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진정한 여행가는 얼음부터 깬다
[여행칼럼]진정한 여행가는 얼음부터 깬다
  •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겸임
  • 승인 2012.06.19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겸임교수

난 유럽을 참 많이도 갔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정말 한 때는 밥 먹듯이 다녔다. 비즈니스 관계가 전혀 없는 동구의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유럽 도시를 다녔다. 배낭여행,어학연수, 출장 등 갈 때마다의 목적은 달랐지만 유럽은 늘 반가운 얼굴로 날 반겨주었다.

유럽 출장의 묘미는 기차로 이동할 때다. 우리나라는 반도국가인데다 분단국이라서 기차로 다른 나라의 국경선을 넘는 다는 것이 잘 실감나지 않지만 국경선을 경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유럽 국가들을 다닐 때면 순식간에 삼개국의 국경을 넘을 때도 있다.

네덜란드를 거쳐 벨기에를 찍고 룩셈부르크를 지나 독일로 오늘 일정이라면 무려 4개국의 국경을 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권을 검사하는 사람들도 없고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유럽의 장거리 기차는 객실을 가지고 있는데 한 방에 여섯 명이 들어갈 수 있고 세 명씩 마주 보는 좌석 형태를 취한다. 그런데 소심한 에이형인 내가 객실 문을 당당하게 열고 들어가기란 늘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파란 눈의 현지인들이 가득 찬 객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날 긴장시켰기 때문이었다.

 

▲유럽 철도 여행의 시작 중앙역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지만 누구 옆에 앉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빈자리에 앉는 것이 보통이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밖에 없는 어색한 상황. 공허한 마음으로 아무 말도 없이 계속되는 이 상황은 고통이 된다.

마주 보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고 해도 이미 때를 놓친 상태이고 어색함이 엄습한 상황이어서 여의치가 않다. 앞에 앉은 파란 눈의 신사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상황은 점점 차가워져 간다.

여기서 잠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 Hi, can I sit here ?” “Of course, You can.”
“ Thank you, my name is Brian”
“ I am from Korea, I am going to Hannover.”
“ Oh, Me, too. My name is Heinz.”

대화는 계속 부드럽게 이어져 가고 기차에서 내릴 즈음이면 주소와 이메일을 교환하고 서로 자신의 나라에 놀러 오라는 덕담까지 교환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글로벌 네트워킹이 형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기분 좋은 대화의 말은 토익 시험에 나오는 어려운 단어도 아니고 영어 면접시험에 나오는 긴 문장도 아니다. 그저 Hi 라고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얼음과 같이 차가운 상황을 깰 수 있는 작은 인사말은 보배 같은 존재가 된다. 이 작은 한 마디가 장거리 기차 여행을 아주 알 찬 대화의 시간으로 만들어 준다. 토익 고득점자라고 해서, 또는 해외에서 MBA과정을 마친 사람이라고 해서 얼음과 같이 차가운 상황을 녹여주는 Hi 라는 말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스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진정한 여행가만이 할 수 있다.

 

▲Heinz Brunner의 가족

 

여행을 추억이 넘치는 훌륭한 것으로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을 열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정다운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하자. Hi 라고 외치는 순간, 당신의 여행은 풍요로운 만남의 장이 될 것이다. 위의 대화 내용은 14년 전 나의 실제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정답게 자신을 소개를 했던 Mr. Heinz Brunner는 유명한 독일 회사의 CEO였고 지금은 남부 독일의 아름다운 전원도시 Aachern에 살고 있다. 4년 전 유럽 출장을 다시 갔을 때, 나는 Heinz의 궁전과 같은 집에 초대 받았다. 내가 만약 그 때, “ Hi~~” 라고 외치지 않고 얼음과 같이 차가운 상황을 깨지 않았다면 글쎄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