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맞는 역할이면 어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얻어맞는 역할이면 어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2.07.13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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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자의 사람>에 출연한 신인배우 정단우의 꿈 이야기

12일 극장가에 상영된 영화 중에는 일제 시대 일본인 임업기술자로 조선인 동료를 통해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를 배우며 '조선을 사랑한 최초의 한류맨'이 된 '아사카와 타쿠미'의 이야기를 다룬 <백자의 사람 : 조선의 흙이 되다>(이하 <백자의 사람>, 반메이 다카하시 감독)가 있다.

아사카와 역을 맡은 요시자와 히사시와 그의 동료 청림 역을 맡은 배수빈과 함께 영화를 이끈 신인 배우가 있다. 극중 청림의 동료이면서 독립운동에 앞장서는 '천수' 역을 맡은 배우 정단우가 그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와 매릴랜드 주립대에서 연기를 전공한 정단우는 1997년 국립극장에서 세계연극제 오프닝 공연으로 공연된 <오우제>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선 후 2005년 미국 브로드웨이 오프 뮤지컬 <Awesome 80s Porm>에서 코믹한 캐릭터로 관객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 영화 <백자의 사람>에서 '천수' 역으로 나온 배우 정단우(사진제공-제이엑터스)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약 20편의 연극과 뮤지컬을 하며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배우의 길을 차근차근 걷고 있는 정단우는 <백자의 사람>이 관객들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캐스팅 연락에 너무 기뻐 소리질러..."

"회사를 통해 시나리오를 받고 '천수' 역할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불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아서 '그래, 오디션 한두번 떨어져봤냐'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는데 다시 연락이 온 거예요. 한국에 오신 반메이 다카하시 감독님이 제 오디션 영상을 보시고 절 천수 역으로 캐스팅하길 원하신다고요. 너무 기뻐 소리지르고 대표님하고 하이파이브했어요(웃음)."

독립을 염원하는 일제시대 열혈 청년의 대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천수 역을 따낸 정단우. 일본의 대표적인 감독과 배우와 함께하는 현장은 설렘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거장이라고 하셔서 어떤 분이신지 정말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옆집 할아버지시더라고요(웃음). 아주 편안하고 좋은 분이셨습니다. 조감독에게 보통 촬영 중 테이크를 몇 번을 가냐고 물어봤는데 한두번 정도로 오케이한다고 해요.

그래서 '그래도 4~5번은 가겠지'하고 각오하고 나갔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많은 부분이 한 번에 오케이됐고 길게 가야 2~3번 정도였어요. 감독님 머릿속에 영상의 흐름과 연출에 대한 확신이 살아있다고 느꼈고 저도 촬영할 때 매 테이크를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게 됐습니다."

배우 요시자와 히사시와의 에피소드도 빼놓을 수 없다. "요시자와와는 직접 연기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처음 봤을 때 마이클 잭슨 닮았다고 했어요(웃음).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큼직하고 엉덩이가 볼륨감이 있었거든요(웃음). 저랑 동갑이고 저를 편하게 대해주고, 그리고 요시자와가 영어를 좀 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촬영 3주 전쯤에 참여를 확정지었다고 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한국어 대사들을 훌륭히 소화하는 걸 보고 놀라운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시자와는 한국 촬영 기간 동안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주변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했습니다. 극중 주인공 아사카와와 같았습니다. 아마 <백자의 사람>을 보시면 영화 속에 요시자와의 인간적인 매력이 녹아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나라를 잃은 남자의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 정단우는 천수를 통해 '나라를 잃은 남자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사진제공-제이엑터스)



그렇다면 자신이 맡은 '천수'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특별한 어려움보다도... 상업영화 경력이 많지 않던 저로서는 천수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보여드릴까라는 자문을 많이 했고, 현장에서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했습니다.

천수는 당시 대한민국 보통 남성상이고 나라를 박탈당했을 때 남자들이 느끼는 나라를 사랑하는 의지를 좀 더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배우로서는 그런 자문과 준비의 시간들이 어려움이 아닌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막상 보니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천수의 감정선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말하자 그는 "자신이 출연한 장면 다(웃음)"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생했던 장면을 이야기했다.

"독립운동 중 총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많이 연습했습니다. 단순히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총과 그 총의 반동력, 특정 부위에 맞았을 때의 얼굴과 신체의 반응, 그 외 것들을 그 때 상황에 맞추려고 했죠. 그래서 그런지 촬영 전에는 죽음이란 단어가 내내 머릿속에 있었고, 촬영 후에도 죽음의 여운이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제일 많은 시간 노력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코믹한 역할 좋지만 지금은 어떤 역도 감사히..."

초등학교 시절 꿈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배우'라고 답했다는 정단우. '오랜 기간 한 곳만 바라보며 걸어왔다'는 그는 "소중한 돈을 내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부족하나마 연기를 보여줄 준비는 된 것같다"라고 자신을 평한다.

"감정에 곡선이 많은 연기를 꾸준히 하면 정신적으로 많이 우울해지는 일도 있어서 아주 가끔씩이라도 코믹한 영화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대본 주시면 '감사합니다'하고 덥석 물어야 하는 타이밍이라 어떤 역을 주셔도 감사히 잘 받을 것 같습니다(웃음)".

▲ <백자의 사람> 시사외에 참석한 정단우. 첫 공식석상에 적응하지 못해 어쩡쩡한 차렷자세로만 사진을 찍었다고 아쉬워했다.(사진제공-제이엑터스)


사실 그가 아직 보여주지 못한 연기는 무궁무진하다. 곧 개봉을 앞둔 독립장편영화 <어 맨스 월드>에서는 동성애자를,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될 <좋은 꿈 꾸세요>에서는 사이코패스인 천재 화가를 연기한다. 영어와 한국어를 완전히 이해하는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 캐릭터도, 귀여운 변태도, 액션연기도 하고 싶다는 그다. "액션영화 불러주시면 당장 뛰어갑니다, 맞는 역할도 자신있어요!(웃음)"

그가 진지한 모습을 보이면 어떠랴, 우울한 모습을 보이면 어떠랴, 웃기고 망가지고 결국은 '망측한' 모습을 보이면 또 어떠랴, '얻어터져서' 코피 쏟으며 등장하면 또 어떠랴. 우리는 이 모든 모습들을 겁내지 않고 자신의 몫으로 소화해내는 또 한 명의 당찬 신인 배우를 만나고 그로 인해 즐거움을 얻게 된다.

"더 좋은 기회로 관객들을 찾아 뵙고, 기존의 관객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캐릭터, 그리고 사람들이 쉽게 가볼 수 없는 감정의 세상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사랑을 주고 싶고, 영화를 통해 세상을 좀 더 깨끗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 목표를 가지고 있는 한 정단우는 계속 준비하고 계속 노력하는 배우로 관객들에게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