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칼럼/박정수의 뒷방이야기]사기만 하고 팔 수 없는 나라.
[미술칼럼/박정수의 뒷방이야기]사기만 하고 팔 수 없는 나라.
  • 박정수/미술평론가(정수갤러리 관장)
  • 승인 2012.09.1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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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정수/미술평론가
소모품도 아닌데, 먼지만 쌓였을 뿐인데, 벽에 장시간 걸려 있었을 뿐인데...벽시계나 달력 이야기가 아니다. 장신의 손길이 닿은 벽시계는 골동상에 가면 적당한 가격을 쳐준다. 공장에서 수 만개 마구 찍어서 만들어진 벽시계와는 태생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벽시계보다 비싸고, 12개월 다 인쇄된 달력 보다는 무지하게 더 비싼 그림이 철지난 달력 취급을 받는다. 아니, 달려보다 못하다. 대기업 고급 판촉용으로 만든 판화작품 들어간 에디션 달력보다 훨씬 못하다.

지금 집에 있는 미술작품 팔겠다고 화랑에 전화를 걸어보라. 활발한 거래가 아닌 작품에 대해서는 비슷한 대답만 들을 수 있다. ‘저희 화랑에서는 그분 작품을 취급하지…’ 라거나 ‘경기가 좋지 않아 더 소장하고 계신편이…’ 라는 말을 듣게 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작가 잘 모르는데요.’ 라거나 ‘작고 작가인가요?’라는 말은 들을 수 없다.

하긴, 거래가 활발하고 가격상승의 기회가 많은 작품이라면 지금 팔 이유가 없다. 돈 되는 그림은 이미 가격이 얼마인지 소장자가 미리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감상과 감동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을 인지하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림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거래 성사는 가뭄에 콩나듯 한다. 그러나 지금도 그림은 무수히 팔린다. 화랑에서 작가 작업실에서, 아트페어 현장, 경매회사에서 수백에서 많게는 수십억에 작품이 거래된다.

그러나…우리나라는 사기는 쉬워도 팔기는 몹시나 어렵다.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팔 곳 없는 그림은 수천 수억의 작품이 아니라 백만 원에서 많게는 8백만 원 정도의 가격을 지닌 작품을 말한다. 나라 경제가 살려면 중소기업이 부흥해야 한다. 미술계의 중소기업은 작품가격 300만원 정도의 작가군들이다.

이정도의 가격을 유지하려면 개인전 10회에 육박해야 한다. 작품 경력 15년이 넘어가는 이들이다. 나이로 보자면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정도의 작가들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들 중에서 화가로 성공하느냐 그냥 화가로 남느냐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가장 활발한 활동과 가장 가능성 높은 이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작품을 구매하는 이들은 지인이거나 생애 최초로 구매하는 이들이 많다. 300만원이라는 돈은 적은금액이 아니다. 몹시 고민해야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300만원의 작품에는 작가의 경력과 장래성과 투자성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미술품을 되팔기 어렵다는 것은 미술시장의 부조화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문제는 미술작품을 투자의 입장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에서 투자의 개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더 좋은 문화예술을 위해서는 미술품에 담겨진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

더 많은 즐김을 위해 작품이 매입되고 소통됨을 기본으로 하여야 한다. 40년 정도의 짧은 미술시장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가 100년이 넘은 나라를 따라잡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싶다. 압축 경제의 부작용이다.

미술시장의 활발한 활동이 시작되는 가을이다.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만드는 이가 있고 이를 파는 이가 있다. 이제는 ‘사 두면 돈 됩니다’ 보다는 ‘지켜 봐 주세요’라는 말이 더 잘 쓰였으면 좋겠다. 작품 자체에 대한 ‘투자 가치는요?’라는 말보다 ‘이 작가가 지켜보고 싶군요’라는 말이 자주 들렸으면 좋겠다.

300만원에 매입한 후 3천 만 원 이상의 감동과 감상으로 즐기고, 작품 가격은 잘 몰라도 이사 갈 때 꼭 싸들고 가는 작품을 매입자 스스로 만드는 가을이었으면 좋겠다.