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따라쟁이는 없다.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따라쟁이는 없다.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2.08.0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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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
화가들은 매일 스스로에게 환장하며 살아간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라 강요당한다. 없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만들지 않으면 창작이 아니라고 면박을 준다. 없던 것이라고 믿으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면 ‘누구의 작품과 닮았느니’ ‘이미 그런 행위는 누가 하였느니’ 하면서 무시하기 일쑤다. 누구 작품과 비슷하다는 소리에 자존심 상한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체면이 있고 자존심이 있는데 말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미술교육에서의 문제점 중에 하나다.

누구와 비슷하다고 했을 때 <누구>는 분명 잘나가는 화가다. <누구>는 절대로 1루수가 아니기며, 그는 미술계의 족적을 선명하게 남긴이다. 보고 베낀 것이 아닌 이상 자신의 작품이 <누구>와 닮았다는 것은 <누구>의 사상과 사고방식과 예술관이 자신에 닿아있음이다. 이것은 축하해 줄 일이며, 칭찬받을 일이다. 조금만 더 격려해주면 <누구>의 사상을 발판으로 더 나은 작품이 창작될 조짐이 발생한다. 다만 <누구>가 자신보다 훨씬 월등한 경우에 말이다. <누구>가 또래이거나 후배인 경우라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작품을 모방했다는 오해도 말아야 한다. 내가 먼저니 네가 먼저니 속으로만 싸움해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자존심 버려가며 이미지를 훔쳐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간혹 있다 할지라도 그런 경우에는 본인의 작품을 모방하기 쉽거나 예술관이 너무나 훌륭하다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속 편하다. 내거 먼저 네가 먼저해봐야 본인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일일 뿐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최초는 최고가 아니지만 최고는 최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어느 정도 연습하면 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고, 재주가 있는 이라면 물건과 흡사하게 그림으로 옮겨내기도 한다.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자기 손을 보고 그려보라는 과제가 있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도화지위에 손바닥을 펼친 후 손의 외곽을 따라 연필로 그어나가는 일이었다. 그건 누가 봐도 손바닥이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주먹이나 가위나 승리의 V자를 그림으로 그리라 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손을 따라 그리지 말란다.

미술대학 수업에는 자화상 그리기가 있다.(자화상 수업시즌이 되면 화장실 거울 십수장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 거울에 비친 자기 보습을 그리는데 어떻게든 닮게 그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외형을 따라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성이나 성격이나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일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된다. 같은 모델을 두고도 다른 그림이 된다. 역시 따라쟁이는 없다. 사람을 닮게 그리기는 일은 훈련하면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지만 보이지 않는 인물의 됨됨이를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옛날 동진東晋때의 화가 고개지(顧愷之 371∼440)라는 사람은 그림 그림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 그림을 그림에 사람 그리기가 가장 어렵고, 다음으로 산수이며 그 다음이 개나 말이다. 집과 누각은 사물이므로 (풍광으로써) 보고 즐기기에는 좋지만 (생각을 담아 그려야만 감동이 생기기 때문에) 그리기는 어렵다. (顧愷之,『魏晉勝流?讚』中 著有著名論句, “凡畵 人最難 次山水 次狗馬 臺 一定器耳 難成而易好 不待遷想妙得也.”)고 하였다.

풍경을 따라 그리고 집을 따라 그리면서도 서로 다른 개성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사물을 보는 가치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누군가의 작품과 비슷한 작품을 발견하면 형식의 닮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러한 그림이 생겨난 정신적 우호관계를 이야기하자. 자존심을 버리면서 따라 그리는 이는 거의 없다. 소위 말하는 상업화가가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