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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운산 송순섭 명창]“판소리, 이대로도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인가?”
국악계 Mr.쓴소리,판소리계 자성하고 제대로 공부해야
2012년 08월 03일 (금) 11:37:50 이은영 편집국장 / 정리 윤다함 기자 press@sctoday.co.kr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니 제대로 된 발음이 안 나오고 의미전달도 안 되는 거다. 학교에서부터 잘못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엔 사랑방에서 배웠지만, 이제는 대학원까지 가서 배울 수 있는 마당에 판소리 전승이 이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정말 답답하다” 송순섭 명창(77세,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적벽가 예능보유자)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우리 국악계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송 명창은 ‘요즘 세대가 우리 판소리 가사를 이해조차 못하고 우리 문화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판소리는 중요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지만, ’그에 걸 맞는 올바른 전승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소리를 한다는 사람들조차도 가사의 뜻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며, 발음법 또한 뭐가 옳은 것인지 구분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덧붙여 언론의 무관심에 대한 질타도 빼놓지 않았다.

   
▲운산 송순섭 명창

송 명창은 무대 위에서 세상을 호령하는 듯한 형형한 눈빛과 소리의 호방함으로  관객들을 압도해 왔다. 그는 적벽을 앞에 두고 팽팽히 맞서는 조조와 ‘공명’처럼 긴장과 여유를 밀고 당겨, 웃음과 눈물을 함께 안겨준다.

그와의 인터뷰도 마치 그의 소리와 같았다. 현재 그는 전통 예인의 최고 영예인 인간문화재로 소리인생의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지만 판소리계를 향한 일침을 가할 때는 휘모리장단으로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 그러나 멸시와 천대로 지난했던 그의 소리인생 한 구석의 응어리는 왈칵 눈물을 자아내게 만드는 한(恨)은 진양조 가락이다. 송 명창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못다했던 국악계의 문제점은 물론 우리소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후손들을 위해 지금 해야할 일, 또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을 담아 한 구절 한 구절 판소리 사설을 읊듯 자신의 인생 대서사를 풀어냈다.

송 명창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문화재보호재단이 기획한 '판소리와 문학'의 만남, ‘득음’ 공연을 하루 앞둔 지난달 17일 인사동에 자리한 '운산 송순섭 판소리 전수관'에서 이뤄졌다. 참고로 '득음' 공연은 판소리 인간문화재 5명의 명창이 5일간에 걸쳐 소설가 김홍신 교수(건국대)의 해설이 곁들어진 무대로 판소리와 문학 간의 관계가 재조명된 자리였다. 그는 김 교수와 그간 그가 주장해온 판소리 가사와 발음에 대한 ‘끝장’ 토론을 한 번 펼쳐보겠다는 기대로 에너지가 충만해 있었다.

◆ “판소리 제대로 하려면 국악인들 한자공부 필수”
   
송순섭 명창은 국악계에서 보기 드문 패셔니스트다. 깔끔한 정장에 멋스러운 모자가 그의 패션감각을 더해준다. 특히 수염까지도. 

 

 

"음에서 뜻이 나오는 법인데, 눈으로 보는 글자로는 다 알지 못하고 음으로 비로소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국문학하고도 연계되는 건데 대학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알지 못하니 상황은 점점 악화돼 가는 거다. 몇 가지 예만 들어도 이 지경인데, 어찌 세계유산이라고 자랑할 수 있겠나? 우리 것인데 옳게 전승돼야 한다. 판소리계가 이제라도 정신 차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이렇게 나서서 쓴 소리를 하는 것이다. 판소리 가사내용을 관중들에게 심어야 판소리가 대중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니,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우리 문화가 되길 바란다”

수궁가에서 이태백이 토끼를 부르는 대목에서 ‘상천’이란 단어를 ‘산천’이라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한 장음과 단음도 구별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인식도 못하는 상황이라니 실태가 심각하다. 문화재라서 잘못됐다고 해도 마음대로 고치기도 여의치 않단다.그래서 그가 국문학자이자 소설가인 김 교수와의 무대 위 한판(?)에 상당한 기대를 거는 이유다.

