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의 문화비평]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II
[천호선의 문화비평]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II
  • 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 원장
  • 승인 2012.07.1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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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 원장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1982년 4월30일부터 6월27일까지 백선생의 나이 50세에 이루어진 <NAM JUNE PAIK>제목의 회고전은 해프닝에서 비디오작품으로 이어지는 백남준의 전 작업을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회였다.

<V-yramid>, <TV garden>  등 비디오 설치작품 외에도 백선생의 주요 비디오 테이프 작품들이 상영되고, 샬롯 무어맨(Charlotte Moorman)과의 해프닝 공연은 물론, 전위음악의 대부 존 케이지(John Cage),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 한하르트(Han-hardt), 쾰른미술관장 헤르조겐랏트(Dr.Herzogenrath), 보스톤현대미술관장 데이빗드 로스 (David Ross)등이 참여하는 패널토론회가 미술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백남준의 휘트니전시는 뉴욕 주재 KBS특파원 김기덕씨가 5월5일 전시 현장을 취재하고 백남준과 인터뷰를 함으로써,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백남준이 방송으로 소개되었다. 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작품을 소개하면서 “서양인들과는 달리 한국인을 포함해서 우랄알타이계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토끼가 떡방아 찧는 장면을 상상하는 등 달이 중요한 볼거리였기 때문에 달이 가장 오래된 TV가 된다”고 설명하였다. 재미있는 애피소드는 당시 카메라맨이 테이프가 다 떨어졌으면서도 백선생이  너무 진지하게 설명하니까 인터뷰를 계속 녹화하는 척 한 것이었다.

휘트니회고전을 통하여 여러번 접하면서 백선생과는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우리 부부는 현대예술 전반에 폭넓게 빠져들게 되었다. 이어서  내가 불란서계  미국인 큐레이터 미쉘 콘(Michel Cone)에게 의뢰해서 만든 미국내 교포작가 초청 전시회 <코리안 아메리칸 센서빌리티, Korean-American Sensibility>에는 기꺼히 비디오 작품을 내주기도 하였다. 당시에 김차섭, 김원숙, 박관욱, 이병용, 황인기, 문미애, 임충섭, 이상남, 이일, 김웅 등도 전시에 초청되었는데, 몇몇 작가들은 이 전시를 계기로 국내에 알려지고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6월 갤러리 현대는 강북의 2개 전시관에서는 김원숙과 이일을, 강남 전시관에서는 김차섭부부 전시를 거의 동시에 진행하였는데, 모두 문화원 전시에 초청된 작가들이다.

백선생의 작품은 <Allan 'n' Allen's Complaint>이라는 30분 짜리 비디오테이프 였다. 이 작품은 당시의 대표적인  해프닝 예술가 알란 캐프로(Allan Kaprow)와  현대판 음유시인 알랜 진스버그(Allen Ginsberg)를 주제로 한 것으로서 1983년도 휘트니 비엔날레에도 선정된 작품이다. 출품된 테이프는 내가 구입해서 백선생의 싸인을 받아 보관하고 있다.

또한 교포사회에 전혀 나타나지 않던 백선생은 82년 5월24일 한미수교10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국립국악원의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초청 공연에 참석해 주었다. 그 당시 백선생이 MIT의 교수 초청 제안을 거절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었었는데, 백남준의 기행을 창피스러워 하던 당시의 외교관들과는 달리  김세진 뉴욕총영사는 백선생을 반갑게 맞으면서 자신의 옆좌석으로 안내하려 하였으나, 백선생은 오줌마렵다고 하면서 다른 좌석으로 도망가 버렸다.

이것은 백선생이  한국 공무원들을 기피하고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겠는데,  1970년대 중순 이후 미국의 주한미군철수 계획과 한국의 핵무기개발 의혹 등으로 한미관계가 악화되고 박동선사건, KCIA문제, 통일교문제 등이 미국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면서 백선생 자신도 한국의 외교관들에 대하여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지나고 보니 내가 백선생과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었다. 백선생은 국립국악원 공연자중에서도 김영동의 끼가 남달라 보인다고 극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