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일본속보] 日 분노하는 시민들을 지켜 본 어느 언론인의 신념의 목소리
[이수경의 일본속보] 日 분노하는 시민들을 지켜 본 어느 언론인의 신념의 목소리
  • 다치하라 쇼이치 도서신문 기획부장 / 번역 이수경 교
  • 승인 2012.08.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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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안보투쟁 이후 52년만의 국회 포위 데모

지난 7월29일(일), 도쿄의 히비야 공원(日比谷公園)에는 일본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든 시민들의 원전 반대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시민 단체들로 넘쳐나는 데모 인파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행렬로 공원을 출발하여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사회적 책임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를 높인 뒤, 다시 히비야 공원으로 돌아왔다. 시민들은 그대로 발걸음을 옳겨서 수상 관저와 국회를 향하였고, 오후 7시에는 수 만명에서 20만 명의 시민들이 손에 촛불이나 펜라이트를 들고 국회를 포위하였다. 경찰이 보도와 차도 사이에 경찰 버스나 발리게이트를 쳐 놓았기 때문에 밀려 드는 참가자들로 도로 옆 보도위까지 꽉 차 있어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손마다 촛불이나 펜라이트를 들고 국회를 포위한 시민들(7월29일 밤)

국회의사당 정면에 이르렀을 때 발리게이트가 무너져 인파가 차도로 넘쳐 흘렀다. 경찰도 그것을 제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날, 국회의사당과 수상 관저 주위는 일본 전국에서 모인 모든 원전 반대/ 원전 탈피 데모 단체에 의해서 둘러싸였다. 일본 정부에 대하여「오오이(大飯)원자력 발전소 재가동에 반대」「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지시켜라」고 호소하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높아진 것이다。

항의 데모단체가 국회를 포위한 것은 1960년의 미일 안보조약 개정 저지를 외치던 국회 데모 이래 52년 만이었다. 원자력 발전소를 국책으로 행해온 일본에서는 언론도 계속 원전 추진을 지지해 왔다. 지난 2011년 3월11일의 동일본 대지진・거대한 쓰나미(大津波)와 후쿠시마(福島)원전 사고라는 비참한 참사에도 불구하고, 주요 언론들은 원전 추진을 반성하고 탈원전 사회로 키를 꺾어야 한다는 방향 전환 제시에 침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반세기 만에 국회가 포위된 대규모 시민 데모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신문 등의 각종 언론들은 런던 올림픽 보도를 뒤로 미루고 1면 톱 기사로 크게 다루었고, NHK도 비교적 긴 뉴스로 보도했다.

7월29일의 데모는 8월 3일(금요일)에도, 그 다음 주에도 계속 되었다. 이 흐름은 일본이 원전 제로가 될 때까지 계속 되길 바라고,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정계, 재계, 언론계, 학계, 법조계가 여전히 원전에 의존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일본의 풀뿌리 시민층에서 원전 반대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16일(월요일)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씨,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씨, 작가 세토우치 자쿠쵸(瀬戸内寂聴)씨 등의 참가 호소로 도쿄의 요요기 공원에서 「안녕(사요나라) 원전 10만명 집회」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탈원전을 바라는 17만명을 넘는 시민들이 모여서 데모를 하였다.  2011년 3월 11일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해 쌓여 있던 불안과 분노가 드디어 봇물 터지듯이 넘쳐 흐른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풀뿌리 시민들의 원전 반대 운동에 주목해 줬으면 좋겠다. 세계 각국에서 보도진들이 연일 도쿄를 찾아와서 취재를 하고 있으므로 이 원전 반대 운동을 알 수 있는 매체도, 기회도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필자가 그동안 직접 참석하여 느낀 것을 아래에 소개하려고 한다.

●후쿠시마(福島)의 아픔과 슬픔을 잊지 말자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프랑스와 나란히 원전 제국이다. 일본에서도 원전이 세워져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반 원전・탈 원전 운동은 장기에 걸쳐서 계속 되어 왔다.

▲넓은 요요기 공원(代々木公園)이 17만명으로 꽉 찼다. 7월 16일.

