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가보셨나요? 자전거 박물관
따르릉 따르릉, 가보셨나요? 자전거 박물관
  • 강승환 대기자
  • 승인 2009.06.11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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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역사, 이색 자전거 보고, 자전거 체험도 할 수 있어

◆ 삼백의 고장 상주를 가다

경상북도 상주는 곶감, 흰쌀과  누에고치가 유명하여 삼백의 고장이라고 불린다. 이와 더불어 자전거도시라고도 부른다. 자전거가 국내에 보급될 무렵부터 고가의 자전거를 타고 다닌 게 상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상주자전거박물관 전경

교통과 경제가 일찍 발달된 덕분이었는데, 상주는 자전거도시답게 국내 최초로 자전거박물관을 개관했고, 도로변에 자전거 조형물도 세우며 자전거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상주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자전거였다. 도시는 깨끗했고 상점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자전거 보급률이 타 지역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것을 증명하 듯 곳곳에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관공서나 학교, 병원, 시장과 같은 곳에는 커다란 자전거보관소가 설치되어 있고 마트 앞이나  은행 앞은 자전거대리점과 같은 거치대가 있다.  시장을 보고 돌아가는 할머니, 뒤에 어린아이를 앉혀 놓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여성분,  잡담을 하면서 가는 학생들, 세발자전거를 타는 아이 등등, 상주사람들의 자전거는  레저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학생들이 학교 등교시에도 버스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농사를 지으러 논이나 밭에 나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생활에 익숙해 있다.

◆ 폐교 운동장 위에 세운 특이한 박물관

▲ K.맥릴런 자전거

국내 최초의 자전거박물관은 상주 시내에서 충북 보은 방향으로 25번 국도를 타고가다 곶감마을인 남장동과 남장사로 이어지는 길에 있다. 

국내외 자전거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전거박물관은 건물을 자전거바퀴모양으로 형상화 시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층 친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운동장 앞 폐교건물은 예술인들의 목공예작업장으로 쓰이고, 자전거 박물관 넓은 마당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자전거박물관에는 평소 볼 수 없는 재미있고 독특하게 생긴 이색자전거가 많으며, 무료로 자전거를 빌릴 수 있고, 박물관을 무료다.

자전거박물관은  크게 자전거 역사, 이색 자전거 전시, 자전거 체험 등 세 분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었다. 자전거는 정확한 자료나 고증할 만한 실물이 없어 그 원조가 불확실하지만, 자전거박물관에서는 프랑스에서 ‘말없이 달리는 기계‘로 특허가 난 드라이지네(Draisienne)를 자전거의 시초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 오디너리 자전거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드라이지네는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다. 나무바퀴를 앞뒤로 나란히 연결시켰고 안장 위에 앉아 두발로 땅을 차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 옆에는 국내 자전거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개화기에 도입된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었다. 

뒷자리 아래 위로 막걸리가 담긴 들통이 여러개 매달려 있는 양조장의 자전거와 우체부가방을 손잡이에 매달고 다니던 우편배달부의 자전거를 보니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듯했다.

상주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거도 전시되어 있다. 근대를 배경으로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봤던 자전거라 그런지 관객의 발길이 오래 머무른다. 이 자전거는 1947년도 일본산으로, 상주시 인평동에 사는 조성채 씨가 1967년에 쌀 한가마니 가격인 2,880원에 구입하여 최근까지도 타고 다니다가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자전거가 생산되기까지 과도기에 만들어졌던 이색자전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총 8명이 탈 수 있는 ‘점보자전거’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페달을 돌려 욕조의 물을 샤워기로 끌어올려 샤워를 할 수 있게 한 자전거도 존재했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선수는?

▲ 자전거 선수 엄복동, 앉아 있는 분은 상주출신 박상헌 선수

박물관에는 자전거만 전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경기 선수였던 엄복동 선수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1925년 상주역 개설 기념으로 상주에서 ‘조선8도 전국 자전거 대회’가 열렸을 때의 사진인데, 이 자전거대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대회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하에 암울했던 당시 우리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가지게 했던 엄복동 선수와 상주 출신의 박상헌 선수가 이 대회에 출전하여 일본선수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하였따.

당시에 엄복동 선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하늘에는 안창남(한국 최초의 비행사), 땅에는 '엄복동’이란 말이 유행했다는 것으로 봐서는 국민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었던 것 같다.

▲ 박물관 내부
1892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엄복동은 10세대 자전거포 점원으로 취직하여 자전거를 배웠고, 22세 때 중고자전거로 출전한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자전거 선수로서 명성을 날리게된다. 그 후 자전거대회에 출전을 하면 우승은 늘 엄복동 것이었다.

또한 작은읍에 불과한 상주가 전국대회를 치루는 것을 보면 그 위상이 대단했던 것 같다.

현재 상주시는 도남동으로 자전거박물관을 옮기려 하고 있다. 지하1층, 지상2층으로 새로 지어질 '자전거박물관'은 전시실과 영상관람실, 체험실 등의 전시공간과 특산물 전시장, 다목적 홀 등을 갖출 예정이라고 한다. (관람료 무료,연중무휴. 오전9시부터 6시까지)

우리나라 자전거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자전거가 언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개화기였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고희성(高羲誠)이 1896년에 장안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다닌 것이 처음이라고도 하고, 같은 해 서재필 박사가 독립문 신축현장에 갈 때 처음으로 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때 사람들은 자전거를 ‘괴물차’혹은‘나르는 새’라느니 하며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후 약 2년이 지난 1898년에 윤치호(尹稚昊)가 하와이로부터 도입해왔는데 이것이 두 번째이다. 통 타이어를 사용한 이 자전거는 매우 엉성하였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굴곡이 많은 길을 종회무진으로 달리는 이 자전거는 ‘자행차(自行車)’, 또는 ‘축지차’라는 별명까지 생겨 큰 화젯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차츰 한 대씩 들어오게 되었는데, 1903년 가을에는 조정의 관리들을 위해 1백 대의 자전거를 도입했던 것으로 미루어보라 자전거의 인식이 호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자전거는 교통수단으로, 그리고 운반 수단으로 그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1982년경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있던 이용설(李容卨)은 여가 선용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자전거 제조는 수리용을 주로한 부품의 생산에서 시작되어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1994년도에는 118만 6,400대를 생산하여 세계주요자전거 생산국이 되었으며, 차종도 실용차 중심에서 레저용 등으로 다양화되었고 수출도 많이 하고 있다.  [출저 : 상주자전거박물관 안내판]

서울문화투데이 강승환 대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