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일본속보]日종합병원벽면을 가득 채운 꼬마들의 한민족 보자기문화와 장승작품들
[이수경의 일본속보]日종합병원벽면을 가득 채운 꼬마들의 한민족 보자기문화와 장승작품들
  • 이수경 교수(도쿄가쿠겡대학)
  • 승인 2012.06.2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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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문화 자긍심 가득 채운 그림으로 뿌리와 정체성 일깨워

얼마 전부터 시작된 장마 탓에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평소의 과로후유증도 겹치기에 근처의 종합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 일에 쫓기다 보면 병원갈 시간은 거의 없다.  필자뿐이 아니라 그동안 봐왔던 쓰러진 내동료들 대부분이 모두 일에 대한 책임감에 쫓기다가 증세가 나타나서야 병원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급히 예약을하여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고, 수속을 밟고나서 진찰실로 가는 복도를 향할 때였다. 벽면에 익숙한 한글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니시 도쿄조선초중급학교 어린이의 보자기 그림.한글로된 이름이 선명하다.

이미 4반세기를 살아온 일본생활이지만 생각지도 못 했던 곳에서 한글이나 한국문화와 관련된 것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비록 한류문화가 일본사회의 당연한 문화현상이 되어 있더래도 필자에겐 지금도 예상치못한 곳에서 한글이나 한국관련 문화를 보다보면 발이 저절로 멈춰진다. 필자가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김치도,한국말도 볼 수 없었고, 국제전화도 전화회사 교환아가씨를 거쳐서하던 시대였기에 한국문화에 대해 더집착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각종 한지와 색종이 등을 찢어서 붙인 그림이었다. 한글이 박혀진 한지 위에 형형색색의 종이를 이어서 알록달록하고 화사하게 디자인한 보자기 문양이 산뜻하게 보였다. 과거엔 단순히 물건을 싸던 보자기를 우리의 대중문화, 특산품화로 거듭나도록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을 쏟은 결과, 최근엔 고급선물 등의 랩핑용만이 아니라 장식용으로도 높이 평가를 받고 있고, 일본에서도 일본의 보자기인 후로시키와는 다른 색상과 분위기라서 한류문화상품으로도 인기를 모으고있다.

▲병원 복도에 전시된 이니시 도쿄조선초중급학교 어린이의 장승과 벚나무 그림

그런 보자기 문양앞에 니시도쿄(西東京) 조선제1 초중급학교 초급부(초등학교부) 6학년들 작품이라고 적혀있다. 아하, 그러고보니 이 근처 다치가와에 조선학교가 있다고 하더니 여기 근처였구나. 그런 생각과 더불어 새삼 아이들의 작품들을 돌아보았다. 초급부 5학년들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인 장승을 한지를 찢어서만든 [찌기리에(ちぎり絵)]로 각양각색의 개성적인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을 사진으로 찍고있는 필자에게 일본인 간호사아가씨가 그게 뭔지 가르쳐 달라고 묻는다.

토템폴같다고 하면 간단히 이해하겠지만,왠지 기분이 좋아서 그녀가 검진준비를 하는 동안에 장황하게 설명을 하였다. 예로부터 한반도에 선각마을마다 그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남녀 한쌍의 장승을 세워두었고, 천하대장군을 남자로, 지하여장군을 여자로한 것은 유교적 남녀역할을 의미한다고도할 수 있는데,  마을의 평안과 액병 등의 예방과 개개인의 기도를 들어주는 민간신앙적인 역할도 가지고 있고, 그외의 서낭당이나 솟대와 같은 마을의 상징적 의미도 들어있는 토속적인 수호신으로 사랑을 받아온 것이라고 하자 그녀는 이제서야 잘알겠다며 환히웃는다.

▲이니시 도쿄조선초중급학교 어린이의 장승과 벚나무 그림

그래서 필자가 이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냐고 물으니 아침 출근길에 꼬마들이 조선말로 [안녕!!][어머니가…]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재잘거리는 등교 모습을 자주 본다고 했다.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어머니가…]라는 발음이 자연스럽고 정겹게들린다. [이렇게다른문화를아는것도즐겁지요? ] 했더니,애들 작품이 꾸밈이 없고 귀여워서 일하다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며 이야기 해준다. 다른 벽면에는 초등학교 2학년들이그린 [櫻]이라는 제목의 벚꽃작품들이 앙증맞고 귀여워서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각자의 눈에 보이는 크기가 다른, 그러나 화사한 봄색깔의 벚꽃나무에 꼬마들이 즐겨노는 모습은 매년 봄마다 볼 수 있는 평화로운풍경의 하나이다.

종합병원 하면 건강관련의 포스터나 하얀벽면으로 [병원!!]이란 분위기를 연상하기 쉬운데, 이렇게알록달록하고 귀여운 그림들이나 원색의 보자기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아침부터 푹 꺼져있던 컨디션에 활력이 나는 것 같았다.