“이번 공연에 김홍신 교수가 함께 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김 교수와 판소리의 가사와 발음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하고 싶다. 관객은 소리 들으러 왔는지, 말 들으러 왔는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은 건 사실이다. 관객에게 우리의 올바른 판소리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다. 김 교수에겐 개인적으로 국회에서 우리 국악에 관한 제대로된 토론이나 한번 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인터뷰 다음날 기자가 그의 공연장을 찾았을 때 무대에서 그는 김 교수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아울러 적벽가의 두견새 대목의 정확한 가사와 의미를 전달한 후 감칠맛 나는 소리를 선사하자 관객들은 시원스러운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정부고위관료들이 모인 만찬에서 수궁가를 한 대목 들려주고는 그 자리에 있던 관료들에게 지금 한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 대목은 ‘말(馬)을 고르는 법’에 관한 내용이었고, 그는 그들에게 앞으로 사람을 등용할 때 이 노래를 떠올리며 인재를 뽑길 바란다며, 이렇듯 판소리 가사에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지혜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것 지키기, 정계·기업·학계부터 먼저 나서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 다 외국에서 공부하지 않나. 광주에 있을 때, 故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와 만나 국악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분께서 앞장서서 국악을 도와줬다. 광주시립국악원 설립에도 그분의 힘이 컸다. 하지만 요즘 기업에서 국악에 관심이나 갖나? 언어는 민족의 정신문화를 낳고, 그 언어는 민족정신을 도야하며 민족정신의 감(感)을 굳게 통합한다. 하지만 지금은 언어가 이상해졌다.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부터 영어를 쓰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할 정도이다. 진주에서 열린 ‘판소리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축제명에 들어간 ‘페스티벌’에 대해 지적한 적이 있다. 전남 보성에서 판소리 테마파크를 만든다고 하던데, 취지는 좋지만 ‘테마파크’란 이름이 걸린다고 했더니 바로 수정하겠다고 했다. 정부부터가 그러는데 국민들이 뭘 보고 배울까 싶다. 우리말로 민족정신을 도야해야 우리 정신이 올바로 선다. 백범 선생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한다면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우리것에 관심을 가지고 소중히하라'고 했다. 기업에서, 정계에서 먼저 나서준다면 백범 선생께서 그리던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서울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 이화여대, 추계예대 등 서울 소재 대학 중 국악과가 개설된 대학은 몇 되지 않는다. 국악과를 만들려고 해도 교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는 십여 년 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 국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지만 얼마 전 잠시 접었다.

   

 “보람이 없더라. 십 년 넘게 학교에 있었지만 남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은 다른 데서 배워온 잘못된 소리를 하면서 내 지적은 듣질 않았다. 그리고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판소리 수업은 정작 일주일에 한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판소리를 배울 수 있는 대학교도 사라지게 될 거다.

소리를 하려면 첫째로 가사내용을 알아야 하며, 정확한 발음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이 소리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가사내용을 알지도 못하는데 뭐가 제대로 갖춰지기나 하겠나. 그래서 지금의 교육과정에서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도 서울대 박사과정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배우러 온다. 스스로 배움에 나선 후학들에게는 성심을 다해 지도해 주는 것이 내 소명이라 생각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판소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한자교육도 필수이다. 그래서 지금 한문교육도 함께 진행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적벽가 예능보유자이다. 적벽가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가장 까다롭고 소화해내기 어려운 소리로 잘 알려져 있다. 어쩌다가 가장 인기 없는(?) 적벽가를 택하게 됐는지에 대한 동기는 바로 ‘삼국지’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는 박봉술 명창이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 가게 되는 바람에,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어렵게 배운 적벽가라서 더욱 마음이 간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중국 적벽에 가 소리를 하기도 했단다.

