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로서 사회적 기여에 힘쓰고 싶다”
[인터뷰 - 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로서 사회적 기여에 힘쓰고 싶다”
  • 이은영 편집국장 / 정리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08.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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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축 세계 알리기 위해 출판사 차려 건축작품집 출간

건축 기본은 주택… 비용 상관없이 주택설계 해줄 의향 있어
미래 환경 위해선 친환경 소재보다 친환경 시스템 구축이 더 중요

     파격적인 건축으로 국내 건축계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운생동(運生動) 장윤규 대표(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예화랑, 크링, 생능출판사, 더힐갤러리 등 눈길과 발길을 잡는 조각 작품 같은 건축물은 대부분 운생동의 작품이다. 보는 순간 여기가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국적이기도, 혹은 외계에서 온 듯 생소하기도 하지만 공간 활용 등 실용적인 면에서도 빠질 것 없다.

     신선하고 전위적인 건축작업으로 한국 건축 진보의 선두를 맡고 있는 그는 개념을 먼저 세우고 건축설계에 들어가는 일명 ‘개념건축’이 자신의 강점으로 작용한 거라고 했다. 그는 국내 건축 계보 그 어디에도 분류될 수 없다. 지금까지의 건축 작업들은 모두 그의 독창적인 의지에서 나온 산물이며,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건축을 확립시킨 것이다.

     국내외 건축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그를 폭염이 한껏 기승을 부리던 8월 초 한옥을 개조한 대학로에 위치한 운생동 건축사무소에서 만났다.

-사무소 이름이 ‘운생동’이다. 건축사무소 이름치고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중국회화입법 ‘기운생동’에서 따온 거다.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상 자체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기’를 빼고 ‘운생동’이라고 지었다. 비워진 부분을 채워나가자는 뜻도 들어있다. 예를 들면 ‘권운생동’, ‘예운생동’ 등 이렇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지어놓고도 참 마음에 든다"(웃음)

-장 대표는 세계적인 건축상을 휩쓸 만큼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주목받는 건축가이다.
"실은 국내 건축가들 중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축가가 없다. 국내에선 잘 나가도 세계에 나가면 변두리 건축가일 뿐이다. 하버드에 강의하러 갔을 때, 정원 40명 중 30명 가까이가 한국인이더라. 이게 외국에서의 한국건축의 현실이라 생각하니 씁쓸했다. 그래서 출판사를 만들고 건축작품집을 영문으로 출판하는 것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 꾸준히 한국을 알리려고 하는 이유다"

그는 건축사무소만 차린 것이 아니다. 도서출판 운생동이란 출판사를 직접 설립하고 나서 그의 저서 '복합체'(2005)의 영문판 건축작품집 ‘Compound Body’를 2010년 출간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 건축을 세계에 알리는 도구로서 건축가들을 위한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작품집을 영문으로 계속 출간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링-대우푸르지오벨리, 예화랑, 생능출판사, 더힐갤러리

-회사 설립 10년 동안 운생동 이름으로만 100개가 넘는 건축물 설계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첫 설계인 예화랑에 제일 애착이 간다. 개념건축을 직접적으로 실현한 게 바로 예화랑. 해외에서도 인정해준 바 있고… 예화랑 같은 경우는 1년 반 이상을 꼬박 설계에만 매달렸다. 서로 마음에 드는 접점을 찾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걸렸다. 파사드 모델만 해도 30개는 한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맨 처음 설계로 결정했다는 거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건축비평가 전진삼 씨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 건축은 크링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진다’는 말… 그 이전에는 과감한 건축물이 없었다. 하지만 그 전형을 완전히 탈피해서 만든 게 바로 크링kring이다. 크링처럼 건축물을 조각물처럼 짓는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사용 면적이 줄어든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다. 예화랑 역시 오히려 발코니가 추가 되면서 실제 사용 면적이 늘어났으니까"

-여러 용도의 건물을 설계했지만 그 중 대부분은 문화예술관련 건물이 차지한다. 건축가들마다 주특기가 있던데, 장 대표의 주특기가 궁금하다.
"제일 하고 싶은 건 바로 주택이다. 또 제일 잘 하는 게 주택이기도 하고. 건축의 기본은 주택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게 집 아닌가. 갤러리를 설계하는 것과 주택을 설계하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만큼 주택을 설계한다는 건 까다롭기도,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난 설계비를 많이 받지 않더라도 주거환경을 바꾸겠다고 하는 분에게 설계를 해드리곤 한다. 집의 규모와 설계비용은 관계없다. 모든 사람은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 20평짜리 집이라도 건축가가 손대면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낄 거다"

요즘 국내 영화와 드라마의 핫 키워드는 바로 건축가이다. 유명 배우들이 건축가를 연기하며 지적이면서도 능력 있는 이미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이에 대해 그는 다양한 매체에서 건축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니 대중의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여긴단다. 한편으로는 장동건 말고 좀 현실적인 외모의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을 타고 일반인들도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사는 일이 흔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 대표가 자신의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그림도 줄곧 그린다고 한다.