이번 풀뿌리 시민층에서 일어난 대규모 데모에는 가시와자키(柏崎)、하마오카(浜岡)、미하마(美浜)、오오이(大飯)、가미노세키(上関)、겐카이(玄海) 등에서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원전 폐지를 호소해 온 각지의 시민 단체가 선두에 섰다. 그러나 작년 3월11일 이후 현재까지의 원전 반대운동의 흐름은 여태까지 운동을 통에서 배워왔으면서도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차이]란 말할 것도 없이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가 Melt-down(노심용해)을 일으켜서 녹은 연료가 Melt-through (압력 용기를 뚫고 나온 현상)가 되어 최악의 멜트 다운(바깥 부분의 격납 용기 바탁을 뚫고 원자로 건물의 지하 콩크리트를 녹이고 지하수맥에 달함)이라는 큰 사고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직접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수 많은 후쿠시마의 주민들이 이번 이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국회 앞에 몰려들고, 요요기 공원이나 히비야 공원앞에 몰려온 모든 사람들은 「후쿠시마를 구해라」「후쿠시마의 아이들을 지켜라」「후쿠시마와 연결하자」라는 강한 신념을 가슴에 안고 목청이 터지라 외치고 있다. 누구든지 후쿠시마 주민들을 지원하려고 하고 있고, 후쿠시마의 아픔과 슬픔을 자신들 일처럼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운동을 이끌고 있는 후쿠시마의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활동가들도 아닌 평범한 주부들이 내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여 끓어오르는 분노와 착잡한 불안감에 쫓겨서 운동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후쿠시마 주민들은 후쿠시마에서 아이들과 함께 원거리 격리지(예를 히로시마, 후쿠오카 등의 일본 열도 남쪽 지방)에 피난한 사람, 후쿠시마에 그대로 머무는 사람, 고향에는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바램은 오직 하나이다. 7월29일의 데모에 참가한 후쿠시마의 주부들에게 인터뷰를 해봤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책임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방사능 오염의 실태도 제대로 해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건만, 벌써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을 결정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피해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마치 후쿠시마라는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대응하고 있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우리들은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절대로 제2, 제3의 후쿠시마를 반복시켜서는 안된다」라며 단호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나타냈다.

▲깃발에는 「희망의 목장 후쿠시마」「원전 없는 사회를 실현시키자」「원전을 없애고—생명과 미래를 지키자」라고 적혀져 있다. 7월29일 히비야 공원。

후쿠시마의 주부들은 증폭되는 불안과, 슬픔 조차 위로받을 수 없는 정부측의 무대응의 답답한 현실 속에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신념하에 목소리를 높이 하여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후쿠시마 주민들이야말로 「모든 원자로를 즉시 폐지시켜야 한다!!」는, 가장 격한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실제로 후쿠시마현 의회는 작년 10월에 주민들이 제시한「후쿠시마 제1, 제2 원전 전 10기 폐지를 요구한다」는 청원을 찬성 다수로 채택하여 「탈 원전의 현(県)」을 선언하였다.

이 날, 시민들의 대규모 모임의 선두에는 검은 기모노와 빨간 끈과 삿갓을 쓴 후쿠시마의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후쿠시마현 아이즈(会津)지방에 전해내려오는 「간쇼 춤(かんしょ踊り)」을 추면서 데모 행진을 한 것이다. 「간쇼」라는 의미는 아이즈 지방의 사투리로「일심 불란, 무아지경(一心不乱、無我夢中)」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오로지 흐트러지지 않는 한 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치닫는다는 의미의 이 춤은 수 백년전의 에도시대로 부터 계속 되어 온 춤인데, 메이지 시대에 지나치게 에너지가 넘쳐서 민중의 강한 힘을 시사하는 춤이 되었기에 당시의 천황제 정부가 금지했다고 하는 의미심장한 춤이기도 하다. 그 춤이 원전 반대 운동으로 부활했다는 것은 그만큼 후쿠시마 여성들의 분노가 극도에 달해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후쿠시마의 여성들이 전통적인 간쇼춤 복장으로 데모의 선두에 서 있다. 7월29일。

●「고향을 잃은 설움과 분노를 이해하실 수 있나요?」

국회 포위 데모에서 통감하는 것은 원전이나 에너지 문제를 생각할 때 후쿠시마 주민들의 고통과 그들의 바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원전 반대」는 일본 정부와 원자력 산업이 수 십년에 걸쳐서 행해 온 국책에 반대하는 것이므로 매우 예민한 정치운동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전 반대는 정치주장이나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생명의 외침이고, 인간답게 사는 것과 인간의 존엄을 요구하는 호소이다. 어린 아이들이나 후손들의 세대에 방사능이나 핵폐기물을 짊어져야 할 업의 유산으로서 남기게 해서는 안된다는 인류의 통절(痛切)한 반성이다.

후쿠시마현은 대지진과 츠나미와 원전 사고라는 3중의 피해를 입었다. 후타바군 나미에쵸(双葉郡浪江町)에 살고 있는 농민들은 안심할 수 있고 안전한 쌀을 전국에 보급해 왔다. 순 수입은 적었으나 땀흘려서 농사를 지으며 성실히 살아왔다. 그러나 작년 3월11일의 동일본 대지진 때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하여 나미에쵸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까지 평화로이 생활했던 고향의 산도, 강도, 숲도, 바다도, 농지도 모두 방사능으로 오염된 것이다. 신선한 생선이나 야채나 채소를 언제든지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풍요로운 생활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부의 강제적인 피난 지시로 인해 선조대대의 토지에 살 수 없게 되었고, 멀리 떨어진 좁고 불편한 가설 주택으로 밀려가게 된 것이다. 자식들이나 손자들에게 전해줄 자신들의 생활과 인생 모든 것이 파괴된 것이다. 같은 고향 마을 주민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 나미에쵸의 농민은「후쿠시마현민은 현내에 남아 있는 사람도, 피난한 사람도 포함해서 모두가 유랑의 백성입니다. 고향을 잃은 설움과 분노를 이해하실 수 있나요? 고향을 돌려 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있다.

