례 벗는 스트립 공연이 비디오에서는 옷을 하나씩 입으면서 춤을 추는 장면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내 일생 처음으로 해프닝 예술의 진수와 함께 비디오 예술을 접한 순간이었고, 무엇보다 시간의 문제를 성찰케하는 잊을수 없는 사건이었다.

당시 뉴욕 헌터 컬리지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아내 김홍희는 레코드판 조각, 바이올린 파편들을 주워 들고 나왔고 나중에 스튜디오에 가서 싸인을 받았다.

백남준은 “사인은 공짜”라고 하면서 한 조각 한 조각을 유화로 정성들여 사인해 주고는 보석상자에 넣어두라고 말했다 한다. 우리 부부가 백선생과 맺은 25년간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백선생의 여러 가지 한국 프로젝트들을 성심성의껏 도와드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일생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중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바바라 툴의 소개로 그렇게 가까이 가기 어려웠던 백남준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다음해 백남준의 휘트니미술관 회고전 때에는 한국인 초청자 리스트를 우리 부부에게 의뢰해서 만들기도 하였다. 고 김환기씨 부인 김향안 여사, 화가 문미애와 조각가 한용진 부부, 프랫 인스티튜트 조각과 과장 존 배 부부, 파리에서 온 미디어 아티스트 김순기, 프랫에서 디자인 석사과정을 하고 있던 김명옥 등이 초청되었다. 백선생 자신은 오프닝에 어느정도 한국인들을 초청해야 체면이 설 입장이었으나, 마땅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없었던 모양이다. [다음에 계속]

*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는 필자가 기존의 여러 매체에 기고한 내용을 좀 더 보강해서 새롭게 게재함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