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연재]한민족의 색채의식②
[특별기고-연재]한민족의 색채의식②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
  • 승인 2012.07.2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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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이란 안기(顔氣), 속내까지 드러내는 얼굴기색

 

일랑 이종상 화백

[지난호에 이어]

 그 외에 감산혼합된 색명은 수도 없이 분화될 수 있으므로 ‘하늘색’ ‘배추색’ ‘수박색’ ‘쥐색’ 혹은 ‘쪽빛’ ‘남빛’ ‘우유빛’ 처럼 사물의 이름 끝에 한자로 ‘색(色)’자나 한글로 ‘빛’자를 붙여쓰고 있다. 이런 방법은 결국 유채색의 색이름 뿐만이 아니라 ‘안색(顔色)’, ‘기색(氣色)’, ‘혈색(血色)’ 혹은 ‘불빛(光線)’, ‘햇빛(日光)’, ‘낯빛(顔色)’, ‘눈빛(眼光)’처럼 가산 혼합된 광선은 물론 건강이나 심기(心氣) 등의 비가시적인 내면까지도 섬세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이 이름 붙여 써 내려온 다섯 빛깔의 원색명은 다른 어느 나라의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과학적이며 합리적이고 철학적인 의미가 깃들여 있다고 본다. 우리의 색채문화는 분석적이기보다 오히려 종합적 성향을 보이고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프리즘적 분석주의 색채논리로 보려는 즉물적 대상으로서의 색상이 아니라 자연과의 동화를 이상으로 삼으면서 선험적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물(物) 이상의 색채관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 속에 나의 삶이 동시에 내포된 종합적인 색채인식을 지녀왔기 때문에 기능적이며 효율적인 측면에서 불합리한 점이 많았음을 인정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술적 측면에서 값매김을 한다면 한민족의 색채문화는 매우 자랑스러운 것이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의 색채의식은 표피적인 색상(色相)에 연연하기보다 내용적인 색질(色質)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한국의 빛깔은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벗어나고 욕심을 버려 내 안에 느낌으로 존재하는 절제의 빛깔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민족의 색채의식은 그 자체만으로 독립해서 생각할 수 없다. 거기에는 그 민족이 걸어온 역사의 의식주 전반에 걸친 주거 환경은 물론 자연환경과 우주관, 생사관 등의 종교와 윤리가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예술도 마찬가지여서 우리의 그림이 서양의 그것과 다른 까닭이 이런 데서도 쉽게 느껴진다.

정치사관이나 경제논리가 문화의식을 앞지르고 있는 세상이고 보면 기초학문이나 순수예술이 설 자리를 잃고 사회전반에 걸쳐 실용주의 생산논리가 물질만능을 부추기며 예술적인 색채의식은 기능주의 색채이론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런 현상마저도 당연하고 그럴 듯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과학을 뛰어넘는 창조적인 문화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한국의 그림을 비롯한 의식주 문화를 살펴보면 오히려 세련된 색채문화가 그 뿌리를 이루고 있었음을 곧 알 수 있다. 선사시대 암각화가 그렇고 고구려시대의 벽화가 그러하며 고려시대의 그 찬란했던 불화가 그렇다.

또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갖가지 의상의 염색기술과 건축의 단청미술이 그렇다. 이런 색채문화가 지금까지도 우리의 생활 속에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음을 증명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우리의 생활 속에 녹아있는 가시적인 색채문화만 보더라도 결코 우리의 색채문화가 서구의 그것과 비교하여 하등의 모자람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색 이름이 오랫동안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여타의 상황까지도 종합적으로 인식하는 빛과 색채감각의 표현이었음을 상기할 때 단순한 색명 이외의 것들에 대한 의미부여가 결코 견강부회의 이론주입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혹자는 빛과 색채를 자유롭게 인식하려는 현대인들에게 그런 이론적 근거가 사족에 다름 아닌 방해요소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간접체험에 의한 인식의 허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분리된 색상 하나가 자연의 산물인 바에야 한 개의 개념을 놓고 공간과 시간은 물론 인간과의 관계, 윤리성까지 종합적으로 연계하여 이해한다면 오히려 예술적으로 사색하는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색(色)’이란 글자의 본 뜻을 살펴보면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안기(顔氣)’라고 풀이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얼굴의 기색이 단순히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안색(顔色)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내까지 드러내는 얼굴의 기색을 말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빛과 색의 의미는 다르다.

빛은 광선에서 오는 가산혼합의 대상을 말하고 색은 물체의 흡수와 반사에 의한 가산혼합의 대상으로 유·무채의 오색을 말한다. 그 외에도 비가시적인 내면의 상황을 표현하는 신채(神采)와 안채(眼采)처럼, 사람의 인품이나 건강, 감정 등을 말하는 ‘얼굴 빛(顔采/顔色)’이 있고 생선이나 물건의 신선도를 말하는 ‘때깔’ 등이 있다. 우리가 흔히 색을 ‘색깔’이라고도 말하는데 외부의 드러난 색을 통해 내부의 질료까지 파악해 보려는 ‘때깔’의 의미가 잠재된 것이 아닌가 싶다.