-사무실 한 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드로잉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직접 그린 거라 들었다. 건축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 전반에 관심이 지대한 것 같다.
"아트작업을 해야겠단 생각을 갖고 있었다. 새로운 건축개념을 위해 쌈지와 가구디자인 작업을 했었고, 한샘하고도 작업 중에 있다. 내 삶은 늘 발산하고 있다. 운생동, 정미소를 운영하고, 또 운생동 내 아트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가끔 너무 펼쳐 놓은 것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긴 하다"

-연극배우 윤석화 씨 소유의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현재 그 건물에 위치한 갤러리 정미소 운영까지 맡고 있다. 윤석화 씨와 어떤 인연으로 갤러리 정미소를 맡게 된 건지 궁금하다.
"원래는 박정자 선생님과 가까웠다. 박정자 선생님과 윤석화 씨가 친하지 않나. 그러던 중 윤석화 씨가 지금 갤러리 정미소인 이 건물을 고치려고 다 뜯어 놓기는 했는데 방향이 서질 않는다며 난감해 하는 찰나에 내가 소개된 거다. 윤석화 씨와 처음 만나 무려 7시간동안이나 대화를 나눴다. 서로 얘기가 잘 통했고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스 ‘아크로폴리스’가 멋있는 이유는 바로 폐허이기 때문이다. 정미소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예쁘게 치장하기보다는 건물 자체를 이용해 콘서트도 하고, 설치미술도 하길 바랐다. 이 모든 건 문화적 관계에서 수반된 거다. 지금까지도 내가 도와드리고 있고, 계속 고치고 있다. 정미소가 진화해가는 느낌이랄까. 정미소가 타일 건물인데, 이런 건물은 현재 서울에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이 정미소를 더욱 더 멋지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투명한 유리바닥이 인상적인 갤러리정미소
-대안공간인 갤러리 정미소를 건축가가 운영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운영하는 이유에 있어서 더 깊은 속내를 알고 싶다. 
"정미소를 통해 문화예술에 공헌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대규모 조직,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 미술관은 골리앗과도 같다. 그와 비교해 정미소는 다윗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형미술관 전시는 대게 기업스폰서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전시 자체가 대중에게 굉장히 어필하게끔 기획되는 반면, 정미소는 작가 차원에서 작가 스스로의 물음을 대변하는 전시를 한다. 작가 본연으로 돌아갔을 때 작가 스스로 진정 하고 싶은 작품을 묻는 거다. 정미소는 작가에게 ‘화이트 큐브’를 던져줘야 하는 중압감이 있다. 작가로 하여금 생각을 완전히 지워내고 원점으로 돌아가게끔 하는 ‘화이트 큐브’를 쥐어줘야 한다. 얼마 전 이명호 작가의 사진전만 봐도 그는 굉장히 트렌디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정미소에서의 전시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던 실험성에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렇듯 정미소는 정말 순수하게 작가만의 공간이며, 이는 작가들에게 남다른 작용을 하게 된다. 여기서 나는 큰 의미를 느낀다. 이 역시 나에게 영향을 끼쳐 내 작업에서 나 또한 화이트 큐브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환경보호가 대두되며, 건축에서도 친환경적인 접근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장 대표도 환경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걸로 알고 있다.
"최근 코오롱이랑 함께 작업한 ‘에너지 하우스’는 태양광, 지열, 공기 등을 이용해 건물 자체 내에서 전기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공기를 이용하는 ‘쿨 튜브’는 공기가 튜브를 통과 시에 일정한 온도로 맞춰져 건물 내 온도를 20도 정도로 유지하게끔 하는 시스템이다. 친환경적인 소재도 중요하겠지만 이러한 시스템들이 환경을 둘러싸고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더 관심이 많다. 이젠 단순히 자연재료를 친환경적이라고 하는 단계는 지나쳐 가고 있는 듯하다. 재료도 재료이지만, 시스템이 기반이 돼야 재료가 따라오는 거라고 본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미래 후손을 위한 건강한 건축을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의 예술정신과 실험정신, 건축주의 요구와 현실… 그 사이에서 건축가와 건축주는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 같다. 실제로는 어떤가?
"이는 소통에 대한 문제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야 원활한 대화를 할 수 있다. 과거에 건축가들은 쉬운 얘기도 참 어렵게 설명하곤 했다. 요즘엔 건축가들이 더 이상 폼 잡고 그러지 않는다.(웃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서로의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 건축가도 작품으로 내놓아도 손색없겠다 싶어야겠고, 건축주에게도 살고 싶은 곳이 돼야겠고… 지금까지 별 무리 없이 잘 해왔다. 내께 형태적으로 파워풀하지만 그렇다고 기능적인 면에서 문제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러니 계속 날 써주는 것 아니겠나"(웃음)

