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여행칼럼] 필리핀 마닐라의 톤도울링 지역 아이들의 웃음 (1)
[이수경의 여행칼럼] 필리핀 마닐라의 톤도울링 지역 아이들의 웃음 (1)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승인 2012.07.0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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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 해결한 여유층이라면 약소층에게 베풀고 나눠주는 보람을 가져보자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필자가 대학원 때 노르웨이 출신의 요한갈퉁(Johan Galtung; 구조적폭력Structural Violence 분석의 평화학자) 교수의 평화학 수업에서 퍽 인상적이었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버리힐즈의 백만장자(밀리오네) 400명의 재산만으로도 지구촌 전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뒤, 경제학 집중 강의와 세계 경제론을 들으며 그 말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2010년 6월에 강연차 L.A.에 갔을 때 민병용 전 한국일보 L.A.지사장님의 안내로 비버리힐즈 일대와 헐리우드를 둘러보면서 갈퉁 교수가 역설하던 그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세계적 갑부들이 몰려있는 비버리힐즈와 로데오거리를 보면서 그들의 명성대로 비축된 재산들을 활용한다면 지구촌의 엄청난 사람들의 기술 교육시설과 고용 창출 기관을 만들 수 있고, 가난한 약소층에 경제활동과 복지혜택의 기회를 주는 등 부의 축적을 사회에 보람 있게 환원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기억을 절실하게 더듬은 것은 지난 6월말에 필자가 방문했던 필리핀의 마닐라 톤도울링 안 지역에 섰을 때였다.

지인의 배려로 한민족 국제 포럼 마닐라대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기에 평소 국제 인권수업이나 다문화 교육수업에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소개를 해왔던 아시아 최대 빈민촌이자 세계적인 낙후 지역의 하나로 알려진 속칭 Smokey Mountain(마닐라 각지의 쓰레기가 버려지는 곳)도 확인하고 와야 겠다는 결심으로 주최 측에 문의를 했다.

상공에서 본 마닐라

원래 중국인 이민권력자에 의해 붙여진 톤도(Tondo, 東都)는 지배 측인 스페인에 저항하는 [1896년 혁명]지역의 중심이 되었고, 미국에 지배 당할 때 마닐라 시의 일부로 편입한 곳으로, 마닐라 서북쪽 파시그 강과 마닐라 만이 만나는 톤도 지역은 약 65,000명/㎢ 라는 세계에서도 인구밀도가 높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톤도지역

평소에 총 같은 무기를 소지하는 무법지대라서 위험하니 한국이나 일본 같은 감각으로 가면 안 된다고 주변의 지인들이 반대를 했으나 한일 웹사이트 등에 정보가 나와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열악한 곳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혹은 교육이나 주거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여야만 내 학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포럼 주최 측의 강은정 씨와 필리핀 Santo Tomas 대학의 박정현 교수, 현지 여행사 장은영 대표의 배려를 받아서 렌트카로 현지를 잘 아는 가이드와 함께 가게 되었다.

마닐라로 떠나기 전, 병원검진에서 과로로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았기에 동남아여행에 필요한 다양한 약들도 단단히 준비해갔다. 별 의미는 없었지만.

상공에서 본 마닐라

게다가 포럼회장이자 숙소인 에드사샹글리라 호텔은 필자가 아시아의 몇 나라에서 경험해 본 체인 호텔이었기에 안심하고 나리타에서 새벽 비행기를 탔다. 그동안 다른 외국 출장을 위해 경유한 적은 있으나 마닐라 시내서 묵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섯 시간 정도로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하여 간단한 입국절차를 마친 뒤, 약간의 환전을 하고선 옐로 캡을 찾았다. 택시 정류장엔 현지 관리인이 안전 확인 때문인지 필자의 이름과 행선지를 묻기에 말했더니 내용을 적은 종이 한쪽을 건네 줬다. 그것을 드라이버에게 건네주자 친절하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준다.