‘깔’을 비가시적인 추상적 감정인 숨결, 손결, 눈결, 물결과 같은 ‘결(韻質)’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한국인의 색채의식은 굳이 오행사상에 연유하지 않더라도 표면색과 이면색을 동시에 파악해보려는 종합적 색채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을 최악의 부도덕으로 삼는 윤리관 속에서 겉과 속을 동시에 이해하고 진솔하게 표현하려는 욕구는 자연스럽게 모든 예술 속에 잘 드러나 보이고 있으며 일상의 언어 속에도 녹아 있음으로 해서 색 이름 하나에도 공간과 시간개념이 동시에 파악되며 선험적 기성관념이 종합되는 것이다.

서구에 비해 표리의 동질화를 희구했던 단적인 예로서는 우리의 매듭이 그렇고 자수가 그러하며 목공예와 회화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이런 점을 깊이 통찰하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실용주의’라는 잘못된 교육적 풍토 아래 우리의 종합적인 색채의식을 폄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3.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색채(色彩)

오채(五彩)로서 색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후한서(後漢書)》, 〈염직편〉의 오색(五色)으로서 “내가 고인의 형상을 보니 일(日), 월(月), 성(星), 신(辰), 산(山), 용(龍), 화(花), 충(蟲) 등은 오채(五彩)로 장식하였고, 또 제기, 해초, 불, 쌀, 토기 모양의 채색수(彩色繡)는 오채(五彩)로 나타냈고 오색(五色)의 설채(設彩)로 복장을 만들었다” 라고 했다.

원래 음과 양은 만물의 원소적 의미를 가진 개념은 아니었으나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육기(六氣)의 하나로 인식되면서 실재의 이원적 개념으로 성립되었다.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사상적 배경은 토착신앙(土着信仰)의 근간인 민간신앙 (Shamanism)에서 연원한다고 볼 수 있다. 샤먼은 영매자를 통하여 초자연적 힘(靈)을 빌려 악귀를 벽사(?邪)하는 한편 악령을 위무하는 선악의 양면신앙이다. 그러므로 자연계의 비가시적 절대법칙인 음·양의 상생(相生), 상극(相剋)을 우주의 운행법칙으로 믿어 왔다. 음·양의 2원구조 속에 오원기(五元氣), 즉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로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설명하는 오행설(五行說)을 근간으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음양과 오행의 원리로 세상을 파악하려는 논리체계를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이라고 한다.

만물의 생멸(生滅)과 변화를 기(氣)의 취산(聚散), 이합(離合)의 현상으로 보면서부터 음기와 양기의 상반된 성질을 설정하고, 음양이기(二氣)에 의한 천지의 운행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문헌적 근거로는 《상서(尙書)》의 홍범(洪範)인데, 홍범구주(洪範九疇)에 보면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로 오행이 등장한다. 고대인들의 생활에 필요한 제반 요소들이 나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행의 순서는 다시 상생과 상극의 개념으로 풀이되는데, 상생(相生)의 순서는《예기(禮記)》의 월령(月令)에 보이는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순이다. 또 상극(相剋)의 순서는, 제(齊)의 추연(鄒衍)이 정한 토(土), 목(木), 금(金), 화(火), 수(水)의 순서로 상승(相勝)의 사상이다. 추연(鄒衍)의 대표적인 학설로는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 있는데 그는 오행의 순서를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로 생성해 간다는 상생설로 발전시켜갔다. 음양설과 오행설을 통합하여 음양의 기(氣)와 오행(五行)에서 발생하는 덕(德)의 소식(消息)이론으로 사물의 변화를 설명했다.

오행(五行)의 관계에는 상생과 상극의 관계에서 근원이 되는 태극(太極)이 일원적(一元的) 개체가 되려면 생성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을 상극의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째, 태역생수(太易生水)는 유현(幽玄)에서 수기가 생기며 이는 곧 생명의 근원으로 북방위의 어둠으로 회귀하는 변역의 과정이다.

둘째, 태수생목(太水生木)은 수기로 생명(木)이 생겨 안의 기운이 밖으로 발산하여 동방위의 초목이 파랗게 성장하는 소생의 과정이다.

세째, 태시생화(太始生火)는 나무가 불(火)이 되어 만물이 형상을 이루고 남방위의 밝고 붉은 빛으로 성장 발전하는 과정이다.

네째, 태소생금(太素生金)은 불로써 금(金)을 얻어 기의 외적 발산을 억제하고 서방위의 맑고 흰 정결로 내적인 성숙을 하는 단계이다.    

다섯째, 태극생토(太極生土)는 쇠와 돌로 흙(土)이 되고 모든 것을 완성하여 중앙위에 땅을 얻어 주인으로 중심이 되는 과정이다. [다음호에 계속]

*필자약력:서울대동양화화 교수/초대 서울대미술관장/국전초대작가 및 심사위원/5천원권·5만원권 화폐도안 작가/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