2000년 그는 그 해에 완창을 다섯 번을 하게 된다. 한 해 한 번의 완창도 소리꾼에게는 진기를 다 빼놓는 일이거늘 그는 그 다섯 번의 완창 후 풍으로 쓰러지고 만다. 그러던 중 2001년 2월 문화재청에서 연락이 왔고, 곧 문화재 심의가 있으니 적벽가 완창을 준비하라는 거였다. 건강이 좋지 않아 겨우 연기를 한 게 그 해 5월 31일로 날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다들 말렸다. 이런 건강상태로 완창을 다시 했다가는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주변의 만류에도 소리하다 죽겠다는 일념으로 장장 세 시간에 걸쳐 문화재심의를 받았고, 완창을 끝낸 후 그는 풍을 완치하게 됐다. 그는 ‘완창과 함께 다시 살아난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비 털어 송만갑 명창 동상 설립·박봉술 명창 묘 이장과 현챵사업 도와

그는 경제적으로 늘 쪼들리는 생활을 하면서도, 광주시문화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 1천 5백만 원에 사비 5백만 원을 보태 구례에 송만갑 명창의 동상을 세우고, 2006년 박봉술 명창을 '순천문화인물'로 추대하고 순천시로부터 현상사업비 3천만원을 지원받은 것에 자신의사비 또한 수천만 원을 보태 박봉술 명창의 묘를 순천으로 이장하고, 소리비를 세웠다. 그는 지금껏 단순히 소리에만 매달려온 게 아니라 판소리의 올바른 전승과 송만갑 명창과 박봉술 명창의 소리의 계승 사업을 위해 힘써왔다. 더불어 그는 송만갑 선생이 극찬한 '순천대사습'의 전통을 살려 순천에서 판소리 축제를 반드시 올리겠다는 다짐을 보이기도 했다.

송 명창은 24년을 부산에서 국악발전을 위해 활동했다. 그는 공연비용 마련을 위해 1977년 부산에서 대대적인 서화전시를 개최해 당시 지역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전국을 돌며 대가들로부터 직접 수집한 서화 250여 점을 전시했고 당시 부산시장, 부산지방법원장 등 부산의 큰손들은 모두 참석해 그의 전시에 후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예총에서 연극협회, 무용협회 지원금이 3백만 원 정도일 때, 그는 온전히 전시를 통한 그림 값으로만 3천만 원을 만들어냈으니 엄청난 수확이었다. 특히 故김지태 삼화그룹 회장(전 부일장학회장)은 전시 기획과 의도에 큰 감동을 받고 당시 1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후원금을 선뜻 내주기도 했다. 젊은 국악인이 우리 국악을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고 대견하게 여겼다는 것.

“당시 남농 선생님께 작품 한 점 얻어가려고 식사대접이라도 할라치면, 선생님께선 그럴 필요 없다며 오히려 날 배불리 먹여주곤 하셨다. 훗날 선생님께선 내가 이렇게 큰 일을 하게될 줄 몰랐다고 하시면서 대형작품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지금 부산국악회관 로비 중앙에 걸려있는 작품이다”

   

눌원문화재단이 부산 및 경남 지역의 인재들에게 수여하는 눌원문화상 수상(1983년)을 송 명창은 가장 자랑스럽게 꼽는다. “전라도 놈이 부산ㆍ경남지역문화인들에게만 주는 문화상을 받은 것”이라며, “다른 상들도 다 뜻 깊긴 하지만 소리꾼들하고만 경쟁한 게 아니라 부산경남의 문화예술인들을 통 털어서 내가 수상한 것을 참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송 명창은 부산에서 ‘동래부사 송상현’, ‘순교자 이차돈’, ‘원효대사’, ‘유관순전’ 등을 기획·제작해 무대에 올리자 수천 명 관객의 재공연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국악계와 언론으로부터 창의적이고 작품성이 높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때 했던 대로 지금 그대로 하라고 하면 아무도 안할 거다. 당시 단원들에게 출연료도 제대로 주지못하고 고생만 시켰는데…” 그는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이런 마음고생을 거치며 부산지역 국악발전을 위해 헌신한 송 명창의 그간의 노력을 인정해 부산시에서 상으로나마 보상을 해주는 듯 했다.  1986년 부산시문화상에 송 명창은 단독후보로 추천됐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수상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일을 겪게된다.