왠지 삼엄한 호텔 로비

비행기 속의 지나친 에어컨 탓에 추웠던 몸이 마닐라의 무더위 속에서 차츰 풀리는 것 같았으나 공기는 정말 탁하고 머리가 아팠다. 운전기사는 필자에게 도로 사정과 마닐라의 상업지구인 Mandaluyong과 Edsa Shangri-La 주변의 대형 쇼핑몰 등에 대해 열심히 소개해 줬다. 호텔에 내리니 검은 제복에 총을 멘 경비원들이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벨보이가 나오더니 짐을 들고선 로비까지 에스코트 해 준다. 왠지 얼마 전에 필자가 혁명 전의 이집트 카이로에서 경험했던 기억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호텔 안은 너무 과한 에어컨 가동을 빼면 차분한 리조트 호텔 분위기였다.

방에서 잠시 쉰 뒤, 호텔 건너편의 샹글리라 쇼핑몰에 갔더니 어느 나라서나 봐 왔던 브랜드 옷가게들이나 휴대전화 판매점과 각종 음식점이 즐비한 탓에 현란스럽다. 푸드 코트를 지나서 대형 슈퍼마켓으로 들어가니 망고나 두리언 등의 과일이 풍부하다. 몇 종류의 과일과 간단한 음식으로 남국 마닐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다음 날 아침까지 지친 몸을 푹 쉰 다음, 준비해 온 톤도 지역 정보를 다시 확인한 뒤, 가이드와 약속한 로비로 내려갔다. 당연히 위험한 장소를 안내 받는 것이니 상당히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가이드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깨고 연약하게 보이는 자그마한 체형의 젊은 여성이 인사를 한다. 순간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도 스쳤지만, 나이가 든 만큼의 믿음이랄까? 분명 그녀가 온 것은 이유가 있을 터. 어딜 가나 가이드만큼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왔던 필자의 여행 운을 믿기로 했다.

주말이라서 부유층의 결혼식이 치러지는 지 호텔 로비엔 번쩍거리는 치장을 한 드레스 모습의 화려한 여성들이 꽃다발 등을 들고 부산히 오간다. 그 속을 빠져나와서 우리는 일단 톤도 지역의 스모키 마운틴으로 향했다.

지푸니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가니 가이드 Evelyn이 자기소개를 한다. 얼마 전 한국의 경인 방송 OBS가 기획한 [아시아의 소원]이란 프로그램을 찍으러 왔을 때 현지 가이드를 했던 적이 있다고 하니 든든하게 들렸다. 한국어는 못하지만 상세하고 친절하게 오늘은 St. John the Baptist의 축제가 있어서 각지에서 물세례를 할테니 젖을 수도 있다고 설명을 해 준다. 그러고 보니 6월 24일 일요일, 로마 카톨릭 신자가 많은 필리핀이니 종교적 의식이 있나보다 생각하며 도로를 달리자니 트럭 같은 차에 각양각색으로 도색을 한 창문이 열려있는Jeepney가 많이 달린다. 버스비가 7-8페소라는 서민용 교통수단인데 미군들이 사용하다 남기고 간 지프를 개량하여 만든 마닐라의 상징이라며 웃는다. 물론 최신형의 에어컨이 있는 버스도 달리지만 비교적 눈에 들어오는 특이한 버스였고,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었기에 인상 깊었다.

도로 옆으로 스페인 식민지 때의 흔적인 다양한 건물 성당 등이 보였고, 식민지에 저항하다 처형당한 필리핀의 영웅 호세 리잘(JOSE RIZAL)을 기린 리잘 공원을 옆으로 보면서 마닐라 중심가를 벗어나니 아름다운 마닐라 만과 요트장의 해변 가가 보인다.

폐쇄가 된 스모키 마운틴

그곳만 본다면 고급스런 리조트 지역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달려서 아치형의 다리를 건너서 부둣가가 보이는 국도10호선을 조금 달리자니 길가에 쓰레기더미를 분리수거 중인 사람들과 척박하게 보이는 판자촌이 눈에 들어온다.

톤도 울링안 지역

집 뒤에 쌓여진 쓰레기들과 그 아래의 자그마한 함석 집을 보면서 길을 조금 더 달리니 한적한 길 오른쪽에 지금은 폐쇄된 스모키 마운틴이 나온다. 원래 어촌으로 어획량이 풍부한 마닐라의 풍요로운 장소였으나 1954년부터 마닐라 각지에서 모인 쓰레기의 최종 소각장이 되면서 이곳에 버려진 쓰레기가 더운 날씨로 인해 고열 발화로 항상 연기가 났던 곳이라서 [스모키 마운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