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무용가'정희림,"꿈이 있으면 그만큼 더 건강해지겠죠"
'실버무용가'정희림,"꿈이 있으면 그만큼 더 건강해지겠죠"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2.06.2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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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별 예술단'으로 '무용 재능기부'에 힘쓰는 '실버' 무용가 정희림씨

지난 5월 26일 충북 음성 '꽃동네'. 이 곳에서 제13차 음성품바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노숙인에게 사랑과 희망을'이란 이름으로 공연을 한 '우리별예술단'을 이끌던 사람은 바로 올해 72세를 맞은 정희림씨. 그는 이 무대에서 무려 50여년 만에 승무를 직접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예술을 향한 그의 열정이 다시 한 번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정희림씨가 음성 꽃동네에서 승무를 선보이고 있다.


"노숙인들을 위한 축제니까 무대에 설 결심을 했죠. 제게 감명을 주고 귀감이 되셨던 분들처럼 저도 어떤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이 솟구쳤습니다. 거의 50년만에 승무를 독무로 했습니다. 감회가 새로웠어요."

20년 이민 생활 청산하고 다시 한국 무용으로

한국전쟁 직후 정희림씨는 당시 한국무용을 이끌던 김백봉, 강선영, 한영숙 등에게 한국무용을 사사받는다. 이후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무용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젊은 시절 배웠던 무용의 열정을 버리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정희림씨는 20년의 이민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다.
가평에서 생활하던 그는 일주일 중 4일은 비둘기호를 타고 서울로 와 전통무용과 우리춤 체조를 배웠다. 결국 2002년 9월 우리춤 체조 강사 자격을 얻으면서 그의 무용인생이 다시 시작된다.

 

▲정희림씨가 지도한 가평 북중학교 학생 9명이 경기도 학생예능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무용. 하지만 그는 거침이 없었다. 가평읍사무소에서 무료 고전무용교실을 열었을 때는 '춤이 재미있다'며 학생들과 어르신들이 계속 강의를 신청했다. 그 덕에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특기적성강사로 무용을 가르쳤고 마침내 2004년에는 자신이 지도한 북중학교 학생 9명이 경기도 학생예능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먹고 살 길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에서 식당을 시작하지만 얼마 못가 문을 닫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어려운 생활에 좌절하던 그는 음성 꽃동네 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삶의 의욕을 다시 찾게 된다. 지금도 그는 매주 두 차레 꽃동네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한류실버스타? 결코 불가능한 꿈 아니야!

2005년 '우리별 예술단'을 창단한 그는 무용 공연은 물론 무용을 통한 재능기부도 빼놓지 않았다. 춘천시립양로원, 춘천 교구청 주교좌 성당 바자회, 음성 꽃동네 축제 등에서 우리별 예술단은 공연을 펼쳤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에게 무용은 한 사람, 한 단체만의 예술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함께 즐기는, 자신의 훌륭한 재능을 남에게 보여주고 가르치는 즐거움의 수단, 기부의 수단이었다.

"제게 예술은 삶의 운명이면서 삶의 구원입니다. 예술을 하려고 한국에 다시 왔고 예술을 하면서 제 삶을 다시 돌이키게 되고 새로운 삶을 찾았잖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춤이니까 춤으로 제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줘야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별 예술단은 그래서 전국을 돌면서 봉사를 하고 있지요."

그의 꿈은 '한류실버스타'다. 70이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건강이 허락하기에 전통 무용을 세계에 전파하는 '한류스타'가 되어 많은 한국의 실버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꽃동네에 갔을 때 연세가 90이 넘은 모 대기업 명예회장님을 뵈었는데 그 분은 그 연세에도 몇 년동안 매일매일 영어회화 공부를 세시간씩 하신데요. 우리나라 국위선양을 위해 직접 미국에 가셔서 영어로 스피치를 하겠다는 게 그분 꿈이셨어요. 순간 충격을 받았어요. 저분도 저렇게 꿈을 가지고 사는데... 그때 삶의 의욕을 다시 찾았죠. 지금은 어느 때보다 의욕이 많기 때문에 충분히 제 꿈을 이룰 수 있을거라 믿어요. 꿈이 있으면 그만큼 더 건강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