▲젊은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나라 미치(奈良美智)가 그린 그림을 들고 분노를 표명하고 있다. 국회로 향하는 도로에서. 6월29일.

또, 후쿠시마 제1원전이 위치한 후타바쵸의 어느 주민은,「도쿄전력의 원전은 후쿠시마현의 과소지(過疎地; 인구가 줄어드는 땅)에 세워졌어요. 하지만 도쿄전력의 전기는 후쿠시마에는 사용되지 않고, 그 전력이 도시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전 사고로 인해 후쿠시마의 자연이 파괴되고 후쿠시마의 주민들이 희생을 치루도록 해 놓고선 도시만 느긋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공평한 부조리는 아닌가요?」라고 한탄을 했다.

게다가 후쿠시마 시내의 어느 젊은이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의 『안전신화』가 거짓말이란게 증명 되었습니다. 제 할머니는 『원전 사고가 다시 한번 일어나면 전쟁이 고향땅을 폐허로 불태우는 것과 같은거다. 원전 사고는 전쟁 보다도 더 나쁘다. 방사능 오염이 된 고향땅은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슬퍼하시고 계십니다. 저는 전쟁 체험은 없지만 67년 전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 이상의 방사능을 제조하는 원전을 국가는 왜 추진을 해 왔을까요?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하기 위해서일까요?」라며 예리하게 질문을 해 왔다.

●원전과 인류는 공존할 수 없다.

후쿠시마 주민들의 고발에는 실로 심각한 문제들이 많다. 후쿠시마 주민들의 슬픔과 분노를 접하면 문제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원전 반대의 흐름은 시간과 함께 증폭되어 큰 운동으로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더욱 확실해 질 것이다.

지금 필자가 느끼고 있는 것을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경과와 결과라는 진상이 아직 전면적인 공개적 제시가 되지 않았다. 관련의 주요 정보는 지금까지 은폐되어 있다. 게다가 원전 사고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현재까지도 수 천명의 노동자들이 매일 피폭을 당하면서 작업을 계속 하는 중이다.

작년 12월16일에 노다 수상이 선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 선언」은 그야말로 모순일 수 밖에 없다. 모든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책임자들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책임을 져야할 조직 및 개인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 후쿠시마 원전의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물론, 원전을 국책으로 부추키며 추진해 온 역사적인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수많은 피해자를 냈고, 앞으로도 일본 국내외로 피해자를 속출시키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책임자(정치가, 관료, 전력회사, 원자로 제조회사, 학자, 언론)의 처벌이 없는 이상, 같은 범죄는 반복될 것이다. 후쿠시마 주민을 중심으로 1,324명의 고소 원고단이 만들어져 있지만, 민간법정으로 재판을 할 것,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것이 과제가 된다.

▲정부 경제산업성 앞에서「후쿠시마의 여성들」이 텐트를 치고 앉아 있다(6월29일)

동일본 대지진・대 츠나미・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모든 피해자, 피폭자들의 손해배상, 생활보장, 고용정책은 부족한 상태다. 그렇기에 국가 규모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도 행방불명자가 2,908명이고, 가설주택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27만명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일본 국내의 원전을 당장 폐지시켜야 한다. 재가동은 말이 안된다. 전기와 생명, 과연 어느 것이 소중한가? 사람의 생명이다. 인류와 원전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일본은 이번 사고로 이웃 나라인 한국이나 중국, 타이완 등 세계 각지의 바다와 하늘과 대지에 방사능을 뿌린 책임을 사죄하고, 100 퍼센트 탈원전국이 되어야 한다. 세계에 앞장서서 그린 에너지(green energy)를 솔선해서 추진하는 국가 프로젝트를 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교육기관에 있어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후세에 전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는 쓰리 마일섬의 사고, 체르노브이리 사고 등이 있었고, 일본 국내에서도 원전 사고가 계속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인류사상 최초의 피폭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켰다.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청산하지도 않고, 역사의 진실에서 눈을 돌려버리는 일이 많은 우리 일본의 태도가 이대로 계속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전후의 일본은 「핵의 평화적 이용」을 슬로건으로 경제성장지상주의라는 이념하에서 원전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그 배경에는 농촌이나 과소지에 원전을 건설하여 도시는 그들의 희생 위에 번영해 왔다는 현대사회의 모순적 구조가 존재한다. 그리고 1950년대 이후, 원전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것이 한반도의 식민지 지배나 아시아의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일본국 헌법 제9조를 파기하려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전 수상이나 쇼리키 마츠타로(正力松太郎)등이었음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원전 추진의 저변에는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며 그것을 청산하려고 하지 않는 세력들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을 인식하며 필자는 한 사람의 사회적 책임을 가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후손들의 세대에 역사의 진실을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한 신념으로 이 글을 적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