-요즘 한옥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정부와 사기업 구분할 것 없이 한옥 관련 사업이 여기저기서 성행하고 있다.
"갑자기 한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한옥타운을 한다고들 하는데, 그건 너무 근대적인 사상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울시와 은평구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옥을 봤는데, 내가 보기엔 그건 한옥이 아니더라. 지붕에 기와만 얹으면 다 한옥이란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옥을 짓기 위해서는 도시에 대한 이해부터 필요하다. 한옥을 한 채 짓는 거와 백 채 짓는 거는 엄연히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옥의 공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함께 가야 한다. 특히 한옥 중정(中庭)의 스케일에 신경을 써야할 거다. 잘못하면 일본식 집으로 바뀌어 버리는 수가 생길 수도 있다. 옛날부터 우리는 ‘쓰는 공간’이라고 해서 마당이라고 불렀는데, 요즘 보니 한옥의 마당이 아니라 정원을 만들고 있더라. 정원이 되면 ‘보는 공간’으로 되면서 집이 일본식으로 바뀌어 버린다"

“건축가라고 한다면 단순히 돈 버는 일 말고도 사회에 기여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도시계획, 도시 리서치에 참여해야 한다. 도시를 어떻게 바꿔야하고 생성해야 하는 것에 관여하는 게 건축가가 아닐까. 그래야 사회가 더 좋아질 수 있다. 이 외에도 방과후교실 등 재능기부 측면에서 아이템들은 무궁무진하다. 자신의 작품 실현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건물 열 개 짓는 것보다 이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2009년 하이서울페스티벌 '오월의 궁'. 섬유 소재의 대형 설치 작품으로, 당시 예술감독을 맡았던 장 대표의 작품이다.
그는 2009년 하이서울페스티벌 디자인 감독을 맡아 축제의 랜드 마크격인 거대 조형물을 서울광장에 설치해 시민들의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수많은 용이 승천해 하늘을 뒤덮은 형상의 ‘오월의 궁’이 바로 그것. 도시환경을 활용한 설치작품으로서, 최장 200미터에 달하는 섬유 소재의 라인들이 서울광장 주변의 건축물들을 연결해 궁궐의 전통적인 장막인 ‘용봉차일’을 연상시켰다. 그는 축제가 끝난 후, ‘오월의 궁’이 다른 곳에서 재사용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걸 보고, 쓰레기만 양산할 게 아니라 이러한 것들이 재사용, 재생산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더 나아가 도시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그는 건축가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현대 건축 이슈가 있다면?
요즘 유행은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에 있다. 예전엔 전통적인 공간 개념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그걸 탈피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크링도 전면에 통이 있어서 마치 공간이 떠있는 것처럼 돼 있는데 그 역시 다른 개념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이슈는 형태에 대한 거다. 건축의 형태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끊임없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건축인지 아니면 조각인지 혼돈이 오는 건축물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관한 문제들도 빼놓을 수 없다. 어차피 건축은 그 자체가 기술의 총합이기도 하다. 현재 기술력은 최대한의 기술이 숙성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젠 에너지를 생산하는 건축, 친환경적인 건축 등 그 형태를 뛰어넘는 단계로 가고 있다. 요즘 건축은 모든 게 다 통합돼 있다. 사회적 담론과 맞물려 가는 건축이 바로 현대 건축이다.

-한국 건축계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 말해 달라.
한국 건축에는 오리지날리티가 없고, 카피가 만연해 있다. 오리지날리티란 새로운 생각이 시작되는 근본점이다. 하지만 그저 해외의 건축물들을 따라 하기만 한다면 한국 건축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거다. 다행이도 요즘 젊은 건축가들이 그걸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특히 30대 건축가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 같다.

-꿈이 있다면?
건축은 내 삶을 만들어가는 매개체다. 그 매개체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본다. 꼭 건축이 아니더라도 자유로운 예술을 만들어가고 싶다.

△1964 부산 출생 △현재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갤러리 정미소 대표 △1990 서울대 건축학과 학·석사 △1995 신건축 타키론 국제공모전 Honorable Mention 수상, 2000 베니스비엔날레 아이디어 공모전 수상, 2001 일본저널 '10+1' 세계의 젊은 건축가 40인 선정, 2005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국제공모전 3등, 2006 Architectural Record 'Vanguard Award' 수상, 2007 Architectural Record 'Commended Award' 수상, 2008 대한민국 우수디자인 국무총리상 외 다수 수상 △대표작 : 광주비엔날레 전시공간(2004), 예화랑(2006, 건축문화대상 서울시 건축상), 홍익대 대학로 캠퍼스(2006), 서울시립대학교 강의동 체육관(200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