▲이니시 도쿄조선초중급학교 어린이의 장승과 벚나무 그림

이니시 도쿄조선초중급학교는 1946년에 아이들에게 민족의식 교육을 가르치려고 다치카와(立川)에 세운 학교이다. 1948년에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한 뒤, 현재에 이른다. 필자가 사는 다마(多摩)지역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온 당시의 동포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생활을 이룬 곳이라서 재일교포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이학교에서 수 많은 동포아이들이 민족의식을 잊지 않고 교육을 받은 곳이다.

민단측의 한국학교는 아니지만 필자는 솔직히 이런 꼬마들의 앙증맞은 작품들을 보자니 흐뭇했다.  자신들의 뿌리를 생각하며 정체성을 잃지않고 커가는 아이들에겐 자신들의 존재와, 자기가 성장해온 일본이란 사회 속의 구성원으로서 맡아야할 역할의 의미를 갖고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반면에 한국의 경쟁사회의식에서 살기 힘들다고 해외로 나가는 숱한 유학생들 중에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민족, 사회에 대한 생각보다는 개개인의 영달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향의 젊은이들도 적지않다.

아니, 요즘은 특히 역사문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무관심에 대해 많이 고심한다. 외국땅에 와 있는 많은 유학생들에겐 생활비가 세계적으로 비싼 일본이 생활하기 힘든 곳임은 이해를 하지만, 주된 목적인 공부보다도아르바이트가 목적이 되어버리고, 일본의 내면을 아는 것보다 주요 도시의 일부 화려함만 보다가 요령으로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물으면 대답을주저하는건 기존의 [한국의교육]이 근본적으로 [한국을아는교육]이 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해도 과언은아니리라.

▲병원 복도 좌우에 전시된 조선학교 어린이들 작품들

감정적인 반일을 주장만하는 미숙함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역사가 뒤틀리고 잘못되었는지, 또한 어떻게 풀어나가야할 지 미래지향적인 해법모색의 지혜를 키워서 상호신뢰를 위한 다가서기 교육이 필요하건만, 그런부분에서의 교육적 효율은 아쉬울 정도로 보기 힘든 현실이다.

정치계나 교육계는 한국사회에 국제화, 세계화교육을 위한 다양한 방책을 모색해 왔으리라. 하지만 우리의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갔을 때나 혹은 국내에서 외국인을 맞았을 때 과연 얼마만큼 우리 것을 설명하고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필자의 수업에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출신이나우즈벡출신학생 등이 있는데 그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더니 국가나 문화는 물론 자기고향소개와 문화교류 등, 대단한 소개로 다른학생들에게 자극을 줬던걸 기억한다. 프랑스나 독일, 중국제자들의 자기역사 사랑은 실로  90분수업 절반에 해당하였다.

그런 그들에 반해 한국의 유학생들은 원래 그렇게 얌전한 성격들인지 대부분이 조용히 자기이름과 출신지역의 특징 한 두개만 이야기하고 끝낸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일본인 학생들조차도 고향의 특산물은 물론,오뚜기를 만드시는 할아버지의 자부심 강한 장인정신까지 소개를 하는 적극성을 보였으니 필자의 불만을 독자들은 이해하리라.

이념사상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키는 정치적 움직임이 불거지고 있으나 필자는 일본의 병원복도에전시되어 있는 어린아이들의, 한글을 소중히 여기며 한민족의 문화를 작품화해 놓은 그림들을 보며, 한국사회는 지나친 경쟁의식으로 자국민을 여유없이 몰아 부쳐온 기존의 사회환경을 개선하여, 사회전체에대한애착과 책임을 짊어질 수 있도록 하고, 숱한 사람들이 목숨걸고 지키려했던 한국사회를 사랑할 수 있도록[매력적인삶터조성정책]에 힘을 쏟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했다.

수험경쟁만 부추키며 키워온 엘리트들이 환경좋은 외국에서 살다가 귀화를 하고 한국을 버린다면 그것 또한 한국사회의 인적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일제말기때 죽어간 유학생 송몽규나 윤동주가 그렇게도 조국독립과 미래를 꿈꾸어온 사회의 후손들이 이토록 자신들의  뿌리와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 하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참고로 지금 한국학회지 용 송몽규 윤동주 논문을 동시 집필중이다)

▲필자 이수경 교수
분단된 남북한의 대치적인 특수상황은 일본에도 그대로 존재하지만, 일본에서 만난 한국학생들이나 조선학교 출신 학생들을 보다보면 한민족에 대한 긍지나 민족문화 혹은 역사에 대한의식은 조선학교출신의 아이들이 훨씬 강한 편이다. 그런 자부심이 결국 자신과 다문화권과의 가교역할을 할 때 자기를 잃지않고 상대를 이해하는 제대로된 문화교류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작품들을 보는 내내 뇌리를 스쳤다.

검진을 마치니 소모품의 몸이기에 과로한 만큼 부작용도 나왔지만, 돌아오는 길은 어른들이 흉내낼 수없 는아이들 작품의 순수성과 한글로 만든 작품을 일본의 병원에서 만났던 흐뭇함으로 심신이 가볍게 느껴지는귀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