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의 문화비평]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III
[천호선의 문화비평]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III
  • 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원장/전 쌈지길 대표
  • 승인 2012.08.2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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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원장/전 쌈지길 대표
1982년 가을 이원홍 KBS사장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당시 유태완 문화원장에게 “어떻게 해서든 백남준을 잡아보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유원장은 백선생에게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걱정하였지만, 나는 이미 백선생과 충분히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사실 그 이전까지 나는 백선생과 친한 사이임을 총영사관내에서 알려지는 것을 피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백선생이 레프트 성향의 작가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원홍 사장은 동경에 근무할 당시 이우환 씨로부터 백남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은 터여서 그가 국제적으로 최고의 한국인 예술가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1983년 1월 초 귀국해서 이진희 문공부장관 비서실장이 되었고, 이원홍 KBS사장과도 가깝게 접할 수 있어, 백남준을 KBS와 쉽게 연결시켜줄 수 있었고. KBS는 백남준의  첫 번째 우주오페라 <굿모닝 미스터 오웰, Good Morning, Mr. Orwell>을 생방송할 수 있었다. 이원홍사장은 나의 간곡한 요청으로 부하 직원들의 부정적 판단을 물리치고 머스커닝햄무용단 초청공연도 성사시켜 주었다. 1984년은 백남준의 첫 번째 우주오페라에 이어, 존 케이지와  머스 커닝햄의 세종문화회관 공연도  이루어졌으니 한국 국민들도 이제 세계 최첨단의 전위예술을 접하게 된 것이다.

1984년 1월2일 새벽 KBS TV가 생방송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준비하면서 백남준은 미국 주관 방송사인 PBS TV와의 계약상 총 16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고, 매달 일정액을 분납해 왔는데, 그중 KBS가 적기에 방영권을 계약해 준 것이다. 후에 백남준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천호선이 1만8,800달러로 한국방송권을 KBS에 팔아서 이원홍, 강용식, 이태행, 이동식이 밤새워 일한 덕분에 소생이 한국의 스타가 됐다”. 원화랑의 정기용 씨도 2만 달러 어치의 판화작품을  구입해 주었는데, 백남준은 “16만 달러 중 4분지 1이 한국의 돈이고, 부친의   회사가 망하고 나서 한국 돈을 쓴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고마워했다. 백남준은 16만 달러를 준비하면서 그와 예술세계를 함께하는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머스 커닝햄, 알랜 진스버그와 함께 판화 세트를  제작, 이를 팔아서 대부분 충당하였다.

1983년 말 덴마크공보관으로 부임한 나는 84년 1월1일 밤 12시부터 퐁피두센터 앞 중계차에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인공위성 쑈를 진두지휘하는 백남준을 지켜볼 수 있었다. 뉴욕과 파리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퍼포먼스를 쾰른으로부터 송신되는 자료화면과 함께 그 자리에서 편집하여 뉴욕, 파리, 베를린, 함부르크, 로스안젤리스,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서울로 동시중계하는 일이었다.    

뉴욕 공연에는 백남준의 해프닝 동료들인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알랜 진스버그를 비롯해서 팝송을 현대 전위음악으로 끌어 올린 로리 앤더슨과  피터 가브리엘, 현대 미니멀음악을 대표하는 필립 글래스, 샌프란시스코 팝 그룹 오잉고 보잉고, 코메디언 레슬리 풀러 등이 출연하였고, 파리의 퐁피두센타 공연에는 요셉 보이스의 피아노 연주, 벤 보티에의 글자그리기, 콩바스의 만화 그림과 함께 이브 몽땅의 샹송, 베르코 스튜디오의 패션쇼, 피에르-알랭위브르의 불꽃놀이를 보여 주었으며, 쾰른 스튜디오는 현대음악 작곡가 슈톡하우젠의 공연과 살바도르 달리의  인터뷰를 준비하였다.

백남준은 이러한 수많은 장면들 가운데 무엇을 먼저 보이고 무엇을 나중에 보일 것인가,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면서 생방송 프로그램을 1시간동안 진행하였다. 그것은 생방송의 생동감과 함께 생방송의 위험이 뒤따르는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인공위성 작업이 끝난 다음 나는 백선생과 스탭들을 인근 카페에 초청해서 뒷풀이를 해주었다. 마침 파리에 와 있던 김영동 씨가 대금을 불면서 새벽까지 우리들의  흥을 고조시켰다.

한국에서 <미스터 오웰>이 방영된 1월2일 새벽 2시는 한국인들이 ‘참여 TV'로서비디오 아트를 처음 대면하게 되는 역사적인 개안의 순간이었으며, 이는 새로운 시지각적 황홀감과 함께 인식론적 충격을 받고 예술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