이때 송 명창은 부산시와 심시위원들이 괘씸하기도, 서운하기도해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수상자 자격요건과 심사위원들의 자격이 너무나 모순이 많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부산시 문화상 수상대상자는 부산에서 10년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자격요건이 전제됐는데, 정작 어이없는 일은 부산시가 4년 전(1982년)에 설립된 부산대 국악과 교수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것이었다. 겨우 3~4년이나 거주했을까 말까한 이들이  20년 이상 그 고장에서 뿌리내리고 국악발전에 공헌해온 송 명창을 떨어뜨린 것이다.

송 명창은 이 일로 크게 실망해 20여 년을 살아온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부산시문화상을 수상한 국악인은 없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송 명창은 서울로 올라와 대통령상 수상에, 인간문화재 선정까지 국악인으로 누릴 영예를 다 누렸으니 오히려 부산을 뜬 것이 '아주 잘한 일'이 됐다.

이후  송 명창은 광주와 부산의 국악을 자리 잡게 하고, 판소리의 올바른 전승을 위해 힘써온 그는 부산국악관현악단 창단과 부산문화예술제 탄생, 대한민국국악제 부산대회 성공적 개최에 기여하고, 4년간 광주시립국극단을 이끌며 고경명 장군, 안중근 열사, 유관순 등 우리 역사 속 인물을 소재로 한 창극을 제작, 광주뿐만 아니라 서울, 천안, 창원, 부산 등 전국을 돌며 광주의 국악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

◆8·9월 창무극 ‘백범 김구’ 앵콜공연에 ‘문화강국 대한민국’ 정신 받든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송 명창은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르는 ‘백범 김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열릴 ‘백범 김구’ 공연에 보다 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문화강국 대한민국’이란 메시지를 좀 더 강조하려고 한다”

송 명창은 지난해 용산아트홀에서 열린 창무극 ‘백범 김구’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공연이 다 끝나고도 천 이백여 명의 관객들은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기립박수가 아트홀을 가득 채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고난의 삶을 산 김구 선생의 일생을 창극으로 재현한 창무극 ‘백범 김구’는 백범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전남도립국악단의 무용부와 창악부, 기악부를 주축으로 객원배우까지 모두 100여 명이 출연한 대형 공연이었다. 역사의 거목을 창극화한 만큼 장중한 무대에 어울리게 구성이 견고하고, 비극적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백범의 삶을 웅대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범 김구’는 8, 9월 국립국악원, 서울대 등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판소리 이론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소리꾼은 첫째 인물치례, 둘째 사설치례 그 다음 득음’이라고 했다." 신 선생이 말한 소리꾼의 덕목을 온전히 갖춘 소리꾼이 송순섭 명창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송 명창은 인물치례뿐만아니라 무대복이라할 수 있는 한복은 물론 평상시 입고 다니는 양복도 멋스럽게 연출해내는 '복장치례'도 탁월하다. 국악계 뿐만아니라 예술계를 통 털어 손꼽힐만한 스타일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사설과 득음에 있어서는 더 이상 말해 무엇할까? 게다가 학문적 토대까지 갖추려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무대에서도 감동을 선사하는 그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장인이자 스승 그 자체이다. 오랫동안 송 명창의 소리를  무대에서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운산 송순섭 명창은 1936년 전남 고흥 출생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적벽가 예능보유자이다. 현재 동편제판소리보존회 이사장, 운산판소리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경력>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적벽가 예능보유자▲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학교 국악과 강사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국악과 강사 ▲한국국악협회 부산지부장 ▲전남도립국악단 창악부장 ▲전남대학교 국악과 강사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심사위원▲ 광주시립국극단 단장 등 역임<주요 수상>

▲부산 눌원문화상(1983)▲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장원 대통령상(1994), KBS 판소리부문 국악대상(1999) 광주시 국악상(2003) 한민족문화예술대상 국악부문(2010) 제비꽃 문화인 명창가상(2011) 등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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