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요즘 인사동엔 적들이 산다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요즘 인사동엔 적들이 산다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2.08.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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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

인사동에는 참 묘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만나면 친구고 만나면 동료들이 거리에서 식당에서 전시장에서 서로 머쓱한 모양새를 발휘한다.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고, 서로 특별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같은 전시장에서 만나는 것 또한 지극히 꺼린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상대가 가지 않은 전시장에 들린다. 손인사와 눈인사, 방명록 사인은 필수적이다. 미술인이 아닌 이들은 절대로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없다. 미술인이라 할지라도 편가르기에 편입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한층 더 떠서 그룹이 형성되고 있다. 전시를 위한 동호회도 아니고, 예술관을 교류하는 친목단체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끈끈한 정이 오간다. 밤이나 낮이나 서로 보듬고 이해하고, 끼리끼리 어울린다. 누가 누구를 욕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세력을 과시하려든다. 하여간 편이 잘 갈려진다. 이러다가 서너달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극히 친근했던 시간으로 돌아간다. 다만 지금 그러할 뿐이다.

아프리카 사바나에 사는 짐승들은 생존을 위해 무리 짓는다. 이들은 생존을 위하여 온갖 어려움을 감소하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간다. 인사동에는 권력을 위해 무리 짓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뭉친다. 지나면 동료요, 지나면 친구이기 때문에 상대를 비난하거나 흠집 내지는 않는다. 사력을 다해 사람을 모으고 더 큰 그룹으로 뭉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된다.

어김없이 한국미술협회(이하, 협회) 이사장 선거가 다가 왔다. 선거는 축제여야 한다. 대통령 후보를 내는 전당대회에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흥행실패라고 말한다. 3년마다 돌아오는 미술협회 이사장 선거가 축제였으면 좋겠다.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만나고, 서먹했던 사이가 달달해지고, 어려웠던 선후배가 친밀해지는 자리여야 한다. 10년도 훨씬 전에 협회 미술행정분과에 가입하고 나서 회비를 한 번도 내지 않았으니 투표권도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협회원이다. 적과의 동침이 일어나는 인사동이지만 이번에는 예년과 좀 달라 보인다. 5억이니 10억이니 하는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선거에 임박하면 달라질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과열되거나 혼탁한 양상은 없어 보인다. 현재까지 지만 말이다.

지역을 망치기 위해 출마하는 의원 없고, 나라를 망치고자 출마하는 대통령도 없다. 이들은 자신의 소명의식과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일들이 있기에 출마를 결심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다 안다. 국회의원이 되면 돈 잘 벌 수 있다고, 시의원이 되면 월급 꼬박꼬박 나온다고. 세금으로 월급 주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그들이 좋은 일만 한다. 협회이사장이 되면 뭔가 혜택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편짜기를 잘 하지 못할 것이다.

올해는 어떤 공약과 어떤 이유로 어떤 인물이 협회장을 맡게 될까. 누가 되더라도 큰 변화나 더 나은 내일은 없어 보인다. 그들만의 리그에 참가한 이들과 그들의 리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내일은 똑 같다. 차이가 있다면 리그에 참가한 이들은 무슨장이니 이사니하는 경력꼬리표가 하나 더 달릴 뿐이다.

고용보험 산재보험도 안 되는 화가들의 거대한 집단. 우리나라에서 직업도 아닌 민간단체장을 왜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 작품하나 팔리면 세금은 꼬박꼬박 챙기는 나라의 민간단체일 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