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을 위한 음란 CD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란 CD
  • 정은석 서울맹학교 교사
  • 승인 2009.06.11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작장애인들도 야동을 보고 싶다"

▲ 정은석 서울맹학교 교사
점잖은 문화 신문에 점잖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는 점 사과드리며…….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맹학교로 전근 온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어느 날 친구에게서 해괴망측한 전화가 왔다. ‘음란 CD’가 생겼는데, 가져다가 보고(듣고) 싶은 성인 시각장애인들에게 나눠주란다.

야동은 포르노 동영상, 야설은 야한 소설을 가리키는데, 그 ‘음란 CD’는 야설을 음성으로 실감나게 녹음한 것이란다. 그 말을 듣고 대뜸 욕부터 퍼부었다.

“생각하는 것이 어찌 그리 저질이냐? 그걸 갖다가 나눠주면 교사인 내가 뭐가 되겠냐? 너나 실컷 봐라.”

그런데 그 친구는 내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친구가 맹학교에 근무하는데 내가 뭔가를 도모해야지. 너도 보고 나도 보는, 그렇게 많이 떠도는 야동을 시각장애인들은 전혀 못 볼 거 아니냐? 그런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지. 내가 원래 저질이긴 하다만 너한테 한 가지만 물어보자. 시각장애인들은 야동 안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냐?”

마지막 질문에 나는 감전이 된 듯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래. 나는 맹학교에 근무하고 있으면서도 시각장애를 가진 친구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욕구와 관심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다가선 적이 없구나.’

이런 자책감이 불쑥 든 것이다.

내가 특수교육을 전공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은 단지 ‘시각’이라는 신체 감각에 장애가 있을 뿐, 심리적 특성은 비시각장애인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강의도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시각장애인들도 인간의 공통 관심사인 성적인 호기심과 욕망에 있어서 비시각장애인들과 하등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들은 얘기는 많은데 눈으로 보지 못하니 더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나는 부끄러웠다. 급기야 그 망측스런 친구의 아이디어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고, 그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오히려 따스하고 정겨워졌다. 급기야 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래, 눈물나도록 고마우니 여러 장 복사해서 보내라.”

결국에는 칭찬까지 해주고야 말았다.

그 CD를 들은 시각장애인들이 정서적으로 얼마나 타락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그 CD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나에게 떳떳이 감사의 말을 전해 온 사람도 있었고, 다른 CD도 있으면 제공해 달라는 부탁을 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한 생각을 바꾸면 시각장애인들도 얼마든지 경쟁력을 가진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몇 년 전에 영국을 방문한 한 전맹(빛조차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제자가 대영박물관에 가니 음향 설명 시스템이 설치되어 박물관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고 왔다는 얘기를 듣고 부러워한 적이 있다.

헬렌 켈러가 자신이 시력을 찾으면 제일 먼저 박물관에 가서 인류의 찬란한 문화재를 보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박물관은 시각장애인들이 매우 가고 싶어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제일 가기 싫어하는 곳이다. 시각장애인들이 박물관을 견학하는 것은 누구의 표현대로 ‘명작들의 공동 묘지’를 방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재수가 좋으면 전문 안내원의 설명을 들을 수도 있으나 자기 의도와는 상관 없는 일정으로 움직여야 하며, 그 많은 작품을 한 번에 감상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머리에도 남지 않는다.

다행히 몇 년 전에 용산에 건립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음향 설명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대영박물관을 벤치마킹한 것인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반가운 현상이다. 한 사람의 지체장애인을 위하여 전 건물의 구조를 바꾸었다는 하버드 대학처럼 우리나라도 인프라 설계에서부터 장애인을 위한 문화적배려가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혹자는 투자 대비 효용성을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장애인을 위한 타자기가 비장애인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 복지 측면에서도 장애인 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그들을 돕는 소극적인 방법보다, 그들이 직업 재활 능력을 갖추어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적극적인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정은석 서울맹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